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소한 생각] <#49> 전향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에 달렸다

in #bus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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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나 진리가 다수결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사회 제도 속에서 보편성과 일반화의 동태적 검증 과정을 거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성적이라는 것은 논리적 과정을 포함한다.
진리는 객관적으로 사실이라는 이성적 과정의 전개를 통하여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는 이데아의 복제품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본질의 구체적인 열린 표현의 전개이다.
불가지론(不可知論)적 입장에서 보면 초경험적인 존재의 인식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오성(悟性, Verstand)도 감각적 경험의 도움을 받는 과정을 거쳐서 유래하게 된다.
물로 같은 물을 담을 수 없다. 감각적 반응인 경험을 감성에 담을 상대적 의식의 그릇인 어떠한 패턴이(Pattern)이 필요하다.
인간의 인식 능력인 오성이 재구성된 인식의 보편 타당성을 찾아줄 것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심지어 사물의 본질까지도 변화한다.
변화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의 전개이다.
진리는 인간의 의식 속에 있고 인간의 의식이 환경에 따라 바뀌면 진리도 변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원한 절대진리란 불확정적이다.
인간 세계에서의 현실적으로 검증된 진리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속도와 질량의 차원이 다른 대립적인 세계의 진리가 같을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동굴 속의 그림자의 실체를 알려면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나와야 한다.
전향(轉向)을 해야 마침내 보이지 않던 진리가 모습을 들어 내게 된다.
이 전향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진리를 대하는 동굴 밖으로의 열린 태도(Attitude)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 나이 40을 불혹(不惑)이라 한다.
30대의 사회적 열정을 넘겨서 40대 중반에서도 갈등 속에서 방황한다면 몸을 돌려 동굴을 벗어나야 한다.

자유의 이념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익숙한 정태적 인식체계에서 돌아서서 나와야 한다.
원시 왕조시대의 단편적인 수동적 인식체계로는 현대의 자유로운 동태적 복잡계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사유한다는 혹독한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그 동안 쌓은 업적과 지위의 욕심에서 미적거린다면 평생을 미혹(迷惑)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48> 안전과 이익의 균형점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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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지도자에 대한 숭배는 달빛 마냥 신비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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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쪼끔만 더 쉽게 써주시면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수 있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을 주제넘게 해 봅니다
불쾌하지 않으셨음 좋겠어요
저느이런글이 많이 읽히길 바래요~~~ 응원 합니다!

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군요.

@telomere 님의 글은 의도를 알듯은 한데,
과연 그 의도인지? 긴가 민가 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고 봅니다.

의도적으로 약간 모호하게 쓰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직은 능력이 안되니 노력하고 또 노력할 뿐이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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