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합정역 7번 출구에서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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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또 다른 출구



자전거를 타고 그 거리를 매일같이 지나갔다. 한없이 가라앉고 있을 때는 그냥 숨만 쉬는 거라고. 아무것도 하려고 들지 말고 그냥 숨만 쉬라고 해서. 그렇다고 방바닥에 누워서 숨만 쉬다간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아 자전거를 타고 매일 한강변을 달렸다. 그러다 출구로 빠져나오면 그곳 합정역 7번 출구가 나왔다.



그 출구로, 7번 출구로 향하는 길에 그 카페가 있었다. 넓은 대지에 꾸머라고 쓰인 그 카페는 뭔가 생동감이 넘쳐 보였고, 가끔 자전거에서 내려 야외 테이블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1L짜리 점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날씨가 추워져 야외에 앉을 수 없게 되자 인근의 다른 카페들을 찾아다녔다. 그래도 자전거는 포기할 수 없어 중무장을 한채 얼굴에 두건을 두르고서라도 페달을 밟았다. 싸늘하게 얼굴을 때리는 겨울바람과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는 답답한 가슴이 치열하게 페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댔다.



세상과 연결이 끊겼던 시절이었다. 하루에 한마디도 할 일이 없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투명 인간처럼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의 자리면 어디든 앉아서 책을 읽었다. 글을 쓸 수가 없어 계속 책을 읽고 또 책을 적어 내려갔다. 마침 어떤 카페에서 까만 표지에 '밤'이라고 쓰여진 노트를 발견하고는 냉큼 사서, 꽤나 두꺼웠던 그 노트가 가득 차도록 읽던 책을 베끼고 또 베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다는 강한 소망과, 자신에 대한 중대한 오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히는 두둑한 배짱과, 파멸을 각오하고서 정신세계의 변경으로 떠나보려는 결의는 다 어디다 내다 버렸는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인생. 내일 또는 미래의 자신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두근거림과 설렘의 연속 속에서 진정한 충만감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 아닌가."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삶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다. 아니 생명이란 그렇게 해야지만 충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처음에는 하루키를 읽다가 읽다가. 상실해 버린 것들에 대한 마음을 끊어내지 못해 읽고 또 읽다가. 결국 마루야마 겐지에 이르러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소설가의 각오
나는 길들지 않는다.



그리고 7번 출구를 빠져나왔다.



꾸머에서 한까지



몇 년이 흘렀다. 총수를 찾겠다고 선언하고 라라님을 만난 곳은 합정역 7번 출구의 어느 카페에서였다. 왜 하필 거기였을까? 나는 라라님에게 광화문에서 합정까지 어디든 좋다고 했는데, 라라님은 콕 찝어서 합정역 7번 출구의 어느 카페를 지목했다. 그곳은 그 시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카페였다. 숨어 있던 것일까? 출구를 빠져나오지 못한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이었던가? 그리고 라라님은 총수를 수락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여기 오랜만이네. 합정역 7번 출구.'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정역 7번 출구의 그 카페에서 회의를 열었다. "미니 스트릿 어디서 하면 좋을까요?" "여기 좋네요!" 그랬다. 그래서 한숨 쉬며 1L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이키던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뜨거운 여름이 훅 불어온 것이다.



그 거리는, 합정역 7번 출구에서 그 카페까지 이어지는 그 거리는 신기하게도 좀처럼 가게들이 변하지 않는다. 그때로부터도 벌써 꽤나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곳 그 자리에 모두들 그대로 있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망해가는 시대에, 심지어 이 코로나 시국에도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다.



그때 유독 지나쳐만 가고 들어가 보지 못한 카페가 있었다. 그 여름의 기억이 자꾸 생각나 슬쩍 근처로 피해 들어간 그 카페의 이름은 HAN이다. 이름이 왜 HAN일까? 마법사의 HAN일까?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마법사의 비대면 출판기념회를 열게 되었다.



