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8. 살인자의 기억법 | 기억이 조작될 수 있을까?

in #kr6 years ago (edited)

저는 건망증이 매우 심한 편입니다. 아니 심한 편이었습니다. 아, 지금도 건망증이 심하긴 하지만 암튼 매우 심했습니다. 치매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20대에 치매에 걸릴 수는 없으니 치매가 아니겠지만, 치매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건망증이 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건망증만이 아니라 기억력도 매우 형편없습니다. (자랑은 아니고) 학창시절 성적표가 수수수수수수수수가 였는데,,, '가'가 영어였습니다. 영어 단어가 도저히 외워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암기과목이야 시험 전날 시험 범위를 달달 외우면 대게 만점을 받았지만(물론 시험 보고 나면 대부분 잊어버림), 영어는 시험 전날 시험 범위의 단어를 몽땅 외울 수는 없더군요. 컵에 물을 담고는 '어, 내가 왜 물을 따랐지? 목이 말랐나?'라고 생각하고 물을 마시고 자리로 와서야 손에 약이 들린 걸 발견하는 게 접니다. 한참 일하다가 보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식당에 배달을 시키려고 전화했더니 '아까 배달해드렸는데요.'라는 답을 듣고 보니 밥이 다 식은 채로 테이블 위에 올려 있는 걸 발견하는 게 접니다.

기억이라는 건 뭘까요? 내가 경험한 것들(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본 경험 등)을 뇌 속에 저장하는 일일 것입니다. 저장해놓고 불러와야 할 텐데 저장만 하고 불러오지 못한다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기억이 조작되기도 할까요? 기억을 못하는 건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기억이 조작되는 일도 가능할까요? 상상과 기억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망각이 기억으로 전환되기도 할까요?

이 소설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추리소설? 살인자의 최후? 알츠하이머에 대한 고찰? 하~~~ 작가의 의도는 모르겠고, 이 책을 덮으며 '뭐라고?'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습니다. 그래서 두 번 읽었습니다. 잘 읽히는 소설이지만 잘 읽힌 만큼 함정에 빠지는 소설이더군요. 다시 읽을 땐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작가에게 속지 않으려고, 화자인 '나'에게 속지 않으려고 눈알 튀어나올 지경으로 글자 하나하나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그래서 답을 찾았느냐고요?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두어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화자인 '나'는 살인자입니다. 하지만 살인을 끊었습니다. 그는 딸 은희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70이 되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습니다. 기억이 점점 지워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마 박주태를 만납니다. 그놈이 딸 은희를 노립니다. '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치매를 극복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스포방지로 인해 줄거리는 여기까지.)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는 약속을 지켰다. 나는 빈말을 일삼는 놈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잊지 않기 위해 여기 다시 쓴다. 은희가 죽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도대체 어느 기억이 사실이고 어느 기억에 망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치밀하게 조작된 기억일 수도 있고, 박주태의 치밀한 작전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사실인지 작가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고 답답해라. 뭔가 더 쓰고 싶은데, 워낙 얇고 빨리 읽히는 책이라, 더 써봐야 스포만 나올 것 같고 해서 마지막 한 줄로 리뷰를 마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개는 있었다는 걸까?'

살인자의기억법.jpg

Book review 1. 이런 나여도 괜찮아 | 생각의 흐름을 따라 수놓이는 문장
Book review 2. 나의 눈부신 친구 |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
Book review 3.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 삶을 살아내야 했던 두 여성 이야기
Book review 4.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 릴라 따라쟁이 레누
Book review 5. 나의 투쟁 1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자화상
Book review 6.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 릴라를 잃어버린 레누
Book review 7. 유다복음 | 시인 김은상 첫 시집
Book review 8. 살인자의 기억법 | 기억이 조작될 수 있을까?
Book review 9. 악마의 증명 | 도진기 스릴러 소설집

Sort:  

저는 영화만 봤는데 상당히 아리송했던 기억이..

책으로 보시면 아리송한 게 좀 풀릴지도요. ^^

아 이런식으로 읽어 보고싶게 하나요.... ㅎㅎㅎㅎㅎ제가 읽어도 그럴까 싶은 호기심이 생기네요^^

팔로 꾹~💕

독서보다 좋은 취미는 없지요. ^^

살인자의 기억법.. 독특한 주제네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제목도 독특하지만 내용도 독특하답니다. ^^

아직 읽어 보지 못한 책이지만, 무엇인가 스포일러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그래서 더 강한 궁금증이 느껴집니다!

책이 워낙 얇아서요. ㅎㅎㅎㅎㅎ
두 번 읽어도 몇 시간 안 걸리는... ^^

김영하 작가님 너무 좋아하는데 그만큼 쉬운 듯 쉽지 않고 어려운 듯 안 어려운 것 같아서 헷갈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그닥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참 잘 쓴단 말이죠. ㅡ.ㅡ

@naha 님! 그럴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20대에는 치매가 없다고 단정 짓지 마세요^^ '살인자의 기억법'은 참 독특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행복하세요^^

저는 살짝 치매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기억상실증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어요.

영화와 어떤 다른 재미를 줄지 시간내서 읽어봐야겠네요.

저는 영화 나오기 전에 읽었어요. 영화는 안 보려고요. 책에서 느꼈던 감동이 너무 좋아서. ^^

김영하작가 좋아하는데, 제목때문에 왠지 두려워서 안읽어봤는데 리뷰를보니 읽고싶어지네요 :)

제목이 좀 독특하긴 하죠. ㅎㅎㅎㅎㅎ

신박한 내용이라 몰입이 잘되어서 단숨에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마지막 리뷰에 빵 터지고 갑니다 ㅋㅋ

ㅋㅋㅋㅋㅋ 개는 있었을까요? 아직도 아리송해요. ㅡ.ㅡ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이 있다고 해서 나중에 책을 읽었습니다. 뭐랄까요... 영화도 책도 보고 읽는 이를 농간한다고 해야할까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영화는 아니지만, 책은 구성이 참신했던 거 같아요~

저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경우, 읽었으면 영화를 안 봐요. 반대로 영화를 봤으면 소설은 안 읽어요.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면 거의 실망하더라고요. 반대로 영화를 먼저 본 경우, 소설 읽기가 귀찮은... ㅎㅎㅎ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3
JST 0.029
BTC 58251.90
ETH 3138.11
USDT 1.00
SBD 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