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몽쇄언(述夢瑣言)] 마음에 물음(問心)

in #busy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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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만물의 탄생과 죽음은 하나의 기운이 모이고 흩어져서 되는 것으로, 기운이 모이면 사물이 되고 기운이 흩어지면 사물이 없어진다. 기가 모여서 사물을 이루면 자연스럽게 그 가운데서 정신이 생겨나 사물과 함께 자라면서 지식을 얻게 된다. 사물이 오래되어 형체와 정기가 쇠퇴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면 사물과 함께 없어지고 빈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으나 탄생과 죽음의 사이를 보니 마음속에 의심이 생긴다. 갓 태어나면 아는 것은 많지 않으나, 혼이 밝고 환하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팔과 다리가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도 혼은 예전과 같음을 저절로 알게 된 것이다. 모이고 흩어진 것은 끊어짐과 이어짐이 없고, 어둡고 밝음에 더하고 덜해짐이 없다. 그 삶은 없는 것에서 홀연히 있게 된 것이 아니고, 그 죽음은 있는 것에서 홀연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미 생사를 관통하여 하나와 같다면 그 시작과 끝을 누가 능히 궁구할 수 있겠는가? 그 가운데 과연 이와 같은 이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르기를 이 이치는 밝혀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그대는 잠을 자고 깨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꿈을 꾸고 깨는 환상이 무수히 변화하면서 지식만으로 일어남과 사라짐, 사상의 끊어짐과 이어짐이 얼마나 옮기고 바뀌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가운데에서 일관되게 이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 있어 이것에 의지하여 꿈을 꾸기도 하고, 깨기도 하며, 변화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누가 능히 꿈을 알고, 깨어 있음을 알며, 변화를 알아서 함께 변화하지 않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인위적인 지혜는 영명한 지혜와는 다른 것이다. 그대의 인위적인 지혜로 어찌 영명한 지혜를 알겠는가? 마음에 물음(問心)/술몽쇄언

구구절절 생각해볼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번 읽었다. 나는 유명하지 않은 이 월창거사, 김대현이란 분에 대해 참으로 흥미롭다. 이분이 쓴 선학입문이라는 저서도 있는데 남겨진 유작이 많이없어 아쉬울 뿐이다. 스님은 아니었지만 불교에 심취해 있던 조선 후기의 지식인? 이셨을 것이다.

나는 지식인이라는 호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 단어는 영어에서 ‘egghead(달걀대가리)유래’, 우리말 속어로 ‘먹물’이란 느낌으로 와 닿는다. 근데 참 재미있다. 우리는 멍청한 사람을 표현할 때 ‘닭대가리’라고 하는데 닭에서 나온 ‘달걀’ 대가리는 현실감각이 부족하고 현학적이며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고 삐꼬는 표현에 이용된다. 한미합작 조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닭대가리는 순수하게 멍청한 것이고 달걀대가리는 뭔가 많이 들어가긴 했는데 멍청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유전적 인자는 피해가지 못하나보다. (시바, 대학원 시절 선배가 나에게 닭대가리라고 졸라 욕했다. 지는 에그해드이면서,)

닭에게 미안하다. 어제 극한직업을 보았는데, 닭을 너무 많이 잡아먹고 있는 우리 인간 종자는 그것도 모자라서 닭을 소재로 말놀이 및 이렇게 개그까지 펼친다.


개그콘서트 Gag Concert 닭치高 20140629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나는 지식인이란 표현보다는 지성인이란 표현이 좋다. 뭔가 많이 들어있음을 강조하여 지식 변비에 걸린 뉘앙스보다는 들어간 것이 잘 소화되어 지식이 삶에 실천적 체화되는 어감이라서 더 좋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유명하지 않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지성인들이 많이있다. 이분들은 지식을 가지고 허세놀이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실천적 삶에 치중하여 묵묵히 살아가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상속식相續識이라고 표현한다. ‘존재의 지속심’ 혹은 ‘생명연속심’이라고 표현하는데, 현재 피터라는 이름의 물질과 정신 복합체가 이전 생에도 있었고 죽고난 이후에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변태?된 윤회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자.

단순히 나 피터가 태어나서 나이 50에 근접하는 지금의 삶 동안 몸덩어리와 함께 하는 이 마음은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일어났다 사라졌다하면서 지속된다는 견해이다. 그러는 과정에 잠을 자서 무의식에 빠지기도 하고, 꿈을 꾸면서 새로운 현상적 경험을 인식 혹은 기억하기도 하고 깨어있는 삶을 통해서 수많은 타자와의 관계 소통을 통해서 흐리멍텅하건 맑건 이 마음이라는 정신적 현상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 순간 순간에 그 마음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면서 앞순간의 마음을 이어받아 다시 지속되지만 앞의 마음과 생겨난 마음, 사라진 마음, 생길 마음은 절대로 똑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현상을 바라보는 과정속에서 흐린 마음이 되었건, 맑은 마음이 되었건 쉬는 마음(잠자는 마음)이 되었건 그 끊임없이 연결되어 인식하는 마음이란 것은 빛과 같이 대상을 밝게 비추어 바라보면서 반사된 그 빛을 또다시 바라보며 재인식하는 연속의 과정이라고 한다.

