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합정역 - 멀린 검을 만나다.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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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멀린 검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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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광화문 드림라이크에서 춘자꾸러미를 찾았지만, 멀린 님의 글을 읽고 cafe Han도 꼭 들러야 겠다고 생각했다.

출발 당시, 흐리지만 비가 오지 않아 자신있게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서울로 들어서자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다행히 역에서 카페로 가는 동안 비가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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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도착하자마자 QR코드를 찍으며 사장님께 춘자 출간회를 보러왔다고 말씀드리니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으셨다. 나는 친한 지인(?)을 통해 알았으며 오늘도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날이 추워 따순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창가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사장님이 연필이 내미셔서 이미 많다고 거절했다. 사장님은 춘자 연필을 진짜 사용할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칼로 정성스럽게 깎아쓰면 된다고 대답하자 신기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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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제외하고 손님은 두 팀.
힙합 노년 부부가 조용히 독서를 하고 커피를 음미했다. 나도 저렇게 늙어가야지.

중간 테이블에 4~5명 되는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처자들이 흐린 날씨와 대비 되어 참새처럼 에너지를 쏟아내며 통통거리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아이돌 이야기를 했다. 마치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처럼 친근함과 깊은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들 미래를 위한 진지한 염려도 이어졌다.

그러고보면 학창 시절엔 사랑할 대상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사람과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는데다가 여중/여고로 나뉘어 있기도 하고 공학이라고 해도 입시에 치여(또 취업에 치여)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주는 건 엄청난 일이다. 과거에 비해서 아이돌 문화는 점차 발전했고, 그들을 편리하고 조금 더 가깝게 사랑할 수 있는 온갖 통로들이 생겨놨다. 유튜브, V앱, 비대면 화상 채팅 등등. 가끔 아이돌 팬문화를 '유사 연애'에 빗대 걱정하거나 조롱하는 시선이 있는데, 사랑이 아닌 이상 그렇게 열정을 쏟고 내 모든 걸 주지 못할 것이다. 결국 아이돌 산업은 사랑을 파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의 음악도, 춤도, 스타일도 어쩌면 구애이다. 아니면 사랑을 연습하는 걸지도 모르고. 사랑 없이 버터야 하는 삶이란 너무 퍽퍽하고 가혹하다. 인정을 갈구하고 경쟁에 시달리는 삶 속에서는 누구 하나라도 사랑해야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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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신비한 기록을 읽다가 창가에 누군가 나타나면 잠시 숨을 죽이고 구경했다. 저 사람은 어디를 갈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합정역에 온 덕에 내가 만날 일 없었던 누군가를 구경할 수 있다. 비가 다시 조금씩 쏟아졌다. 우산을 쓴 사람이 무심히 지나간다. 신기해.

어떤 커플이 조용히 카페를 응시하며 서로를 쳐다본다. 들어올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들어와요, 들어와요. 음악이 참 좋아요.' 하고 외쳤다. 잠시 후 그들이 들어와 내 뒷자리에 앉았다. 괜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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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정중앙 오래된 TV 위에 올려진 개새끼소년 책과 동상과 검

우리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검을 사야 해.
자신을 사야 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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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이 카드 내용을 읽고,
멀린 님이 소장한 탕자의 검을 조심스레 뽑아 들었다.

그래, 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 없어.
그러나 나는 나 자신에게 증명해야 해.
내 자신으로 살아갈 거라는 걸.
굶어 죽어도 다른 이가 되지 않는다는 걸.
더 이상 협박 당하지도 않을 거란 걸.
나는 날카로운 검이 되겠어.
검을 가진 다른 이를 만나 방패가 되겠어.
검이자 방패가 될 거야.

고요한 내 마음이 행복으로 진동했다.












그리고 젠젠@zenzen25님을 만나 장을 보고,
합정역에서 라라@roundyround님을 만나
택슨@teaxen님 집으로
생일파티 겸 옥상 바베큐 파티를 하러 놀러갔다.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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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조금 왔지만, 라라님이 구워주는 맛있는 고기를 배터지게 먹었다. 고기는 택슨님이 쏘시고 젠젠님은 오늘도 출장 바텐더! 가방 끈 끊어지게 담아온 각종 술과 도구 그리고 스노우플라워 @snowflower님이 선물해주신 고급진 술도 공수해왔다. 나는 과일을 사고 야채를 씼었다. 택슨 님은 밥도 하고 버섯과 마늘도 쏭쏭 썰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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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고파 허겁지겁 고기를 구우면서 집어 먹는데 너무나 꿀맛이다!
이 집 맛집이네.
라라님이 사온 케이크에 초도 꼽고,
무엇보다도 다이소에 사온 생일축하 왕관을 쓴 택슨님이 압권이었다.

