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76. '春子'의 귀환

in #stimcity7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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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의 입에서는 늘 검은 연기와 잿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춘자의 몸 안에서 무엇인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춘자는 그 꼴이 영 보기 싫어 한동안 입을 다물고 지냈지만, 몸을 움직여 자리를 옮길 때마다 앉은 자리에 나부끼는 허연 잿가루를 보고 기겁을 하고는 움직이는 일마저도 멈추었다. 춘자는 그대로 누워 길고 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느 가을날 아침, 춘자는 눈을 떴다. 눈 뜨기 직전까지 꾸었던 꿈에서 그녀는 쫓기고 있었는데, 꿈속에서 쫓기는 동안 느리게 재생되는 화면처럼 스쳐 간 주변의 풍경들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는 중이었다.

춘자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모래밭을 내달리다가, 파사주와 같은 구조의 어둡고 더러운 빈민굴에 들어섰다. 그 빈민굴을 통과하는 동안 굶주린 사람, 아픈 사람, 빨간 옷을 입은 사람, 구걸하는 사람, 묵언 수행을 하는 사람, 한 가지만 먹는 사람, 벌거벗은 사람, 어마어마하게 배가 나온 사람 등을 보았다. 사람들은 춘자에게 다가와 무언가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춘자는 쫓기고 있었으므로 그저 달릴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파사주의 출구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춘자는 있는 힘껏 달렸다.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춘자는 알지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 춘자는 뿅 하고 튀어나왔다. 잠에서 깨어난 춘자는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누웠던 자리가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한 것을 보고 춘자는 말했다.

"참 이상한 일이야."

춘자의 입에서는 연기도, 잿가루도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춘자는 화가 나고 말았다. 세상 모든 것이 뻔하고 지루했다.

춘자는 모두 타버리고 없어진 가슴 속 그 자리에 씩씩거리며 씨앗을 심었다. 물을 주고, 거름을 뿌리고, 싹이 나기를 기다릴 거야. 춘자는 주먹을 꽉 쥐었다. 춘자의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콕콕 박혔다.

_ 매거진 [春子] 창간호 <교토편> / 라총수



바빌론 강가에서



" '春子', 때가 되었어요."



"마법사님, 기억하세요? 바빌론의 노래 말이에요."



"기억해요.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였지만, 우리가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그 수금 타는 법을 기억지 못하리라.."



"바빌론 유수에 관한 이야기.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음악을 연주할 수 없어서 하프를 나무에 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네 맞아요. 저는 그날 그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고선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 결심했었죠. 나의 나라, 나의 땅이 아닌, 낯선 나라, 남의 땅에서, 나의 노래를 부르지도 만들지도 연주하지도 않겠노라고.."



"그리고도 벌써 수천년이 흘렀어요. 그사이 세상은 변하고 변해서, 사람들은 더이상 자신의 노래를 타의에 의해 강요받지 않아요. 누구나 노래할 수 있고,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노래를 부를 수가 있죠."



"하지만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시온을 외면한 채 관심도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노래를 팔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죠. 수금과 노래는 돈벌이의 수단이 되었을 뿐이에요. 사람들은 영혼을 팔아서 미래를 사고 있죠. 모든 것이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걸 잊은 채, 바보같이.."



"그래요. 사람들은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있어요.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하고 글을 쓰죠. 기준은 언제나 타인에게 있고, 시온에서 부르던 자신의 노래는 모두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렸죠. 그때는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이들이, 스스로 수금을 나뭇가지에 매달아버리고, 자신이 시온을 잊게 되면 아예 노래하는 법조차 기억지 못하게 해달라고 맹세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시온을 바라지 않아요. 기억을 잊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기억을 돌려 놓는다 해도 사람들은 다시 자신을 위해 노래하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들에게는 자기들을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의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그들이 식탁 위에서 던져주는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있으니까요. 비극적인 일이에요. 노래가 없는 세상. 시온을 꿈꾸지 않는 세상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그런 세상에 계속 머무를 이유가 있을까요?"



"하지만, 마법사님. 봄이 오고 있어요. 봄이 오면 시온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돌아오죠. 그리고 수금을 걸었던 바빌론 강가, 그 언덕으로 달려 올 거예요. 화창한 여름날을 아름다운 노래로 수놓아야 하니까요. 그 아이들은 수금 타는 법을 잊지 않았어요. 오로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바빌론 강가에서 소리 없는 노래를 하고, 동작 없는 춤을 추었으니까요."



"때가 된 거죠? 그렇죠? '春子', 이제 세상으로 돌아올 때가 된 거예요. 그 봄의 아이들에게 다시 수금을 돌려주고 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 주어야죠. 낯선 나라, 남의 땅이 아닌, 나의 나라, 나의 땅에서, 자신의 노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수금을 들려주고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죠."


And if I could be who you wanted
If I could be who you wanted

All the time, all the time..



휘리릭~



'春子'는 대답 없이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은 교토. 지구행진을 시작한 라총수의 손으로 '春子'는 내려왔습니다. 교토에서 라총수를 기다리던 '春子'는, <위즈덤 레이스>를 시작한 라총수를 만나, 마침내 3차원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春子'의 귀환은 이 세상에,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자신을 노래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수많은 봄의 아이들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春子'의 선택



<위즈덤 레이스>를 시작한 라총수는 어느새 오사카를 거쳐 교토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스팀시티]의 미션에 따라 동쪽으로 진행 중인 것입니다. 가라앉은 [스팀시티]를 찾기 위하여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시를 거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위즈덤 레이스>의 'CITY 100'은 100개의 도시를 여행하며 포스팅을 남기는 것을 미션으로 하고 있지만, 세상은 넓고 [스팀시티]는 어디에 가라앉아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라총수가 시작한 지구행진의 여정은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법사는 이 끝없는 여정을 시작한 라총수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매거진을 발행해 보는 게 어떻겠어요?"



