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10. 탈중앙화의 중심에서 총수를 외치다

in #stimcity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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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앙화와 총수


"왜 총수인가? 그것도 탈중앙화를 기치로 내세운 플랫폼에서 말이죠. 아무도 그것을 묻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더 신기했어요. 총수와 역중앙화에 대해 도발적으로 얘기하고 반발을 기대했는데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더군요. 누구라도 반발을 하면 지금의 스팀잇, 고래전쟁, 모양조차 탈중앙화가 아닌 이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묻지 않아서 허탈할 정도였어요."



마법사는 '스팀방송국의 총수님을 찾습니다'라고 말하며 '총수'라는 명칭과 '역중앙화'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탈중앙화의 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는 되는 용어와 개념일 수 있습니다. 마법사는 의도적으로 그런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총수라고 하니, 그 뉘앙스가 그놈의 트라우마 때문에, 쥐고 흔드는 독재권력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총수는, 앞장서는 자이며 본을 보이는 자입니다. 권력만 있고, 책임은 질 줄 모르는 그 놈의 재벌총수가 아니라! 모든 책임의 최종자이며, 앞장서서 깃발을 흔드는 자입니다.

總帥 :
뜻을 나타내는 수건건(巾☞옷감, 헝겊)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드리운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𠂤(퇴→수)로 이루어짐. 깃발(☞巾)을 앞세워 많은 군중(☞𠂤)을 일으킨다의 뜻을 나타냄.

_ [스팀방송국] 그대는 총수가 아니더냐 / @mmerlin



총수? 그것은 무엇일까요? 권한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는 지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안에 최종책임을 지는 위치를 말합니다. 마법사가 보기에 탈중앙화의 이 초기 플랫폼은, 물론 그 시작에서부터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인 컨센서스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무질서 그 자체였습니다. 권한의 정점에 서서 이득을 독점하면서도, 탈중앙화를 핑계로 책임만 분산시키는 못된 싹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중앙화된 권력의 폐해를 극복해보자는 거였지, 돌도끼 든 놈이 짱인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돈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봉건영주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의 스팀잇은 그랬습니다. 지금의 스팀잇은 더하지만..


"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시리즈를 연재하며, 지도자를 배제하려는 듯한 탈중앙화의 이념에 딴지를 걸고 싶었어요.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탈중앙화라는 허울 좋은 탈을 쓰고는, 권력은 마음대로 누리며 책임은 지지 않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거든요. 그런데 한국 고래들은 그것도 잘하지 못하더군요. 쭈뼛거리며 눈치 보다 에잇! 못해먹겠다 하고 발을 빼버리더라구요. 외국 고래들은 무차별 다운보팅도 잘만 하더만.."



염치와 눈치가 잘 구분되지 않는 한국인들의 정서는 오히려 스팀잇에서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고래가 더 고래답게 무식했더라면, 염치가 없었더라면, 창작자들이 굳이 마음을 주고 몸을 담그지 않았을 텐데, 고래들이 쭈뼛쭈뼛 착한(?) 척하는 바람에 창작자들의 마음에 기대감을 심어 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나의 작품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거야. 창작과 수고의 정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염치가 아닌 눈치만 발달한 고래들은 쭈뼛쭈뼛하면서도 셀봇질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할 거면 대놓고 하던지, 아무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말라고 눈총을 줘도, 그 황금알, 외국 고래들이 다 가져간다며 폭풍채굴을 난사하던지 그랬더라면, 차라리 국부라도 쌓였을 텐데 말이죠.



