[CITY 100] 다행이다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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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뒤통수 너머로 마중 나온 초모의 얼굴이 보였다. 델리가 아닌 라다크에서 초모를 만나는 것은 십 년만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초모의 환영 인사가 “웰컴 투 라다크”가 아닌 “웰컴 백 투 라다크”여서 기뻤다. 초모는 그새 오너드라이버가 되었다. 차에 짐을 싣고 보조석에 올라타 핸들을 잡은 그녀의 옆모습을 보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데려가 주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초모가 문득 듬직하게 느껴졌다. 초모는 그리운 친구들의 소식을 한 명 한 명 들려주었다. 어떤 친구는 일찍이 결혼해서 일곱 살짜리 딸이 하나 있고, 어떤 친구는 벌써 아들이 둘이라고 했다. 어떤 친구는 레 시내에 근사한 바를 열어서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벌었고, 또 어떤 친구는 이혼 후 하루하루 술에 의지하며 산다고도 했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니 흘러간 시간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칠 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새로 지어진 경기장, 제법 정돈된 도로, 현대적인 상가 건물과 삐까뻔쩍한 5성 호텔들이 눈에 띄었다. 시내에 단 하나뿐이던 주유소도 몇 개나 더 생겼다. 거리 곳곳에 못 보던 조형물들도 여러 개 보였다. 레 – 스리나가르 로드와 레 – 마날리 로드가 만나는 교차로에는 싱게 남걀의 거대한 기마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라다크의 분위기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았지만, 싱게 남걀은 라다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니 레로 진입하는 입구를 장식할 만했다. 그러나 조악한 두루미 모형과 깡통 로봇은 정말이지 기상천외했다.

“두루미가 라다크의 명물이래. 나도 몰랐던 사실이야.”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초모가 덧붙였다. 메인 바자르 입구에 들어서니 ‘I ❤ LEH’라고 쓰인 조형물이 나타났다. 인도인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서 차례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며 새빨간 하트가 번쩍번쩍 빛났다. 사진 찍는 사람들의 표정도 반짝반짝 빛났다. 세상에. 정말이지 기분이 이상했다. 칠 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라다크의 관광산업은 지난 2년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다. 여행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외국인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기며 인도인 관광객이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았고, 상권도 이동했다. 곰파와 모스크, 힌두사원 등 볼거리가 많은 메인 바자르, 5성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포트 로드가 인도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반면,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뿜어내는 낭만이 넘실대던 창스파 로드는 완전히 활기를 잃었다. 온종일 호객에 열심인 카슈미르 상인들의 목소리도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예전에는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앵무새처럼 “헬로, 마이 프렌드. 쇼핑 쇼핑?”하고 말을 걸어오는 그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리운 장면이 되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날마다 드나들던 창스파 최고의 맛집 ‘차이니즈 볼’도 사라졌다. 장사가 잘 되어 가게를 확장했는데 지난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라다크를 떠났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초모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창스파에 있는 양첸네 게스트 하우스도 그사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리웠던 그 집은 다행히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빠루 게스트 하우스는 라다크에 올 때마다 지내는 고향집 같은 곳이다. 대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니 새로 지어진 객실 건물이 보여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양첸네 가족이 지난 시간을 무사히 버텨냈다는 증거일 테니 말이다. 소담한 정원을 지나 가족이 머무는 집의 부엌 창문을 들여다보았다. 몰래 가서 놀라게 해 주고 싶었으나 분주히 움직이는 양첸을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양첸!”하고 외쳐버렸다. 나를 발견한 양첸이 두 팔을 번쩍 들며 꽥 소리를 질렀다. 연락도 없이 칠 년 만에 찾아든 손님을 보고 그녀도 적잖이 놀란 듯했다. 양첸의 고운 얼굴도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말씨도 여전했다.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칠 년 전만 해도 키가 내 어깨에도 닿지 않는 작은 소년이었던 양첸의 작은아들 빨던은 콧수염 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게스트 하우스 일을 도우며 구직 활동 중이라고 했다. 생글생글 귀여운 그의 미소는 여전했지만, ‘구직 활동’이라는 말에 어쩐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 어렸을 때 키가 겨우 이만했는데. 머리통도 내 주먹만 하고.”

옛날에는 빨던의 머리통을 곧잘 쓰다듬곤 했는데, 이제는 영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침 먹어야지?” 양첸은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뜨거운 버터티, 밀크티, 블랙티까지 무려 세 종류의 차를 차례로 내오더니 갓 구워낸 라다크 전통 빵 캄비르와 폭신한 오믈렛, 살구잼과 버터로 이루어진 소박한 라다크식 아침 식사를 금세 차려냈다. 칠 년이 지났지만, 양첸이 끓여낸 밀크티의 맛은 변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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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을 곳처럼 보이는 지역도 세월을 따라 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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