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68. 지친 풍총수와 그를 자극하는 운명의 부름 (1)

in #stimcity8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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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변



롤랑의 노래.. 멀린은 그 작품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풍총수의 어느 생. 그가 자주 언급하던 그의 평행우주 속 이야기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가 총수를 지원하던 그때의 이야기 말입니다.


[스팀시티]는 가라앉으며 우리에게 [스팀방송국]의 총수를 남겨두고 갔습니다. 그런데 만나고 보니 그가 [스팀방송국]의 총수로 내정되어 있었다는 건,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있었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총수로 내정되어 있던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있었지만 전 잠시 동안이나마 그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스팀시티] 총수 지원 탈락의 변 / 풍총수)

그걸 모르고 그는..

"저는 총수를 지원했고 장렬히 탈락하고야 말았습니다. 대신 연구위원직을 맡게 되었군요. 주된 업무는 스팀시티에 대한 법무 지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로써 스팀잇에서는 변호사 일 나부랭이는 하지 않겠다는 제 결심도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스팀시티] 총수 지원 탈락의 변 / 풍총수)

아닙니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탈락해서 법무 지원을 맡게 된 게 아니라, 총수 추대 개별 미팅이 끝나고 총수 지원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누가 묻기도 전에..

"저는 스팀시티의 법무 지원을 맡겠습니다."

라고 선수를 치셨습니다. 누가 뭐랍니까? 멀쩡하게 회사 잘 다니시는 분을 마구 몰아붙여서 총수로 추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어쨌거나 총수는 철저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자격요건이었으니 말이죠.

_ [스팀방송국]의 총수를 발표합니다



"그는 가장 적극적으로 총수에 자원했어요. 마치 자기를 놔두고 먼저 시작해 버리면 안 된다고 애원하는 듯했죠. 그러나 총수 추대의 기준에서 직장인은 제외되어 있었어요. 그것은 운명을 바꾸는 일이니. 함부로 직장을 그만둬라 마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회사의 노예와 총수를 병행할 수는 없습니다. 가치관에 혼동이 올 테고 그것은 반드시 [스팀시티]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운명은 이미 다른 경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뒤바뀌려면 그만한 계기가 필요하죠. 그런 것 없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고 그 결과가 불확실한 일이니, 삶의 경로상에 [스팀시티]가 놓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있는가가 총수 추대의 기준이었어요. 그는 이미 굴지의 국내 자동차 회사의 기업 변호사로 재직 중이었고 입사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후보에서 배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 또한 뭘 묻기도 전에, 자신은 [스팀시티]의 법무 지원을 맡겠다고 발을 빼고 있었어요. 모두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직관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그건 이미 처음 총수를 지원하던 시작부터 그랬어요."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가 단 총수 지원의 댓글은 너무도 급박하고 장렬했습니다.

"지금 읽었네요. 마감 한 시간 남은 듯요. 일단 지원합니다! 지금 글 2개 읽었는데, 나머지 다 읽고 지원하면 늦을 거 같아서요!" (RE: [스팀방송국 (8)] 북한의 X세대가 오고 있다)

"어떻게 지원하나요? 아직 마감 안 끝났죠? 지원합니다 휘리릭" (RE: [스팀방송국 (5)] 스팀방송국의 수익모델)

"대단한 기획력이시네요 정말 스팀잇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ㅎㅎ” (RE: [스팀방송국 (6)] 스팀방송국은 스팀만배의 시작이다.)

"시답잖은 생업에 종사해서 글도 못 읽는 동안 이런 위험하고 웅장하면서도 대단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니... 아아아아악” (RE: [스팀방송국 (8)] 북한의 X세대가 오고 있다)

"총수지원했습니다 ㅋㅋㅋ 아뇨 멀린님, 겸손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근거 있는 자신감 잘 보았습니다 ^^ 꼭 총수 아니더라도, 스팀 방송국에서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맡길 바랍니다~!!! (RE: 인생은 결과인가 아니면 과정인가)