글빨 좋은 플랑크톤 작가들은 많은 고래들을 내쫓았습니다. 추가 투자를 차단했습니다. 스팀잇 kr의 창작자들은 참으로 지랄이었습니다. 창작물의 정당한 보상은 어디에서 받을까요? 그것은 시장에서 평가되는 것입니다. 창작물의 수준을 누가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글을 누가 정하겠습니까? 그러나 창작물의 보상은 시장이 결정하는 겁니다. 베스트셀러는 괜히 베스트셀러겠습니까? 시장이 선택한, 독자가 고른 작품이 보상을 얻게 되는 겁니다. 수준과는 상관없이. 그걸 고래보고 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고래는 큐레이션에 집중하라구요? 고래가 무슨 평론가입니까? 무슨 안목으로 좋은 글을 골라내겠습니까? 고래는 그저 돈이나 투자하고 이자와 수익을 얻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창작자는 떨어지는 낙수를 받아먹어야 하는 겁니다. 창작물의 퀄리티를 높여 커뮤니티를 확장시키는 일은 창작자들의 몫이지 고래의 의무가 아닙니다. 고래가 커뮤니티의 성장을 통한 장기적 발전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는 없는 것입니다. DPoS의 스팀잇 시스템은 그렇습니다. 조까터라도 그렇게 세팅되어 있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억울하면 새로 만들던가..



방송국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말이죠. 새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창작자들끼리 뭘 해보자고 한 거였어요. 언제까지 고래전쟁만 반복할 수는 없으니, 우리 창작자들이 죽어라고 주장하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진짜 스팀잇 kr의 창작자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가, 우리 스스로 검증해보고 증명해 보자 한 거였어요. 스팀방송국 말이죠. 콘텐츠는 점점 쌓이고, 하루 만에, 몇 시간 만에 휘발되고 있으니, 그걸 모아다가 어디 홈페이지 대문 하나라도 만들어서 차곡차곡 쌓아보자. 스팀잇 너머 외부로다가 프로모션해 보자. 그리고 정말 우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 단지 기회가 없고 투자가 없어 자신을 증명하지 못했던 거위였는지 확인해보자 했던 거죠. 그렇다고 그런 생각을 그때 낱낱이 했던 게 아니고, 이래저래 지켜보고 참견도 해보다가 무의식에 쌓여있던 게 불쑥 튀어나온 거예요. 다양한 콘텐츠가 쌓여있으니 방송국, 방송국이 좋겠어. 스.팀.방.송.국. 어때? 그걸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어요?

그런데 그걸 위원회를 만들어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놈의 합의란 걸, 의견을 모으고 의사결정을 하는 작업을, 이 탈중앙화의 블록체인에서는 시도하기가 뭣한 거예요. 얼마나 허벙합니까? 온라인의 관계라는 게 말이죠. 익명성의 방벽 뒤에 숨어, 유리할 때만 얼굴을 내밀었다, 불리하면 로그아웃하고 자취를 감춰버리는 온라인의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끝이 빤하잖아요. 어중이떠중이 다 모여서 이것저것 따지고 들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다 또랑에 처박혀 버릴 테고, 결국은 돈, 돈이 문제일 텐데, 고래 한두 명이 위원회에 스윽 발을 디밀면 결국은 위원회 안에서 고래전쟁이 벌어질 게 빤한 일이죠. 고래든, 창작자든, 누구든 일을 시작하려면 단 한 명으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법사가 참모로 지지하고 도와주면 어디로든 배가 나아가겠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중지를 모으는 합의 기구가 아니라, 권한도 갖고 책임도 지는 총수를 찾은 거예요."


우리는 그의 오른팔과 왼팔을 받치고 서서, 깃발이 내려오지 않도록.. 날개가 접히지 않도록.. 지지하고 힘을 보탤 것입니다.

입으로만 분권화, 수평적 구조, 탈 권위를 외치며, 책임지라면 꽁무니를 빼고, 나는 상관없다며 자취를 감춰대는.. 말뿐인 '공동 리더십' 따위.. 집어치우라고 하십쇼. 책임지는 자는 최종자입니다. 그것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과 권한이 그에게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집중된 권력을, 구성원과의 합의와 절차에 따라.. 다시 분배하는 것이 진정한 분권입니다. 권한도 없으면서 분권을 외치고, 권력을 나누어 줬더니 단물만 빨고 책임은 안 지는, 그따위 무책임한 '공동 리더십'에, 마법사는 어떠한 마법도 부릴 생각이 없습니다. '공동'의 명패 뒤에 숨어, 이죽거리며 기운만 빼는 어떠한 리더십에게도, 기적을 보여줄 마음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안됩니다.

