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100] 달라이 라마, 죽음을 말하다 - 내일 죽는다면?
book 001
달라이 라마, 죽음을 말하다.
제프리 홉킨스 편역
인생의 절반은 잠이다. 10년은 어린 시절로 써 버리고, 20년은 늙어서 잃어버린다. 남아있는 20년마저도 울고, 불평하고, 아파하고, 화를 내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수백 가지의 병고로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56p
제3연
죽음은 반드시 오지만 죽음의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모인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고 모아 둔 것은 남김없이 소모되며
일어난 것이 가라앉으리니, 태어남의 마지막은 죽음이 되리라.
우리가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111p
죽음을 생각한다. 내일 죽는다면?
무엇이 가장 아까울까? 나는 무엇을 후회할까?
18살 때는 아쉬울 게 없었다. 과거보다 미래가 나을 게 없어 보였다. 거기서 끝나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주변부가 신경 쓰였다. 손가락질받거나 슬퍼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감정이 그리고 생각보다 생존 본능의 의지가 강했다.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를 마주치고는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걸 보기 위해 죽지 않아 다행이라고. 아마존에서 배를 타고 끝도 없이 펼쳐진 사진으로 절대 담을 수 없는 별빛을 올려다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이런 거라면 사는 건 밑지지 않는 장사였다. 처음 여행의 이유는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의 풍광을 보기 위해서였다. 살길 잘했다고 느낄 만큼 멋진 풍광이나 자연을 수집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 후로 살아가는 날, 행복하지 않은 날도 설사 우울할 때도 죽음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내게 죽음은 언제나 안락이었다. 끝이고 허무였다. 그게 위안이 되었다. 멕시코에 갔을 때 ‘죽은 자의 날’에 춤을 추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했다. 오래전부터 내가 죽어도 아무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혼을 믿지만 죽음이 끝이면 좋겠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상상만으로도 날 두렵게 했지만, 내가 죽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고통이 두려웠을 뿐이다. 인생은 한 회차로 끝이 나니 그럭저럭 살다 가면 그만이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환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네팔에서 쿠마리 여신을 추대하거나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는 티베트 문화를 보며 거부감이 든 적은 없지만, 그들만큼 진심으로 환생을 믿진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환생이라는 게 있고 인생은 한 회차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서 나의 숙제를 풀지 못하고 어영부영 살다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다음 생에 더더욱 숙제를 풀 수밖에 없도록 더 많은 제약 속에서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내가 겪는 괴로움과 고통의 업보는 반드시 내게 속한다. 언젠가 풀어야 한다면 다음 생으로 짐을 떠넘기지 말고 지금 여기서 충실히, 충분히 풀어봐야 한다. 잘 안 풀리더라도. 그렇게 반성을 했다.
물론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른 생명체로 태어날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번 생이 엄청 소중한 기회라고 했다. 영원히 살 것처럼 매일 매일 인생을 낭비하면서도 살고 있다. 삶보다 죽음이 안락해 보인다는 청년기의 무의식적 믿음에 의지해서 말이다.
오랫동안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죽음을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지켜보았을 뿐이다. 삶을 조금 더 사랑하고 난 이후에는 내일 죽어도 별로 억울하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탕진잼이라도 누리려는 걸까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어바웃어 타임의 남자 주인공이 사는 인생과 같다. 매일 일상을 살되 그 일상을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사는 거다. 어쩌면 태도와 관점의 차이만 있을지도 모른다.
한 달 전쯤 내일 당장 죽는다면 뭐가 제일 억울할까 생각을 했을 때 글이 떠올렸다. 나는 아직 쓰지 못한 글이 있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믿음이 있고 이런 사랑을 했다고 적어 두고 싶었는데. 그걸 써야 앞으로 만나지 못해도 이어질 어떤 인연과 만날 수 있는데.
그 생각을 하고 좀 놀랐던 것 같다. 나는 세상에 흔적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사람인데 내가 생각하는 나의 본질을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고 싶어 하다니. 나는 많이 변했다.
또 한 가지는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이다. 내가 사랑을 말하면 상대방은 그게 뭔지 정확히 묻는다. 처음에 내게 사랑은 남녀 , 이성의 결합이었다. 결혼이나 이런 제도 보다는 내 뼛속과 영혼까지 그 사람과 공유하고 보듬고 그 존재를 사랑하는 게 내게 사랑이었다. 내가 겪은 현실에서 이성이 아니면 그 정도로 시간과 노력을 상대방에게 쏟는 관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확장된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우연히 마주친 낯선 여행객에게 눈앞에 보이는 행인에게 아직 만나지 못한 인류에게.
