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들의 집 - 윤대녕

in #booksteem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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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by 윤대녕

'아몬드 하우스'에는 고등학생인 정민이부터 실패한 희곡작가이자 연극연출가인 나까지, 아몬드 하우스의 주인인 '마마'에 의해, 각기 다른 이유로 거둬진 사람들이 마치 가족을 이룬 듯 살고 있다.

온가족이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 후, 말을 할 수 없게 된 엄마와 그로부터 계속 가족을 덮친 불행에 고통 받으며 위태롭게 살아가던 어린 정민,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혼자 힘으로 가까스로 살다 학교를 통해 마마가 의뢰해 온 정민의 가정교사 격으로 들어온 대학생 윤태, 마마의 조카이며 자신의 출생과 친부에 대한 의문에 집착하여 마마와 갈등하는 현주, 국어교사로 일하다가 소개를 통해 만난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짧게 살았지만 곧 이혼하고 난 후 학교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며 글을 기고하며 사는 여행작가 윤정, 그리고 한 때는 촉망받는 연극 연출가였지만 의욕이 넘치던 시절 본인의 필모그래피에 남을만한 작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극적인 소재와 배우들의 전라연기 등등만 화제가 되다가 그의 예술성과 작가,연출가로서의 신념까지 의심받으며 연극계에서 거의 퇴출되다시피 한 나, 명우...

작가는 해체된 가족과 상실감을 안고 버려진 듯 살아가는 도시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에는 이시대의 지성으로서 그저 목도할 수 밖에 없는 사실에 우울하고 절망하며 불면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그 가해자(?)들과 같은 공기로 숨쉬며 살아온 동시대인 이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얼마 전, 하루키가 왜 여직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지 개탄하는 글을 타 블로그에 쓴 적이 있는데 내 블로그 이웃 중 한분이, 죽기 전에 한번은 받을 것이라는 나의 예측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댓글을 다셨는데 하루키는 죽어도 못받을 것이라는... 그 이유는 바로, 노벨상 수상자의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작가가 얼마나 사회에 기여했는가 라는 것이라고... 즉 하루키 선생의 작품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말대로 정치적이고 권위적인 심사위원들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작가에게 사회의식 이라고는 쥐뿔도 없기 때문이라고...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적인가 라는 질문을 작가를 두고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윤대녕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끔찍하고 심각한 사건들에 무감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세상에 말을 쏟아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매체들이, 절대적 권력에 고개 숙이고 등돌리고 앉아 있는지 등등의 허망함이었고, 그러한 무리 속에 아닌듯 목도하는 나 자신에 관한 새삼스런 부끄러움 이었다. 그것은 자유함이 없는 이 세상에 대한 내 게으름과 이기심이고 양심없는 위선이었다.

실제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보라'는 작가가 그의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한번 말하고자 했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여배우의 자살과 그녀가 남긴 우리들이 묻어버린 '그' 진실에 관한 것이었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갈 곳 없는 지체들을 거둔 마마는, 더없이 자애롭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법도 한데, 쉽게 한번 고운 말을 내놓지를 않는다. 하는 말마다 가시가 돋혀있고, 도대체가 왜 명우를 찾아왔으며 그에게 아몬드 하우스의 일층에 위치한 북카페를 맡기고 집안을 관리하는 집사로서의 직분을 주었는지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그저 실패한 연극연출가 주제에 알콜중독자로 죽어가는 꼴이 가련해서 그를 데려다 놓았다는 것 밖에는... 어린 고등학생인 정민이나 윤태, 그리고 조카인 현주에게 까지 마마의 독설은 거침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그녀의 거침과 독설들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고 단단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몬드 하우스 입주자 모두가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마지막 작가의 변처럼, 도시 속에서 길잃은 난민처럼 까맣게 타들었던, 과거를 덧입은 현재에서의 삶을 견디며 훼손된 그들이, "유사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부정합과 같은 사람들의 조합이 어느새 오랜시간 그자리에 있으며 만든 마루바닥의 홈에 꼭 들어맞는 가구처럼 유대를 형성해 나가는 듯이.

작가는 이야기 곳곳에 그의 목소리를 심어놓았다.

"제가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우선조건은 권위나 능력을 떠나 책임의식의 존재 유무라고 봐요.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요."(윤태)

"일부는 항상 전체로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부라고 부르는 거겠지. 그러니까 그게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없는거야.."(나)

"제가 보기에는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 같은데도 말예요."(윤태)

"그건 우리가 오랜 세월을 피난민으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을 포함해 한 사회의 성격이나 집단무의식은 쉽게 변하는게 아니잖아."(나)

"누군가 깊이 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더라고."(나)

그리고 이야기 곳곳에 묻어있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들을 대변하는 조리있음...