그래서 총수님을 찾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막중한 자리이기에, 우리는 그를 최선을 다해 돕고자 하는 겁니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도록 힘을 보태는 것입니다.

_ [스팀방송국] 그대는 총수가 아니더냐 / @mmerlin



그건 소통이 아니야



인간 의사소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언어적 표현이 제거된, 기호와 이미지만의 소통은 사실 서로 동문서답하고 있을 뿐입니다. 말과 글의 소통은 선택적입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하지만 상대는 내 말의 100%를 듣고 있는 게 아닙니다. 말의 일부분, 어떤 부분을 받아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는 다시 그 말의 일부분, 어떤 부분에 동감하거나 반대하며 말을 이어나갑니다. 일상적인 대화와 교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고 반대하며 나의 생각도 폭을 넓히고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결정을 하는 문제는 다릅니다. 겉으로는 동의하고 있지만, 표정은 일그러져 있고, 손을 부르르 떨며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기도 합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포커페이스와 대화를 나눈다 해도, 인간의 직감과 촉은 상대의 의사와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과 글은 그저 공백을 채울 뿐입니다. 의사 표현은 온몸으로 풍겨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화와 통신이 엄청나게 발전한 이 시대에도 고관대작들은 만나서 차와 술을 마시고 밥을 먹습니다. 하는 일의 대부분이 그것입니다. 비언어적 정보를 취득하는 일,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는 일, 심지어 미래를 예측하는 일까지도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남의 상대를 구분합니다. 다루면 되는 이들에게는 자신을 노출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이미지만 주어질 뿐입니다. 홍보실에서 고치고 다듬은 글과 기사로만 제공될 뿐입니다. 그것은 권력자의 진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스템의 일방적 지시이고 합의된 전략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읽을 수 없습니다. 중앙화는 그렇게 보호됩니다. 담장 너머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중앙화의 컨센서스는 솔로몬으로부터 내려오는 그들의 비의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탈중앙화는 온라인의 그것만으로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온라인의 집단지성이 권력을 끌어내렸다고 흥분하지만, 권력을 끌어내린 것은 온라인의 댓글이 아니라 광장에 모인 촛불 든 사람, 사람들입니다. 온라인은 그것을 촉발시켰을뿐, 그것을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것은 광장입니다. 광장까지 나오게 하는 것은 온라인의 소통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복의 에너지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손과 손을 맞잡을 때에야 비로소 흐르고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은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선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하고서도 매번 실패했습니다. 쏟아져 나올 에너지를 받아 안을 시스템이 없으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그것은 거칠게 타올랐다 사라지는 캠프파이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이 당장에라도 바뀔 것 같았으나, 돌아온 삶의 현장은 하나도 나아가지 않는 현실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습니까? 열정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 그것을 받아 안을 시스템을 준비하는 것, 그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담장 안의 그들은 어떤 에너지도 시간을 끌면 사그러든다는 것을 압니다. 필요하면, 타오른 어떤 에너지도 자신들의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회유와 협박으로, 갑자기 생겨난 구심점을 흔들어 놓는 것은, 그들에게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것이니까요. 그래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탈중앙화의 철학과 함께 시스템을 내놓은 것에, 매우 크게 관심이 갔습니다. 이념과 구호는 얼마든지 외칠 수 있지만, 받아 안을 시스템이 없다면 역사의 그것들처럼 구호로만 사라지겠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당이라는 조직과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구호를 외치고 횃불을 들기 전에 우리는 먼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스템은 온라인의 댓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결정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누가 뭐래도 끝까지 끌고 나갈 책임자가 있어야 하는 거죠. 총수 말이에요."