내 사랑에도 조건이 있었다. 나를 이해할 것. 나를 좋아해 줄 것. 내게 친절할 것, 같이 있으면 즐거울 것 등등. 그러나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냥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어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사랑이 있다고. 내게 돌아오는 게 하나도 없어도 그 존재가 어디서라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머물고 그의 세상이 계속되길 빌어주는 그 마음이 사랑이라고. 내가 변하고 그 사람이 변하고 관계가 허물어져도 사랑은 변하지 않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과거 사랑할 수 있는 순간조차도 나는 나를 의심하고 상대방을 의심하며 사랑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조건이 붙는다. 내가 피곤하고 냉담해지면 사랑은 급속도로 식는다. 쪼잔하게 굴지 말고 조금 더 사랑해줄걸. 조금 더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죽어서 하지 못해 아쉬운 말은 분명 사랑한단 말일 거다.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비교적 많이 하지만 여전히 내 입에서는 ‘사랑한다’라는 말이 어색하니까.
비슷한 의미로 돈 벌어서 뭘 하나. 돈은 하나도 중요치 않다. 물론 돈은 엄청 중요하다. 현재의 생활 수준을 결정하고 시간을 내 맘대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 미시적 관점에서 돈은 엄청 중요하다. 그런데 죽음처럼 돈이 엄청 많다 가정해보자. 당신은 일할 필요 없고 매일 매일 화수분처럼 돈이 쏟아져 나온다고. 그런데 생명이라면 인간이라면 돈이 많다고 인생이 끝이 아니라 또 삶을 메울 다음 무엇이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돈 걱정 없는 부자로 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상상도 잘 안 되지만, 다음 질문을 해보는 건 중요하다.
그러니 스팀이 만원 십만 원인 세상이 와서 우리 모두 부자가 되든 아니면 모든 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디지털 숫자가 되든 중요한 건 그래서 그걸로 뭘 하고 싶냐는 질문이다. 나의 경우,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 과정에서 사랑이 많이 만들어졌다며 내가 사랑을 느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인생에 내가 물었던 모든 질문은 일단 오늘까지는 사랑이란 해답으로 귀결된다.
스팀을 단순히 돈이나 투자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관계를 쌓는 플랫폼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서 기쁘다. 그게 내가 스팀잇에 돌아온 이유이고 떠나지 않을 이유이다. 나 혼자 스팀을 사랑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나 같이 사랑한다면 결과가 어찌 되더라도 우리는 가치 있고, 후회하지 않을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걸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니 기쁜 일이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종일 누워서 L 군이랑 서로 기대어 게으르고 평화롭게 하루를 낭비했다. L 군은 밀린 과제를 시작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게임을 하고 있다. 어제의 초조함과 묘한 죄책감은 분해되고 아마도 L 군은 체력을 비축했으리라 믿는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아쉽지 않다.
사랑에 진심인 사람이 있었다고 여기 이렇게 적어두고 가니 말이다.
p.s. 피터님이 죽음에 대해서 공부해보라고 이 책을 추천해주셨는데, 공부는 안하고 공상만 잔뜩했다.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2021년 5월 19일, by 고물
며칠전에 전 또 티벳에서의7년 영화를 봤는데.^^
너무 여행가고 싶네요.
그 영화에서 달라이 라마의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미소가 잊히질 않아요!
곤님도 그녀에게 자주 말해주세요. 하하
저는 아직도 죽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옆에 밀어 두고 있습니다.
또한 스팀의 가치가 코인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멋진 글을 읽는 맛이 진짜 가치지요.
기회가 되시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제 글보다 훨씬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는 책이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풍요로워지겠지만 글과 사진 영상 커뮤니티가 진짜 소중하다고 :D
환생을 믿어요
그래서 지금 이순간에 더 충실하고 행복하게 지냅니다~^^
고물님 인생에도 늘 행복이 가득하시길~!!!!
파치님 환생을 믿는군요. 맞아요 환생을 믿으면 더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행복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행복 가득하시기를 :D !
맞아요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삶 자체가 기쁨이 넘쳐 행복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되요~^^
고물님도 언제나 행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