"총수 지원 마감 시한을 몇 시간 앞둔 마지막 날이었어요. 뭐 하다 이제 읽었는지 그는 부리나케 총수에 지원했어요. 그의 뜨거운 댓글을 읽는 마법사도 당황할 정도였어요. 아.. 이게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가슴 끓게 하는 제안인가 싶었죠. 취해서 쓴 글이 아니라면 말이죠. 사실 직관을 따라 써 내려가고 있었지만, 마법사조차 그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일이었으니까요. 그저 마법의 관례에 따라 결과를 미리 생각하지 않는 순종으로 직관을 받아 적고 있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아마도 기억하기론 가장 뜨거운 리액션이었던 것 같아요. 다들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었는데, 풍총수의 그것은 마치 소개팅 자리에 늦은 대학 신입생의 애끓는 마음 같았고, 선착순 콘서트 티켓 배부 소식을 뒤늦게 알고 달려가는 사생팬 같았으며, 문이 닫히고 있는 전동차로 점프하는 지각생같이 간절했죠. 지금까지도 여전히 [스팀시티]에 그렇게 뜨겁게 반응한 이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열정만으로는, 그가 총수가 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총수가 되기에는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을 잔뜩 짊어진 채였어요."


그런데. 그런데!! 왜 말입니까? 왜 여세를 몰아서 총수 자리를 획득하시지, '저는 법률 지원을 하겠습니다.'라며 누가 묻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한 발을 빼신 겁니까?

"마감 한 시간을 남겨두고 지원한 것도 그렇고 마법처럼 마법사 멀린님을 만난 것도 그렇고, 어쩌면 제가 총수를 하는 것 또한 운명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죠.

어차피 언젠가 리스크를 안을 생각을 했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이번 스팀시티의 총수를 전임하는 게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예상치 못했을 많은 고난들이 어찌 없겠냐만은 적어도 마법사님이 제안하신 이 사업의 구상은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성공을 의심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비즈니스로 보였으니까요.

그럼에도 결국 총수 자리에 적극적 지원하지 않은 것은, 이 글 서두에 밝힌,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과연 이 총수 자리가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쉽사리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생을 걸고 아직 초입 단계에 불과한 프로젝트를 앞장서서 이끌고 나갈 용기가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실은 예전에도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과연 직장을 그만두고 언젠가 전업 글쟁이로 살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No였습니다. 나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실은 저는 '전 틈틈이 글도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냥 스스로 맥없는 월급쟁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 좀 더 튀는 자기소개나 하길 희망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자신을 속이지는 않습니다. 네 저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스팀시티] 총수 지원 탈락의 변 / 풍총수)

이해합니다. 누구도 남의 인생을 대신 결정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거는 일에는 두 가지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지혜와 용기'. 그간 써오신 글을 볼 때 그의 지혜는 참으로 출중해 보입니다. 그러나 용기는..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여기 글로만 소통하는 스팀잇에서 그대의 용기는 어디에 달아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핑계로 대신다면.. 뭐 일단 수용하고 볼 일입니다. 그러나 운명은 어쩔까요? 이럴 때 운명은 용기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질책하고 무장시킵니다.

_ [스팀방송국]의 총수를 발표합니다.



용기라.. 결국 그때의 말은 비겁한 변명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총수가 되었으니 말이죠. 사람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며 변명을 하지만, 결국은 운명이 이끄는 대로 질질 끌려갑니다. 멋지게 운명보다 앞서 자신의 길을 선포하고 나아가면 좋으련만.. 질질 끌려가는 길에 쏟아져 나오는 비명은 변명을 무색케 하고 스스로를 쪽팔리게 만듭니다. 그때에 그는 자신의 용기 없음을 변명의 무기로 방어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는 무모한 행동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운명을 시험해봤자


"하지만 그런 자기 분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더군요. 예전 포르투갈 왕이 국운을 걸고 인도와 무역로를 개통할 사령관을 뽑을 당시의 일입니다. 오랫동안 머리를 싸매다가 머리가 너무 아팠던 그는 그냥 길에 가는 사람을 사령관으로 지정했죠. 그 사람은 바로 불세출의 탐험가였던 바스코 다 가마였습니다. 피에르 가르댕은 선택의 기로에서 동전을 던져 진로를 결정했고 유명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술한 수많은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한 번 저도 스스로의 운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회사 로비에는 새로 런칭된 차량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른 출근 시간, 졸림을 이기지 못한 어떤 신입 사원이 그 안에서 잠을 자다가 마침 그 시간 차량 문을 열어 본 총수에게 들켜 회사에서 잘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옵니다(제가 알기로는 실화입니다). 만약 이 회사에서 잘리면 그것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 티브이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모델의 차량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근무 시작 시간까지 아무도 그 문을 열지 않더군요.

