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7. 유다복음 | 시인 김은상 첫 시집

in kr •  last year  (edited)

시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치 시를 읽기 위해, 시를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던 스무 살의 저는 시가 전부였습니다. 모두가 대학이라는 문화에 빠져 젊음을 불태우던 그 시간에, 저는 불타는 냉면가마를 끌어안고 반죽을 하고 오이와 무를 썰고 육수를 끓였습니다. 왜 나는 누구에게나 있는 엄마가 없는지, 왜 나는 다들 가는 대학에 갈 수 없는지, 왜 난 겨우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종로 젊음의 거리엔 빈 위장을 술로 채우고 빈 가슴을 사랑으로 채운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들이 먹을 냉면을 만들어야 했던 저는 시를 위장 속으로 밀어 넣고 무수한 시어들을 노트에 갈기며 가슴의 사망을 유예시켰습니다.

내 이웃의 여자를 내 몸과 같이 탐합니다.
......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집어던집니다.
......
여우를 길들여 장미를 사냥합니다. _ 스핑크스 카페 中

가난해서 시인이 되는 걸까요, 시인이라서 가난한 걸까요. '난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시인이 되지 못한 걸까, 등용문이라는 등단을 통과하지 못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던 걸까'라는 질문이 무의미해진 마흔이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시 없인 살 수 없던 스무 살만큼, 시 없어야 버틸 수 있던 스무해를 더 살아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보다 더한 가난을 견뎌내고 삶을 견뎌내고 신을 견뎌낸 한 시인을 만났습니다. 시인 김은상. 그가 기록한 시어들이 하나씩 제게로 왔습니다. 이 나라에만 예수쟁이가 수천만인데 왜 가난은 없어지지 않는 건지, 왜 불평등이 여전한지, 이런 내 질문과 비슷한 시어들을 그의 시에서 발견했습니다. 누군 태어나며 금수저를 손에 쥐고, 누군 평생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에 예수쟁이가 있긴 한 걸까요? 예수가 있긴 한 걸까요? 아니, 신이 존재하긴 한 걸까요?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이웃의 아내를 사랑하라'라는 말로 바꿔버린 이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린, 어쩌면 모두가 시인일지도 모릅니다.

예수가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서 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햇볕에 머리띠를 적시고 있다. _ 서울 예수 中

시인 김은상. 그의 시는 가난입니다. 그리고 그의 시엔 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어느 정도 다녀야만 알 수 있는 상황들을 노래한 시를 읽을 땐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명령대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신자들. 하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를 믿는 신자'는 적은 이 시대엔 가난한 자가 예수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교회에서 쫓겨난 예수는 길거리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약한 자들 편에 섭니다. 그리고 가시면류관에 피를 묻혔듯, 머리띠에 땀을 적십니다. 어쩌면 마지막 양심을 가진 자들이 예수인지도 모릅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조작질하고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세금을 주머니 돈 부리듯 쓰고도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대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때를 청춘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늙어간다. _ 천식 中

시집 제목이 도발적입니다. 거부감 정도가 아니라 흉물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시는 친숙하고 아름다움이 넘칩니다. 그래서 제목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왜 하필 유다복음일까. 이 책의 마지막 시가 <유다복음>이라는 서사시입니다. 매우 긴 이 시는 어떤 의미일까. 예수를 부정하고 유다를 찬양할 목적일까, 비유일까. 내 짧은 지식과 모자란 문학적 소양으로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알 것 같습니다. 그는 유다복음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것을요. 성경과 왜곡된 이 시 속에 숨긴 시어를 찾기 위해 몇 번을 반복해 읽었지만 내가 알아낸 건 하나뿐입니다. 그 하나는 '난 모르겠다'라는 것. 그래선지 유다복음은 시간 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맴돌며 내게 말을 건냅니다. '나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 그래서 난 또 유다복음을 읽습니다. 시인이 나의 이 반복된 행동을 의도했는지도요. 가장 아름다운 때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생각해봅니다. 그의 말씀, 그의 행동. 그리고 난 다시 성경을 폅니다. 재로가 제로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유다복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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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책제목 기억해 두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고 싶네요.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있다고 한다연 그 신은 아주 무능한 신이거나 세상일엔 관심없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존재일 거 같습니다. 문제는 신이 아니라 광신도들입니다. 생각난 김에 몇자 적어 봤습니다.

제목이 아주 쉽지요? ^^
기독교의 문제는 아~~~ 정말. ㅠㅠ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ㅠㅠ)

잘 보고 갑니다 :)

고마워요. ^^

리뷰 너무 잘쓰시는거 아닙니까.... @naha 님 글 보면 약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 좋습니다.

헛... 칭찬 고맙습니다.
그리 잘 쓰진 않아요. ^^

단순한 Book review 이상의 감동이 옵니다.
유다복음 실제로 존재했다는 설도 있지요.
성경에 편입되지는 못했지만
예수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유다는
시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지요.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팔로우 & 보팅합니다.

정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집의 제목 정말 도발적이긴 하죠.
제가 기독교인이라... ^^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책주문을 해야겠어요.

오홋, 제 리뷰가 제대로 홍보를 했네요. ^^

짱짱맨은 스티밋이 좋아요^^ 즐거운 스티밋 행복한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