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84. 이오의 리코더 그리고 붉은 사막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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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꿈


주희 : 어디 지낼 곳을 찾아봐. 이게 뭐니? 앞으로 뭐 하려고 가출해서 이래. 그렇게 살다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게 되는 거야.

숙자 : ...

주희 : 너 꿈은 있니? 나가서 당장 뭐 할지는 생각해봤어?

숙자 : (사이, 생각난 듯) 응! 나 꿈 있어! (가방에서 신문지를 주섬주섬 꺼낸다. 침대 밖으로 건넨다) 앨리스 스프링스!

주희 : 뭐? (신문을 받아든다)

숙자 : 덮고 자다가 심심해서 봤는데, 호주에 그런 게 있대. 사막이 빨갛대. (상상하면서) 빨간 모래. 거기 갈 거야.

주희 : (질책하듯) 그게 무슨 꿈이야?

숙자 : 보고 싶다니까? 신문은 흑백이라 사막이 빨간 지 검은 지 알 수가 없잖아.

주희 : 호주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빨간 모래를 보고 싶다고? 그게 꿈이라고?

_ [스팀문학전집/희곡] 앨리스의 리코더 (단편) / 이오



그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호주, 앨리스 스프링스에 있다는 붉은 사막, 빨간 모래를 보는 것입니다.


주희의 학창시절 회상

친구1 : 주희야! 너 장래희망 뭐 썼어?

주희 : 나 리코더 연주자. (리코더 만지작거리며)

친구1 : 뭐? 리코더?

친구2 : 삐리리 삐리리 그 리코더? 장난치지 말고.

주희 : 장난 아닌데. 나 정말 리코더 연주자가 되고 싶어. 초등학생 때부터 쭉 갖고 있었던 꿈이야.

친구1 : 피아노도 아니고, 바이올린도 아니고, 웬 리코더?

친구2 : (할아버지의 탁상시계의 멜로디를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며) 이런 거를 하겠다고?

일제히 조롱하는 웃음. 조명 밝아진다.

숙자 : 언니는 꿈이 뭔데? 취업하는 거? 결혼하는 거?

주희 : (걸어놓은 면접용 정장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한다)

_ [스팀문학전집/희곡] 앨리스의 리코더 (단편) / 이오



그는 어느새 꿈을 잊고 있었습니다. 취업도, 결혼도, 누군가에게는 꿈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강요된 남의 방식일 뿐입니다. 붉은 사막을 보러 가는 것과 리코더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인 사람들은 노숙자 취급을 받거나 조롱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조각 신문지를 꺼내. 빨간색 색연필로 색칠하는 숙자.

주희 : 뭐 주게?

숙자 : 내 꿈. (진지하게 그리는 숙자)

주희 : (자기 리코더를 본다) 나 이게 꿈일 때가 있었어.

숙자 : 뭐가?

주희 : 리코더. 맨날 입에 달고 다녔어. 음악 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리코더 광이었다니까. 선생님 결혼식에서도 불렀을 정도니까.

숙자 묵묵히 들으며 그림 그린다.

주희 : 너무 예뻤어. 행복하게 웃으며 고마워하던 그 얼굴. 그런 걸 더 보고 싶었는데.

숙자 : 보고 싶었는데?

주희 : 고 1 때 친구들이 장래희망이 뭔지 물어봤었어. 리코더 연주자라고 했는데 애들이 비웃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꿈이래.

숙자 : 원래 꿈은 말도 안 되는 거야. 나는 꿈에서 달나라도 가고, 별나라도 가고 그래.

주희 : (웃음) 그런가.

숙자 : (그림 건네며) 이거.

주희 : (받아서 바라보며) 앨리스 스프링스.

숙자 : 딱 알아보네.

주희 : 붉다. 참 붉어.

_ [스팀문학전집/희곡] 앨리스의 리코더 (단편) / 이오



그는, 그의 예뻤던 리코더 소리를 듣고는 행복하게 웃으며 고마워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더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붉은 사막에서 리코더를 부는 그의 행복한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그의 미래를 향한 행진은 멈추어선 안 됩니다. 이제 다시 대서양을 건너고 태평양을 건너 미지의 대륙으로, 세계의 배꼽이 있다는 붉은 사막으로, 앨리스의 리코더를 들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원성취부


준호 : (주희를 막아서며 손목을 잡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주희 : 말 그대로야. 집 없는 애 돌봐주고 있었다고.

준호 : (분노에 차서) 넌 어떻게 된 애야!!!

준호 : 모르는 애 돌보면서, 면접도 안 가고 집 안에 처박혀 있었던 거야?

주희 : 그게 중요해? 애가 지금 없어졌다니까?

준호 : 자선 사업가 나셨네. 그래, 자선 사업하다 보니 좋디? 너보다 못 나고 불쌍한 사람 뒷바라지하니 성인군자라도 된 기분이냐? 그래, 이딴 식으로 노숙자나 집으로 끌어들이고 보살피는데 공부가 되겠냐? 넌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

준호 : (주희 어깨를 부여잡고) 취업도 하지 마. 그냥 결혼하자. 안 되겠다. 내가 너무 욕심부렸나 보다.

주희, 준호 손을 뿌리치고 못 참겠다는 듯 달려가서 리코더를 미친 듯 불어 재낀다. 다가가서 준호 말린다. 저항하는 주희.