내가 꿈을 공부몽념수필(夢念隨筆)하는 이유는 흐린 마음의 상태보다는 깨어있는 맑은 마음의 상태를 피터라는 물질과 정신의 복합체가 살아있는 동안 지속시키려는 이유이다. 불교에서는 이 상속심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끊임없이 지속되기 때문에 죽음의 과정 또한 바라볼수 있고 죽음 이전, 이후의 그 마음도 기억으로서 소환할수 있다는 의미이다. 윤회의 주체는 이 상속심인 마음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과 정신 복합체인 나 피터는 이 지구상 2000년대를 사는 일시적인 존재일 뿐이고, 이 상속하는 마음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까먹지 않고 되돌리는 것이 해탈이고 열반이기 때문에 열반이라는 특정한 장소도 없는 것이다. 죽음도 의미없고 삶도 의미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가치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초월하는 마음이란 세상를 떠난 다른 어떤 곳을 찾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현재 이 시점에서 초월하는 그 마음상태를 이루면 바로 그것이 초월의 마음인 것이고 열반의 마음인 것이고 천국의 마음인 것이다.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고 밥을 먹는지를 또렷하게 알고 똥을 퍼질러 쌀때는 똥을 퍼질러 싸고 똥을 퍼질러 싸는지를 또렷하게 알고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놀 때도 물질과 정신 복합체인 피터라는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이 수컷 사람이 또렷한 마음보기를 항상 유지하여 잡념이 끼어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혼탁하다. 욕망의 집착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단, 집착이라는 것이 원죄가 된다는 정신적 족쇄도 벗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자각몽도 연습하는데 맨날 깨어나서 꿈기억만 한다. 꿈 중에 꿈을 꾼다는 자각은 무슨....


죽어서 천국을 간다고 떠드는 특정 종교인들은 과연 그들이 죽었을 때 그들의 현재 모습 그대로 물질과 정신의 복합체로 천국에 가는 것인가? 아니면, 물질과 정신의 지금 모습에 대한 기억을 복제한 마음만 가지고 천국에 태어난다는 것인가? 죽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의 축적 재생성된 모습의 피터라는 물질과 정신 복합체는 이 시대에는 끝이다.

천국이라는 곳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 피터는 지금의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90세에 죽으면 늙은이의 모습으로 천국가고 10세 죽으면 아동의 모습으로 가고... 하여튼 새로 태어난 것이니 돌고도는 삶인 윤회이다. 천국에 가건 지옥에 가건 거기에 간다는 게 인정된다면 말이다. 근데 왜 윤회를 부정할까? 하여튼 불신지옥 예수천국 떠드는 종교인들은 에그해드도 아닌 똥멍충이,

죽으면 끝이라는 단멸론자들이 지금 나의 물질과 정신이 계속 비슷하게 재생되어 살아간다이것이 노화의 과정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은 견해인 듯하다. 소멸되면 끝이라는 단멸론을 인정한다면 재생이란 것은 있을수 없어서 나 피터를 이루는 세포가 분열되면서 새로운 재생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짐만 있으면 이 세계는 존립되지 않는다. 지구는 예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단멸론자들도 에그해드도 아닌 똥멍충이,


어쩌다 보니 나는 철학자Philosopher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나는 지혜라는 한자(智慧)를 좋아한다. 마음의 속성에 앎의 뜻과 밝고 명료하다는 뜻慧, 혜성과 같이 반짝이고 슬기롭다이 합쳐진 조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단어 지혜智惠에 필이 꽃피었다. 慧가 惠로 바뀌었는데, 이유는 智라는 글자 안에 이미 해(日)와 같은 밝음과 명료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慧를 덧붙이는 것이 사족인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 은혜(惠)라는 자비심으로 추가된 지혜智惠가 知慧라는 글보다 더 원대해보인다. 마치 지식인보다는 지성인이라는 표현이 더 와 닿듯이,

그래서 나는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 피터이다.

그 가운데에서 일관되게 이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 있어 이것에 의지하여 꿈을 꾸기도 하고, 깨기도 하며, 변화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누가 능히 꿈을 알고, 깨어 있음을 알며, 변화를 알아서 함께 변화하지 않고 있을 수 있겠는가? 인위적인 지혜는 영명한 지혜와는 다른 것이다. 그대의 인위적인 지혜로 어찌 영명한 지혜를 알겠는가?

무명(無明)이란 어리석음은 지식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지혜智惠 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다.없는 것이 아니고 가리워져 있는 것이다.


술몽쇄언(述夢瑣言)


프롤로그
눈뜨고 꾸는 꿈/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을 아시나요?
스스로 불러옴(自求)/스팀의 떡락과 나의 자세(나는 낭만적인 선구자다)
징조와 경험(徵驗)/부제: 고요함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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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지식 변비라는 말이 와닿네요.
갈수록 머리가 너무 발달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영면한 지혜....

피터님 포스팅 읽다 보면, 저는 무엇 하며 사나 싶네요.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달립니다. ^^

화이팅~~

형님은 가족을 꾸리고 계신 가장이시잖아요. 그것보다 대단한게 어디있나욥! 저는 극강의 나만 사랑하는 이기주의자죠.

몇글자 붙이려다가 지워요. 피터님을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군요 ^_^
저는 초월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발 티끝 비스무리하게 살다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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