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미안 풍경클립] 우주가 내 손안에 있소이다 /생명의 그물망(Web of Life)과 운명학에 대한 소고

人生手相 / 70 x 100cm from @ohnamu
겪지 않고 미리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ohnamu님의 오라방 Nakseo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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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ohnamu님의 오빠네 미술관. 人生手相 (인생수상) 포스팅을 보고 깜놀했다. 동조화synchronization라고 요즈음 이러한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무슨 생각을 하면 그와 연관된 일들이 주위에서 연결되어 경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잊고 있었던 학교 선배가 문득 생각이 났는데 난데없이 그 형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아마 이러한 경험이 모두들 한번쯤? 있을 것이다. 신비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거대한 우주에서 먼지의 때만큼 작고 아름다운 이 곳 지구별에서 생명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이고 기적이다. 그러니 우리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모든 방식도 신비이고 기적이다.
역학易學의 한 분야인 관상/손끔/사주 등에 대하여 글을 쓰려고 생각하던 중에 @ohnamu님의 포스팅이 나의 레이다망에 포착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2년여간 괴팍한 역학선생님 밑에서 도제방식으로 역학을 배운 적이 있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특별히 역술가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다. 원래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나는 사실 영국 Schmacher College의 전일과학Holistic Science 대학원 과정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서양적 접근의 전문가들과 소통하기 위한 동양 전통 자연 철학 예비학습을 위해서 였다. 그러나 나의 천성적인 구챠니즘과 내가 영국에 가려고 하는 이유가 단지 소통이 아닌 서양 문명에 대한 동경과 멋스러움이었음을 깨닫고 일찌기 이 마음을 접고 그냥 방콕지사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거기 가봐야 사람 사는데는 똑같을 것이고 돈들여서 바다건너 공부하러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참 역학 공부에 심취해 있을 때에는 정말 쪽집게였다. 도제 방식이었기 때문에 역학 선생님의 내담자들과의 상담을 귀동냥하여 반쯤 실전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남의 운명을 잘 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걸로 돈 좀벌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것도 구챠니즘의 화신이 하지말라고 한다. 그래서 접었다. (사실 확신이 없긴 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한 정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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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易學은 변화를 관찰하는 학문이고 활인活人/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움에 그 목적이 있다. 즉, 자신을 포함한 타자의 삶에 버벅거림이 없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몸을 고치는 의사는 신체적 생리 활동에 윤활류를 뿌려주는 활인업의 대표 종사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학인들이 이를 업으로 삼고 용하다는 소리를 들어 돈을 벌게 되면 항상 찾아오는 대력귀大力鬼가 있다. 나잘남/개무시/자만심이라는 큰 병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 타자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예측한 미래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시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점성학은 인과가 아니라 합니다. 기계적인 인과를 맞추는 게 아니라 합니다. 점성학은 스토리라고 합니다. 저 하늘의 별을 보고 그 별이 자기 가슴에 말하는, 그 스토리를 해석하는 것이라 합니다. 따라서 기계적으로 천문을 관측하는 게 아니라 그 흐름에 참여 하는 것이라 합니다. @seoinseock 점성학은 인과가 아니라 스토리
인과因果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고정된 원인이 따로 있고 고정된 조건이 따로 있기 때문에 고정된 결과 또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결정되어져있고 정체되어 있다면 결코 우리는 인식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변화가 있어야 인식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과라는 것도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참고: Keane 불교의 삼법인을 노래하다)
역학은 현재의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이미 주어진 조건과 원인을 통하여(사실 이미 주어진 조건과 원인은 벌써 지나가 버린 것이다. 되돌릴수도 없고 현 시점에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 마음이 그것에 붙들려서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예측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도록 해석하고 조언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학은 번뇌속에 사로잡혀 어찌할바를 모르는 타자가 올바른 행위의 선택을 하도록 지침을 내려주는 정신의학 조언가의 성찰적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조금 유명해지면 꼭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전지자인 것처럼 착각들을 한다. 이러한 행태는 역술가뿐이 아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 인거 같다. 전문가들 앞에 개××가 붙지 않길 바랄뿐이다. 나는 속칭 전문가들의 권위의식을 경멸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열등의식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권위의식은 자신의 그림자가 밖으로 투사되는 것이다.
참고: 점성학에 대한 통찰이 정리되어 있는 요가난다의 자서전 추출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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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Michael – faith
@ohnamu님의 포스팅 대문, 인생수상人生手相의 그림에 새겨져 있는 무수한 인간 군상群象들을 보고 윤회를 떠올린다면 너무 나아간 것일까? 지금 나의 손바닥 안에는 무수히 거쳐왔던 전생애 생명들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아니지만 지금의 나를 형성해왔던 재료들일 것이리라. 생명의 군상이 어디 인간뿐이었겠는가? 나는 곤충이었을 수도 있고 동물이었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윤회samsara/transmigration라는 명제에 대하여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성spirituality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부터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윤회가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에 있어서 그 믿음이라는 것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기만 하면 된다. 탐욕의 대력귀가 붙은 역술가들은 이를 이용해서 혹세무민하는 경향이 있다. 제대로 이해하였다면 결코 그러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어리석기 때문이다. 나중에 우주가 응징할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혹시나 점집에 가서 겁주는 역술인이 있다면 백퍼 무시하십시오.