준호 : (주희의 어깨를 미친 듯이 흔들며)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주희 : (삐- 리코더를 분노에 차 아주 크게 불고, 심호흡한 뒤 말한다) 날 좀 봐.

준호 : 너, 미쳤구나.

주희 : 아니, 나 안 미쳤어. 그리고 안 할 거야. 취업도, 결혼도.

주희, 리코더로 신들린 듯한 클래식 연주를 시작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준호,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치다 문을 꽝 닫고 나간다. 주희 계속 리코더를 불다가 주저앉는다. 수맥사. 눈치 보다가 부적 한 장을 남겨 놓은 채 퇴장한다.

수맥 : 소원성취부.

주희 울음을 참는다. 수맥사가 던져두고 간 소원성취부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주희 : 내 소원이 뭘까? (사이, 밝고 크게 말한다) 모르지 뭐, 이제부터 알게 되겠지. 그렇지? 응?

숙자 : (소리만) 응. 알게 될 거야.

주희 침대 아래로 들어간다. 그 모습이 숙자와 닮아있다

_ [스팀문학전집/희곡] 앨리스의 리코더 (단편) / 이오



그는 자신의 소원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이 될지도 알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이미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발목을 잡는 모든 것들에게 삑! 하고 리코더를 불어버렸습니다. 분노에 차 불어버린 리코더였지만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렇게라도 다시 리코더를 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제 다시 리코더를 손에 들었으니, 입술에 대고 영혼을 불어넣었으니, 연주를 시작하면 됩니다. 다시 꿈을 찾아, 소원을 이루기 위해 리코더를 불면 됩니다.



이오의 리코더 연주는 소리가 글이 되어 문장으로 재탄생합니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마치 한 테이블에 앉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이오의 글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지 않아도 이오의 글을 통해 그들과 소통합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즐거워합니다.



언젠가, 어떤 역술가가 그에게 조앤 롤링 같은 작가가 될 거라고 했다고 하니, 스팀만배는 그의 글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현존하는 마법사도 만났으니 상상하지 않아도 판타지 소설 한 세트쯤 써 내려가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그와 열심히 상호작용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가 관찰하고 느낀 우리들의 삶이, 그의 글에서 캐릭터로 이야기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아름답고 슬프고, 처연하고 감동적인 우리들의 삶이 그의 글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함께 웃고 마시고 떠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오도 자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세상을 걸어 나갈 것입니다. 또한 기록 할 것입니다.


성북동 ‘오월애’에서 함께 웃고 술을 마셨던 모든 사람들은 길 위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피터님은 스페인에서, 판관님은 러시아에서, 한열님은 도쿄에서든 어디서든. 그리고 또 네가 찾아낸 [스팀시티]의 집에서 모두 다시 모일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때에는 다시 카페두레 샌드위치를 만들고 나누어 먹고, 웰컴드링크와 커티샥 하이볼을 나누어 마시며 너무 웃겨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판관님과 소수점님의 환상의 쿵짝을 볼 것이다. 그걸 바라보며 안경을 백번쯤 벗으며 웃는 스낵님도 거기 있을 거고. 발그레한 표정으로 수줍게 앉아있는 택슨님도 거기 있을 거다. 조용히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법사님도 당연히 거기 있을 거다.

우리는 모두 손을 마주 잡고 하하호호 웃고, 또 웃고, 길 위의 얘기를 하고 행복을 나누겠지.

_ [위즈덤 레이스 + BOOK 100] to 라라님 (feat. 80일간의 세계 일주) / 이오



그의 소원은 붉은 사막, 리코더를 연주하는 것. 그래서 자신의 연주를 듣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고마워하는 얼굴을 보는 것. 그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시간을 잊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연주를 손에서 놓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거슬러 과거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연주를 시작하면 됩니다.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를 따라 리코더를 불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의 연주는 온세상의 봄의 아이들을 불러모으고, 우리 모두는 이오의 봄, 앨리스 스프링스, 그곳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붉은 사막.. 그곳에는 수맥사 대신 소원성취부를 들고 있는 마법사와 그의 새 소설책을 들고 있는 그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래바람 소리 들린다. 붉은 조명, 와글와글 사람들 소리 들리고 이내 멀어진다. 주희 홀로 등장한다. 주위를 둘러보는 주희, 더운 듯 옷깃을 당기며 손을 이마에 얹어 그늘을 만든 채 태양을 바라본다. 눈부신 듯. 그러나 도착한 것이 기쁜 듯.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무릎 꿇고 앉아서 모래를 살펴본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찾더니 그 주변을 빙 영상을 찍는다. 그 영상이 무대 뒤 스크린에 재생. 그리고 셀카 모드로 다시 바꿔서 자기 모습과 사막을 찍으며 말한다.

주희 : 정말 붉지?

스크린 속에 밝게 웃는 주희의 얼굴이 크게 보인다.
조명 더 강하게 붉어지다 암전.

_ [스팀문학전집/희곡] 앨리스의 리코더 (단편) / 이오



P.S.

결국 프라하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고 마법사에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로써 서쪽을 돌고 돌아 끝내지도 이어가지도 못했던 과거의 문장을 완벽하게 닫았노라'고 알려 왔습니다. 그의 서쪽으로, 과거로 향한 여정이 기록된 <크루즈 여행기>는 그의 친구인 라총수가 새로 시작한 [도서출판 춘자]에서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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