"여행지에서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그 흐름과 농도 자체가 다르잖아요."(내가 윤정에게)

"어쨌든 또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에 짓눌리는 압박감을 말하는 것이리라."(내가 윤정을보며)

관계의 엄중함과 두려움에 대한 윤정의 말~ "나로서는 그게 오랫동안 닫혀있던 국경을 개방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자면 외부와의 경계가 사라지는 일이죠. 동시에 누군가의 전 인생과 맞닥뜨리는 일이기도 하고요"

"사람은 자신이 누구라는 걸 알기 위해서라도 늘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 법이었다"(나)

이야기를 따라 가다가도 정신이 번쩍 드는 그런 지점들이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가슴아픈 우리 이야기를 떠올릴 필요가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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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다시 파이팅해요!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치님도 5월에는 행복한 일만 있으시길요^^

소설의 작중 인물들은 사회에게 하고팠던 말을 대신 해주는 작가의 페르소나로군요.

정확한 지점같아뇨. 모든 인물을 작가가 작정하고 만들고 대사를 적은 느낌이었어요

마지막 한꺼풀까지 벗겨진 사람들의 모습인가보네요..
결핍해야 애정도 생길 수 있죠..
왜 아몬드하우스인지는 감이 안잡히네요..ㅎㅎ 고소하게들 사는 건가....

ㅋㅋ 고흐의 그림 아몬드나무에서 나온 말이에요.

열심히 읽고 계시는 모습에 안도하고 갑니다.

앗 제가 마음의 안정을 드렸다니 기쁩니다^^

꾸준히 읽고 쓰는 bookkeeper님 대단하셔요! 윤대녕 작가, 이름은 (아마 라디오 광고에서 ㅎㅎ) 얼핏 들어 봤는데 그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없네요. bookkeeper님의 여타 블로그에 붙은 댓글은 쉬이 동의할 수 없네요. 시국선언하고 국가 권력에 항거하다 옥살이 정도는 해줘야지만 사회 기여를 하는 것은 아닌데요. 재즈 카페 사장님 하다가 소설가가 된 하루키는 정작 노벨 문학상 수상 여부에 덤덤할 거라고 혼자 예상해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네 저도 그리 생각해요. 매년 후보애 올라 본인도 혹시나 하겠지만 발표 되자마자, 무표정으러 마라톤하러 가실 듯^**

ㅋㅋㅋ 무표정으로 마라톤...넘 웃겨요 북키퍼님...
마라톤 뛰고 샤워 후 맥주 한잔...

ㅋㅋㅋ 우리 하루키짱은 그러고도 나으실듯요

윤대녕 작가의 글을 읽고 계시는군요... 책지기님의 글을 읽다보니 예전의 제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외국에서 제가 할수 있는 고군분투 하던 모습이... 잘 읽고 갑니다.

아 그랬나요 개털님? 지금은 뭐 고군분투할 시기는 지났는데... 아직도 내가 여기서 살고 닜다는. 매일매일의 당혹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중이네요ㅜ

이 책도 장바구니에!

올~ 감사요. 저의 서평에 가장 먼저 움직이시는 분^*^

사는 건 제가 사는데 아내가 먼저 읽고 막 ㅎㅎ

좋은 남편을 두신거죠

책을 읽는 것도, 감상문을 쓰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데 꾸준히 읽으시는 비결이 궁금하네요!^^
하루키가 받는다면 내년도가 절호의 찬스겠네요. 올해 수상 안하고 내년에 두개 수상하게 되었으니, 좀 개인적인 목소리를 가진 하루키가 살짝 얹혀갈 수도ㅋ 내기하면 재밌을 듯요.
예전부터 자주 들었던 책인데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근데 저도 아무래도 하루키는 이번 생에는 글렀지 싶습니다. 이제와서 옛다~! 받아라 노벨상 하면 주는 사람도 손부끄럽고 받는 하루키도 쵸큼 ㅋㅋ 더욱이 트럼프가 평화상이라도 받으면 그해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이 챙피할 듯 ㅋㅋㅋㅋ
책은, 아이들 따라다니다보면 길게 시간은 안나는데 한시간씩 삼십분씩, 가끔은 두세시간씩 시간이 날 때가 있어요. 그때, 미리 약속을 잡거나 계획하지 않은 이상은 누군가를 만나기도 어디를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책읽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라 그런 짜투리들이 모여 한권이 되고 두권이 되네요... 사실 이렇게 말하는건 겸손이고, 운동과 독서는 시간이 나는게 아니라 시간을 내는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런말 했다가 잘난척 한다고 누가 그랬다는데ㅋㅋ 누굴 만나 수다떨고 밥먹고 하는 시간이 하나도 재미가 없어여 여기서는. 책읽고 운동하고 글 쓰는게 제일 재미있어요. 요새는 스티밋. 때문에 책읽을 시간이 현저히 줄었지만 ㅜㅜ

운동과 독서는 시간이 나는게 아니라 시간을 내는것

정답입니다.^^ 우문에 현답을 주셨네요.ㅎㅎ

아! 오늘 멋짐 뿜뿜이네요!!! 괜스리 숨고 싶게 만드는...ㅋㅋ

소설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직업군이 바로 '작가'입니다.
아마도 소설가 자신이 작가라서 그런지도 모르고
그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자신에게 투영하고 있고
그의 말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하고 있겠지요...
아픔을 느끼고 기억하고... 또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윤대년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이유는 바로 그러함 때문입니다. 확신해요. 새월호와 장자연 사건이 맞물리단 그때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함들었다고 했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소설을 쓴 거구요. 그래서 좋더라구요 이 작가의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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