옥상은 비바람이 불었지만 북한산이 보였다!
부럽다 택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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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눈물나게 배 찢어지게 웃고 또 웃었다.
젠젠님을 부여잡고 웃고 라라님을 때리며 웃고,
택슨님께 멋진 가발을 씌여준다고 찾은 스노우 필터로 찍은 사진을 보고
다들 빵빵터졌다.

소싯적 본드 불던 금발머리 날나리 오빠가 소환되고
앞머리만 금발인 내 사진은 순식간에 그 오빠의 깔다구가 되었다.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소환하고 옛날 유행어를 남발하며 또 한바탕 웃었다.

이 날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

  1. 라라님 앙큼한 폭스설? ㅋㅋㅋ

  2. 택슨님 라면 잘 끓임, 밥도 잘함, 밥은 수향미가 맛있다?!

  3. 택슨님 한때 엄청 잘생겼던 걸로 밝혀져 ...

  4. 라라님과 젠젠님은 재밌는 남자를 좋아한다.

  5. 내 주량은 의외로 포텐셜이 있을지 몰라. (..나쁜 언니들 만나서 주량 늘지도?)

  6. 라라님은 취해도 티가 나지 않으나 집에 갈때 기억이 블랙아웃 된다.

  7. 젠젠님은 오이러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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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타임슬립해 정겨운 대학 선배 자취방에 도란도란 모여 아무 걱정 없이 내일도 없이 맛난 걸 먹고 즐긴 밤이었다. 너무 행복했다. 웃음 버튼도 여러 개 챙겼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어제 생각이 나서 씻으면서도 실실 웃었다. 술 만들어 주느라 그 무거운 짐을 옮긴 젠젠님도 기름이 튀기던 고기를 굽고 설거지를 하던 라라님도 실컷 놀림받고 슈퍼 갔다 오느라 발에 불이 떨어졌던 택슨님도 모두모두 너무 고맙다.

다음에 또 불러주세요.
진짜 노래도 불러주고(시키지는 마시고요) 같이 춤도 춥시다 꼬옥!!

택슨님 여름에 오라는 약속 꼭 기억합니당ㅋㅋㅋ
우리 사전에 빈말은 없어요.

그리고 방정맞은 아내 덕에 그밤 드라이브를 즐긴 L군에게도 감사를 :D

덕분에 너무너무너무너무X100 울트라 캡숑 짱! 행복했어요.

넷이 모여도 이렇게 행복한데 다 같이 모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얼른 얼른 그날이 오길! 다같이 둥글게 둥글게 춤춰요!


어제의 기록

-2021년 5월 30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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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ears ago 

스노우 필터 안켰음 큰일났을뻔. 이 깔끔 적절한 요약이라니!! 학창시절에 고물님 공부 잘했네 잘했어!

이래서 스노우 스노우 하는 거였어요! 하하 요약 정리 맡겨주세요!

보기만 해도 즐거움이 물씬 느껴집니다.
대학시절 자취방에서 놀던
딱 그 그림 같네요.

반구리님께 행복이 전해지셨길!
다시 그 시절로 소환되서 넘나 행복한 밤이였어요.

 3 years ago 

택슨님 한때 엄청 잘생겼던 걸로 밝혀져 ...

한때? 크흠...

그래, 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 없어.
그러나 나는 나 자신에게 증명해야 해.
내 자신으로 살아갈 거라는 걸.
굶어 죽어도 다른 이가 되지 않는다는 걸.
더 이상 협박 당하지도 않을 거란 걸.
나는 날카로운 검이 되겠어.
검을 가진 다른 이를 만나 방패가 되겠어.
검이자 방패가 될 거야.

고요한 내 마음이 행복으로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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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택슨님 지금도 멋지지만 그 사진은 좀 많이 미남 :D ㅎㅎㅎㅎ
지금도 멋져유.

이래서 본드 불면 안 된다규.

택슨 님 우리 떠나고 치우느라 몸살 났을까봐 좀 걱정했어요. ㅋㅋㅋ

 3 years ago 

저도 오늘 아침 눈을 뜬 순간부터 온종일 웃고 고물님 글 읽다가 또 웃었어요. 날라리 오빠 머리에 피멍 어쩔...

대체 저 피멍 왜 생기는 거냐고요 ㅋㅋㅋㅋ 🩸 웃음치트키 같은 추억이 생겨 넘 좋아요

즐거운 만남,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보네요!! ㅎㅎㅎ
다들 정말 어플 미남미녀십니다 'ㅡ' ㅎㅎㅎㅎㅎ

젠젠님은 오이러버다.

안 올 걸 알지만, @ioioioioi 오이형 소환!!!! ㅋㅋㅋㅋ

너무너무너무 즐거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이님 인기 짱 좋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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