스팀잇에 많은 시도가 생겨났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시작과 끝을 책임감 있게 마무리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처럼 등장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시도들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시도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영원할 것 같은 관계들은 스팀의 시세에 따라 잠수와 중단, 통보 없는 이별과 일방적인 단절로,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서 공을 들여 쌓아가는 진실된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스팀잇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SNS 피드 창을 통해 맺어진 관계들이야 관계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익숙한 문체와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어지는 정보를 그저 가벼운 댓글로 주고받을 뿐입니다. 널리고 널린 SNS적 관계를 여기에서까지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요? 소셜 네트워크라는 것은, 말 그대로 소셜한 관계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프라이빗하고 운명적인 관계가 아니라, '익스큐즈미', '실례합니다.' 하는 관계들에서나 의미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 형식적 관계로 중앙화의 막강한 장벽을 부숴낼 수가 있겠습니까? 담치기를 도모하기에도 연약한 관계로 무얼 할 수가 있을까요?



그간 스팀잇에서의 관계란, 고래들에게는 같은 말에 베팅한, 경마장 옆 사람 정도의 의미에 지나지 않고, 창작자들에게는 길거리 버스킹에, 동전 던져주는 지나가는 관객 이상이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시스템적으로는 말이죠. 그러나 스팀잇 kr, 몰려든 창작자들의 열정은 메시야를 만난 듯 뜨거웠고, 쏟아진 콘텐츠는 가능성 넘치는 수작들이었습니다. 좋은 글들을 놓칠세라, 피드 창을 시시각각 훑는 데 하루 일과를 써야 했고, 논의와 관점의 수준은 신선하고 참신해서,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런 듯하고 저 사람 글을 읽으면 또 저런 듯하여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창작의 욕망을 자극하는 보상 시스템은 얼마나 훌륭합니까? 읽기만 해도, 감상만 해도 돈을 벌 수 있으니 말이죠. 댓글을 달아야 하니 찬찬히 읽고 자세히 읽게 됩니다. 지속적 보팅 관계를 맺어야 하니 자꾸 읽고, 또 방문해야 합니다. 평판을 얻어야 하니, 허접한 글로 내 블로그를 장식할 수는 없습니다. 글이 안되면 리스팀이라도 잘해서 안목이라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수준이 올라갑니까? 안 올라갑니까? 사람들이 모여듭니까? 안 모여듭니까? 고래전쟁에 목멜 시간에 콘텐츠 자체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고래는 이자놀이를 하든, 경마도박을 하든 냅두고, 창작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건, 고래가 아니라 창작자들일지 모릅니다. 황금알을 낳는 것은 고래지, 창작자들이 아닙니다. 창작자들의 수준 높은 작품을 먹고, 투자를 더 하고 시세를 높여 황금알을 쏟아내는 것이 고래들의 역할이었을 겁니다. 길게 보면 그렇습니다. 짧게 보면, 도박이나 일삼는 고래들이 못마땅해 보일지 몰라도,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얼마든 수준 높은 고래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장기적 관점을 장착한 엔젤고래들을 모여들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방송국, 그거라도 시작해 보자고 했던 겁니다.



이말 저말, 말들만 많으면 한 발짝도 못 나갈 테니, 일단 누가 딱 들고 서서,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실험해 보자. 권한과 책임 모두 가지고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해 보라. 원하는 대로 도울 테니 손들고 나서보라.



총수! 총수를 찾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은 Never, 결코 없었어요. 그런 에너지도,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마법사가 아더왕, 원탁의 기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러나 여기 스팀잇에 누가, 권한과 책임의 자리에 서서, 새 시대의 깃발을 치켜들 '총수'가 되려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돕겠다. 그가 만드는 시스템에 동참하겠다 한 것이죠. 하지만 기대는 없었어요. 정말, 누가, 진짜로, 지원하는 사람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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