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길러지는 대상이 아니다.
백성은 길러지는 길러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목민심서의 목민은 무엇인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우리 사회의 고전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목민심서를 잘못 읽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 정약용 님이 18년 귀양지에서 생활하며 보아온 실정을 기반으로 해서 학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는 것은 매우 높이 살만하다.
특히 "다른 벼슬은 구해도 목민관만은 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 다산의 준열한 훈시는 여전히 감동적이고 새겨볼 만하다.
'목민심서'에서. 다산이 말한 바른 몸가짐, 청렴한 마음과 자기 수양, 애민정신은 오늘에 되새겨 봐도 변하지 않는 본받아야 할 덕목들이다.
그렇지만 다산이 만약 지금 다시 살아온다면 자신의 목민심서를 놓고 고심을 할거 같다.
분명 예전 생각에 아쉬워하며 고쳐야 할 곳이 있음을 직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고쳐 쓴다면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 쓸까를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다.
'목민(牧民)'이라는 말은 가축을 기른다는 의미다.
풀을 먹이여 배불리 하고 회초리로 쳐서 소를 몬다는 본래의 뜻처럼 이 말에는 군주와 관리가 곧 백성의 주인이었을 때의 정신이 담겨 있어 보인다.
그래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도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었고 백성은 다스리거나 기르는 것이 아닌 섬김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훌륭한 인재들이 있었다.
목민심서도 백성을 기르거나 다스리는 대상이 아닌 섬김의 대상으로 썼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는 초기 천주교 신자로서 백성이 다스림이나 기르는 대상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것이기에 그렇다.
물론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당시로서는 최대한 백성을 위하는 입장에서 쓰였다고는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러모로 아쉽다.
우리가 추앙하는 실학자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여, 목민심서를 잘못 읽으면 시민을 마치 소돼지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을 어찌할 수 없고 실제로 정치인들을 보면 선거철 빼놓고는 시민을 소돼지 취급하는 놈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우려를 갖는다.
정치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목민심서에 대하여 숭배에 가까운 예찬을 하면서 탐독을 하거나 인용을 많이 하는데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의 기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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