좋은 방향이란 무엇일까?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이로우면 되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적어도 타자에게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일종의 견해인데 그 견해란 것이 타자에게 해악을 끼친다면 그것은 폭력이고 사견邪見/나쁜 견해일 뿐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사견을 가장 경계하는데, 수행으로써 성인의 지위라고 부르는 첫 번째 단계(수다원과)에서 이러한 사견의 뿌리가 가장 먼저 뽑혀진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잠재해 있던 무의식의 번뇌탐욕/성냄/어리석음를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서 끊어나가면서 성인의 지위가 점점 격상시켜진다고 말한다.
종교적 믿음이 타자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견이 된다면 그 종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종교가 사견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단지 그 종교를 해석하는 맹신자들이 본질을 왜곡시켜 만들어버린 사견일 뿐이다. 이게 세뇌를 통해서 만들어졌건 사회의 문화로서 자리잡았건 그 사견은 무서운 폭력과 분열을 야기시키는 것이다. 즉 삿된 믿음으로 인하여 타자에게 해악을 끼치게 되어버린 것이다. 잘 살펴본다면 그 해악이라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번뇌탐욕/성냄/어리석음에 기반한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윤회라는 믿음이 삿된 견해가 되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철학이 아니라 세뇌용 선전도구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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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윤회설을 예를 들어 인용하자면 축생, 아수라, 인간, 천인 등의 전생의 역사가 그의 손바닥 안에 새겨져 있다는 해석이 있다. 팔만대장경 속에 간명일장금看命一掌金이라는 재미있는 운명학에 관한 논문이 있다. 당나라 때의 일행선사一行禪師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주 재미있다. 아마도 인도 탄트라계열 점성술에서부터 전해져 왔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모티브로 당사주란 이름의 운명술이 발달하였다. 신빨/영빨이 떨어진 무속인들이 당사주를 통하여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자주 참고하는데 간단하면서도 정말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기서奇書이다. 이를 해석하는 사람의 마음이 맑아야 타자에 대한 운명을 잘 해석할 수 있다. 명리학의 스팩트럼이 워낙 다양하고 치밀해지다보니 조금 깊이 공부해 들어간 사람들이 당사주/일장금이 너무 간단하다고 해서 간혹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 대다수가 아상我相/자기우월감에 빠져서 세태를 제대로 보지 못할 뿐이다.
내가 특히 관심있게 보는 것은 일장금을 통해서 그 사람의 운명뿐만 아니라 전생의 정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생이 왜 중요한가하면 그 사람의 과거 흔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이 현재를 결정하듯 자신이 살아왔던 전생의 습성으로인해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부딪치는 현재 삶의 결과(손바닥에 새겨진 흔적/출생 정보)로부터 인연과因緣果/원인과 조건에 의한 결과를 이해하고 반성할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실재 일어났던 사실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통한 이해와 성찰이라는 마음의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운명학에 대해서 공부하면 할수록 확신하게 되는 것이 겸손함/낮은 마음/반성하는 마음처럼 가장 완벽한 처세술은 없는 것 같다. 전생을 안다는 것은 전생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천한 전생(악업)으로 인한 현생의 고단한 과보를 인정하며 지금 생에서 반성하고 좀더 개선의 여지를 살피게 하고, 고귀한 전생으로 인한 행복한 현생의 과보에서 절대로 자만하지 말고 더욱더 정진하라는 무언의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내 행동이 새로운 변화와 결과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명도命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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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of Life
모든 것은 관계한다
개인적으로 운명학에 대한 토막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이해하는 운명학이란 관계의 학문이다. 생명체에 속한 인간 종자인 ‘나’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잘 생각해본다면 그건 환상일 뿐이다. 잘 생각해보시오. 홀로 존재한다면 과연 그 사람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홀로라는 의미도 사실은 다수가 있어야 홀로라는 단어가 의미있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홀로와 다수는 한몸으로 관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딱 떨어져 홀로 존재한다는 그런 것은 없는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수에서부터 격리되어 있는 홀로일 뿐이다. 격리가 된다는 것은 이미 다자多者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관계한다. 엄밀하게 표현한다면 언어로 표현되어지는 모든 것은 관계되어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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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정적 관계靜的/static relation의 표현과 동적 관계動的/dynamic relaltion의 표현이 있다. 동적관계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가 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의 흐름에서 특정 시점을 포착하여 정적인 관계로 읽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학이란 것은 흘러가는 시간에서 특정한 시점의 나와 나를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를 사진 찍어 읽어내는 것인데 수많은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결코 고정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순간의 다양한 변수가 만들어 내는 가능성 중의 하나를 읽어내는 것이 운명학이다. 간단히 말해서 운명학은 결정론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양자적 세계관으로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특정한 하나의 개연성을 읽어내는 것일 뿐이다.