이로써 제 운은 총수와는 맞지 않는다는 최종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다만 연구위원의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스팀시티] 총수 지원 탈락의 변 / 풍총수)

하하하. 용기를 내셨었군요. 운명을 시험해 보는 것도 보통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결과가 나올까 봐 말이죠. 그래서 동전을 던지는 일에는 실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기왕 용기 내실 거, 운명을 시험해 보지 말고, 선택했더라면 어땠겠습니까?

'시답잖은 생업에 종사해서 글도 못 읽는 동안 이런 위험하고 웅장하면서도 대단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니... 아아아아악'

이 심정으로 말이죠. 출근하는 회장님이 차 문을 열어보시기를 시험하지 말고, 출근하시는 회장님 차 문을 열어제끼며 사표를 쑤욱 내밀고는

"회장님, 저는 [스팀시티]의 총수가 되려고 합니다. 잘 먹고 잘 사십시오!"

했더라면 회장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_ [스팀방송국]의 총수를 발표합니다.



운 나쁘게도(?) 회장님 눈에 들키지는 않았지만, 운명을 시험한답시고 자동차 속에 숨어든 그의 덜미를 잡아챈 것은 운명이었습니다. 운명은,


쇼하고 앉아 있네



라며 그를 자동차에서 끌어내어 광명 천하에 던져 버렸습니다. 비겁한 변명 따위는 집어치우고 가서 총수나 하라고 말이죠. 결국, 그는 그 뜨거웠던 [스팀시티]의 여름,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회사가 그를 그만두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는 시덥잖은 생업 따위를 집어치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 운명에 뒷덜미를 잡혀 끌려 나오고 말았습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운명적으로 사령관이 된 불세출의 탐험가처럼 말이죠.



교토에서 돌아온 멀린에게 [스팀시티]는 그를 만나보라고 지령을 내렸습니다. [스팀시티]가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마침 비어 있던 [스팀방송국]의 총수의 자리를 제안하라고 말이죠. 마법사는 많은 말이 떠올랐으나, 마법의 관례에 따라 [스팀시티]의 지령을 국어책 읽는 심정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


"[스팀방송국]의 총수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이렇게 된 거 운명으로 받아들이시고 [스팀방송국]의 총수를 하시죠?"

"네.. 그러죠."

뭐라고.. 사양이라도.. 하시지. 뭔가 막 많은 말을 준비해 갔던 마법사는 합죽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_ [스팀방송국]의 총수를 발표합니다.



그는 이번에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총수직을 수락했습니다. 운명의 매운맛을 본 걸까요?



"아니요. 그는 화가 난 것 같아요. 운명이 자신을 비껴가기를 바랐는데 결국 들켜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스팀방송국]의 총수 자리 제안을 수락한 것은, 위험해 보이지만 흥미가 생기는 마법사와의 계약을 수락한 것이지. (자신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흥미롭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통령을 꿈꾸던 사람이라면) 저 댓글에서의 열정으로 지원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같은 이유로 멀린님과 계속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권력자라면 괴벨스처럼 대책 없이 사람들을 선동할 사람은 멀리하는 게 답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전 가진 것도 없고 그래서 딱히 위해될 것도 없거든요. 정석대로 산다면 중년이나 되어 겨우 파트너가 될 수 있을 텐데, 어차피 그런 삶을 지향하지 않는 이상은 좀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을 포트폴리오에 넣고 가도 나쁠 것이 없겠죠. 뭔가 십달러로 만불을 만들려면 정상적인 루트를 이용해서는 안 될테니까요. 그런 이유로 저는 멀린님이 대단히 위험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멀린님과 계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_ 멀린은 어떤 사람이고 풍류판관은 어떤 사람인가? - 스팀방송국 총수직을 수락하며 / 풍총수



그의 총수 수락 포스팅에는 [스팀시티], [스팀방송국]에 대한 기대와 포부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간의 마법사의 행적에 대한 장황한 관전평과, 뭐 딱히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으니 한 번 해보겠다는 매우 중2 반장 당선 소감스러운 인사말만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적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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