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이 서는 모

in #zzanlast month (edited)

꼿꼿이 서는 모/cjsdns

논두렁을 걷기 위해 갔다.
내 논은 아니지만 논두렁 걷는 것이야 내 맘대로다.
논두렁에 풀이 저리 무성하면 깎을 텐데 이제는 논두렁을 안 깎고 농사짓는 사람도 제법 많다.
지금 흉을 보자는 게 아니라 세월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논두렁을 안 깎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또한 집집마다 농이소가 있어 이왕 풀을 베다 소를 줄 것이면 논두렁을 깎아다 주었다.
이게 농약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세월이 바뀌고는 농이소는 사라지고 소 사육도 기업농이 되다 보니
옛날처럼 낫으로 쇠꼴베어다 주거나 논두렁 깎아다 주는 시절이 아니다.
농후 사료는 물론 조사료까지 대부분 바다 건너온 것으로 준다.
한마디로 소들의 먹거리도 대부분 수입품이다.

언젠가부터 논두렁에 제초제가 뿌려지더니 이제는 저농약 혹은 자연농 유기농 바람이 불면서는 논두렁에 풀도 대개가 그대로 둔다.
대신 논두렁 바로 밑가지 심던 벼를 한 줄이나 두줄 심기를 포기하거나 심어도 수확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런 이유 중에 하나가 모내기부터 수확하는 것까지 기계화가 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논두렁 걷기가 예전 같지는 않다.
모내기하려면 논두렁 때우기는 물론 새색시 얼굴에 분 바르듯 질척한 논흙으로 논두렁을 문질로 반질반질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논두렁 보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모내기를 해 놓으면 논에서 벼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잘 자란다.
엊그제 심은 모가 벌써 바짝 섰다.
새 뿌리도 내리기 시작한 거 같다.
지금은 저런 상태지만 뿌리를 완전히 내리고 나면 땅심 거름심으로 쑥쑥 자라는 것은 물론 가지 치기도 왕성해진다.

그러면 논바닥이 안 보이게 벼들이 꽉 차서 자라 올라온다.
그걸 바라보면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고 벼이삭이 팰 때쯤이면 산달이 다된 산모처럼 벼고동도 통통해진다.

그러다가 벼이삭을 쑥 내밀고는 아이 젖 주듯이 쭉정이 같은 벼 알갱이 알갱이마다 젖을 물린 양 여름내 젖을 주어 배를 불려 준다.
통통해진 벼 알갱이는 제법 잘 영글어 가며 감사인사를 고개 숙여서 한다.
그럴 때 즈음이면 풍년가가 울려 퍼지는데 요즘은 그 풍년가가 울릴까 싶으면 도적맞은 듯 황금물결을 그냥 겁탈당한 듯 수확당한다.

그때가 제일 아쉽고 허전하다.
예전에는 타작을 하면 부자가 된 느낌이고 타작하는 날은 동네잔치인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벼는 선채로 수탈당하듯 수확되고 어느 집 광 커녕은 주인집 대문 구경도 못하고 몸 단장은커녕 말리지도 못하고 건조장이나 정미소로 간다.

지금의 벼농사는 예전의 벼농사는 아니지만 논에서 벼가 자라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대접받는 게 다를 뿐이다.
되는 말인지 모르나 의전은 사라지고 정이 사라진 형식만 즐비한 게 지금의 벼농사란 생각이다.

오늘 논두렁을 걷다가 꼿꼿이 선 모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해봤다.

감사합니다.

2024/05/20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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