겪지 않고 미리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위 표현에 공감한다. 그러나 습관이라는 것은 무섭다. 습관은 한 사람의 인생에 패턴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결을 만들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은 결정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선택의 문제이다. 예측되는 삶을 살 것인가? 예측을 벗어나는 삶을 살 것인가?의 선택 문제일 뿐이다. 습관/패턴을 벗어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결정적인 삶, 예측한대로 되어가는 삶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운명학은 결정론적일 수있다. 이것이 아이러니,
오죽하면 담배끊은 사람하고 사귀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독한새끼니까, 그래서 그만큼 운명습관/패턴을 뛰어넘는 길이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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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장결도佛手掌訣圖
宇宙在乎手, 萬化生乎身
우주가 내 손안에 있소이다. 모든 새로운 창조행위는 바로 이 몸에서 시작되겠소이다. -음부경
일장금에서 운명을 보는 방법은 손바닥을 통해서 태어난 시간(년/월/일/시)을 계산하여 인간 종자의 동적인 현상을 정적인 관계로 읽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다. 관계의 반사요법refexology of relation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끊임없이 반응하고 또 반응하고 반응하는 영원한 관계 순환의 재정립이다.
나와 우주와의 관계 흐름을 읽어내는 지도
至微者理也 至著者象也
지극히 미미한 것은 원리理이지만 극진하게 드러나는 것은 모양象입니다. -역전서
지극히 미미한 것은 원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형상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어있다. 따라서 우리는 생김새를 잘 관찰하여 그 오묘한 원리를 알아낼 수 있다. 운명도 마찬가지이고 건강상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동양의 현자들은 얼굴의 모양, 몸의 형태, 발 모양, 손 모양 등을 통해서 그 사람의 정신상태뿐만 아니라 건강상태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예측은 개연성일뿐 결정론은 아니다.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백세유년도百歲流年圖
萬相而不如心相 愉心造
모든 나타나는 현상은 마음가짐의 반영일 뿐이니 마음가짐에 따라서 모든 현상은 바뀌어진다. 모두가 마음이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참고 포스팅
- [21세기 時景] Keane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을 노래하다/ Everybody’s changing
- [카르마와 창조성] 들어가며 (부제: 운명학에 대한 견해/운명은 宿命일뿐인가? 改運인가?)
조용현 선생님이 명리 강의 끝나고 본인의 사주에 대해 질문하는 이에게 해준 대답이 대단했어요.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저도 이렇게 살고있는데..."
ㅋㅋㅋ. 조용현님은 입담꾼이시지요.
어려운 내용이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p.s. 손금도 봐주시나요? ㅋㅋㅋ
손금을 직접 볼줄은 모르나 손금 해석의 원리는 이해하지요.
손금 사진 함 올릴까요? ㅋㅋㅋㅋ
제 전공분야는 사주와 주역입니당. 관상조금하고요. 손금은 이론만 이해하는 정도지요. 그러나
ㅋㅋㅋㅋㅋ 겸손이십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 위에 그림 명도안의 한자들안에 모르는게 있네요
자오-불도(불교)
축미-귀도(귀신)
인신-인도(사람)
묘유-축도(동물)
진술- 脩(포수) ??? 이거 한자 모르겠네여 뭔뜻일까여??? (죄인이란 뜻일까여)?
사해- 선도(신선)....
진술은 아수라도입니다.
손바닥 안에 전생이있다는 말씀 처음 알았어요.
모든것이 신비로워요 ~!!
전생을 유추해낼수 있다는 거지요. 믿거나 말거나지만요.
피터님이 하시는 말씀은 진실이라고 믿어요.
저에 전생은 집시 였을것 같아요ㅎㅎ
맞아요.
우주는 내 손안에
내 발바닥에
내 얼굴에
내 마음에도^^
겸손..제겐 너무 어려워요.
전 겸손하지가 않아서요. 제 인생 숙제일듯해요.
그런데 피터님 어쩜 이래요. 글로 저를 겸손할 수 밖에 없게 만드세요. 완전 짱!!
참 신기해요
손과 발의 모든 비밀이 얽혀 있고
생년월일을 모든 비밀이 얽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관계의 학문이라서 그래요. 유유상종이라는 표현처럼 비슷한 성향은 어떻게든 끌어당기고 반대되는 성향은 반발시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작용들이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이고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역의 과학이라고 하지요.
한걸음 한걸음 디디어 나아감에 따라
삶과 세상은 변화해 나아가리라 보아요~!
글 감사합니당~ ^^
한자와 영문을 언더로 표시하는 마크업이 궁금해지네용~ ㅋ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참고 하세요
https://steemit.com/kr/@forhappywomen/marked-down
우왓~!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당~ ^^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이네요.
오늘도 오큐..ㅋㅋ
럭키한 하루 되세욤!
from @sharehows
Lucky
사이다+따뽕 +Lotto= luckyppongtto오!! 전 이거.. 완전 믿어요!! 정말 단순하게는..
수지침으로.. 병을 고친.. 전력이 있고..
발마사지.. 완전 애정하거든요~ 효과 짱! 이여요~ ㅎㅎ
에. 그렇지요. 손과 발만 잘 만져주어도 건강에 도움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