"매거진이요?"



"네. 앞으로 머물게 될 도시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거예요. 한두 도시가 아니고 수십, 수백 개 도시를 거치게 될 텐데, 여행자만이 기록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묶어서 매거진으로 발행하면 어떻겠어요?"



"음.. 좋은데요. 생각해 볼게요."



라총수는 언제나 생각해 보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완성되면, 과감하게 시작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합니다. 그러니 '春子'가 라총수를 선택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春子'는 하루 이틀 자신을 드러내고 사라지려고 수천년을 기다려 온 것이 아니니까요. 세상이 사람들을 강제하여 원하지 않는 노래를 부르게 하던 때가 지나가고, 완전한 개인이 등장하여 자신의 노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노래를 연주할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이제야 마침내 봄의 아이들을 맞을 때가 되었으니, '春子'는 세상에 돌아와야 합니다. 그들을 맞이할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春子'는 자신을 세상에 내어 줄, 삶에 깊이 뿌리내린, 흔들리지 않는 누군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직관의 언어를 이해하고, 자신이 검(劍)인 것을 의심치 않으며, 기적의 성배를 찾아 나서길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여야 할 것입니다.


"[스팀시티]는 가라앉았습니다."

"네? 뭐라구요??"

41일 만에 나타난 마법사가 한 말이다. 그 말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가라앉은 [스팀시티]를 찾으러 떠나셔야 해요.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오셔야 합니다.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 네! 그러죠."

라총수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답했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오라니.. 미친 거 아니야. 이런 직관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말을 뱉질 못하게 되니, 그저 머리를 비우고 앵무새처럼 단어를 내뱉어야 한다.

"가시겠다구요?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45일 내에 떠나셔야 하는 데두요?"

"뭐.. 가면 되죠. 어차피 나갈 때가 되었기도 했고.."

뜨겁다 못해 불타는 것 같았던 [스팀시티]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사라진 [스팀시티]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어야 하는 때에.. 만일 라총수가 그것을 거절했다면 우리는 다시 [스팀시티]를 만나게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이제 현재진행형이다. [스팀시티]는 자신을 찾아오기 위한 여정에 몇 가지 조건을 걸었다.

1_ 동쪽으로 진행할 것.

2_ 한번 지나간 도시로 되돌아가지 말 것.

3_ 한 도시에 최대 한 달 이상 머물지 말 것.

4_ 커뮤니티 센터 1호점이 찾아질 때까지 돌아오지 말 것.

모두 황당하고 어려운 조건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정말 [스팀시티]는 떠오르게 되는 것일까?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시간으로, 라총수는 여정을 시작한다.

_ [스팀시티, 용기를 내] 라과장이 라총수는 되는 날 그리고 새로운 과거



라총수는 이전의 생들로부터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春子'를 세상에 내어놓고, 봄의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스팀시티]의 총수로서의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차곡차곡 자신의 삶에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1분 1초도 눈 감지 말고
늘 날 선 눈으로
하지만 냉소하지는 말고
두 주먹은 불끈 쥐고
끊임없이 배우고, 사유하고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둘러보고, 다가가고, 움직이고
둘러보게 만들고, 다가오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들고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의미를 만들어내고..

10년 전 일기에 적어둔 다짐 비슷한 것입니다. 내게는 그때보다 지금 더 유효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지금 이 시점에 뒤적거리다 이 다짐을 다시 읽게 된 이유가 있겠지요. 이 여행을 시작하며 당신의 이야기를 읽게 된 것처럼 말이에요.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두고 리폼 클럽의 회원들과 내기를 시작했을 때, 예기치 않게 여행이 지체되면 내기에 건 돈을 잃게 된다는 다른 회원의 말에 당신은 망설임 없이 말했죠.

"예기치 않은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고요.

변하고 또 변할 것이기 때문에 잃는 것이 두렵지 않은 건가요?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쉽지도 않은 건가요? 당신의 여행은 결과적으로 예기치 않은 일투성이던 걸요? 아니면 그조차도 예기한 일인가요? 내 여행은 늘 예기치 않은 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예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흐름에 맡길 뿐입니다.

당신의 배짱에 감탄하면서도 사실 콧방귀를 뀌었답니다.

그런데 순간순간 빛이 나는 당신의 기지에 얼마나 무릎을 치며 감탄했는지! 콧방귀 뀌어서 미안해요. 예기했든, 하지 못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어쩌면 당신과 나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이 그러했듯 나 또한 기지를 발휘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뭐랄까. 트렌드, 흐름, 법칙, 고정관념, 관습, 그 모든 것을 꿰뚫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그런 기지 말입니다. 이리 보면 ㄱ이고, 저리 보면 ㄴ인 것이 삶인데, 뭐, ‘흐름'이니 ‘법칙’ 따위는 얼어 죽을, 개나 주라고, 소리치고 싶은데요. 저는.

_ [위즈덤 레이스 + BOOK 100] 기지를 발휘해야 할 때 (80일간의 세계 일주) / 라총수



그리고 춘자를 통해 그 기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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