어느 날 군더더기 없이 하얗고 깨끗하기만 한 카페에 요란한 아이돌 스타의 장식이 잔뜩 붙어 있었다. 아, 오늘 무슨 행사를 하는가 싶어 발길을 돌리려는데 그냥 팬들이 해놓은 거라고, 행사 대관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골들이 발길을 돌리게 할 수는 없다고. 오~ 그러면 혹시 춘자도?



"이번에 새 책이 나와서 비대면 출판기념회를 하려고 하는데 혹시 저희도?"

"네 그럼요. 하셔도 돼요."

"비용은..?"

"아니요. 그냥 편하게 하시면 돼요. 단골이신데."



그랬다. 그냥 하면 된단다. 그래서 그냥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개새끼소년의 비대면 탄생 잔치를 하게 되었다. 인연이란 그런 것일까?



"저희가 실은 이런 책들을 냈거든요."



카페 사장님께 춘자의 책들을 건네드리자 화들짝 놀라며 기뻐하셨다.



"크루즈라구요? 아니 우리도 크루즈 여행을 가려고 막 준비하고 그랬는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다 멈췄다구요. 어~ 이 작가님 유튜브에서 본 거 같은데!"



그랬다. 크루즈 여행이 꿈이라고 하셨다. 코로나 때문에 발목이 붙들린 게 한이 되셨을까? 두 분 사장님 부부가 코로나가 끝나면 꼭 크루즈 여행을 떠나셨으면 좋겠다. 한이 되지 않도록.



마법사는 타이밍의 마법사이기도 하지만 공간의 마법사이기도 하다. 아 그러니까 시공간의 마법사란 얘기다. 어느 날 어느 곳에 머물게 되고 끌리게 되면 그곳에서 인연들이 솟아난다. 그것은 단순한 마법의 법칙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다 보면 마음이 준비해 놓은 수많은 인연들과 조우하게 되는 것. 만일 사람들이 계속 떠나간다면 있어야 할 곳, 가야 할 곳에 가지 않은 탓이리라. 그래서 마법사는 언제나 장소 선택에 까다롭다. 마음의 소리를 듣느라.



그래서 그곳 합정역 7번 출구는 해리포터의 9와 3/4 승강장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마법사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스팀시티] 역시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찾아올 그대를. 이번 출간기념회는 비대면이라 마법사는 없지만, 우리의 흔적은 그 거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뜨거운 여름 하하호호 웃던 우리의 웃음소리와 [스팀시티]의 총수가 되어보지 않겠냐고 묻고 있는 마법사의 음성과 크루즈를 꼭 타고 싶다는 어느 부부의 간절한 소망이 고스란히 맴돌고 있다. 춘자와 개새끼소년이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듣고 하늘 높이 떠올라 모두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별들에게 전해주기를.



합정역 7번 출구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5월 29일(토) ~ 30일(일)
합정역 7번출구 인근 카페 'HAN'
서울 마포구 성지길 32 1층



그때를 추억하며 [찾아 오시는 길] (대충 이근처)







[위즈덤 레이스 + City100] 055. 합정역 7번 출구


Human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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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ears ago 

저는 미니 스트릿 시기 즈음에 바로 그 근처를 자주 찾았었답니다. 크크.

 3 years ago 

앗! 그럼 전봇대에 매달려 멜로디언을 연주하던 그 소녀가?? ㅎㅎ 합정역 7번 출구에서를 나루님의 멜로디로 듣고 싶군요.

 3 years ago 

지난 이야기긴 하지만 미니 스트릿을 하던 날에도 꾸머를 지나갈 일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2년 뒤였나? 그 근처에서 음원 발매 기념 청음회를 하기도 했었죠. ㅋㅋㅋ 저에겐 별개의 일이지만 이렇게 적고 보니 신기하네요.

 3 years ago 

그러고보면 마법사님이 크루즈 여행을 제안하신 곳도 합정과 홍대, 신촌 그 어디 사이였는데...

 3 years ago 

맞네요. 산울림 소극장 근처였는데

 3 years ago 

크루즈가 '한'이어서.. 이름이 '한'인가요.. ^^

 3 years ago 

사장님 성이 한씨 일수도..

 3 years ago 

그건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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