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16. 폐차가 되어버린 선택

in #stimcity11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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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시지요.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요? 마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이었을까요? 아니면 마법사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일정과 절차에 대한 부분은 동의한다는 의미였을까요? 아니면 뭔 말인지 모르겠고 당신 마음대로 하쇼 라는 뜻이었을까요? 마법사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실수였고 방심이었습니다.


"음.. 실수라면 의도적이었고, 방심이라면 믿고 싶었기 때문일 거에요. 그러나 의도를 배제하고 신중했다면, 믿음을 내려놓고 치밀했다면, 묻고 또 물었겠죠. '무슨 의미인가요?', '마법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가요?', '절차와 형식에만 동의 하겠다는 건가요?', '됐다 난 그만둘 테니, 당신이 알아서 해라'라는 뜻인가요?.... 그걸 확인하지 않았어요.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단 지켜보기로 했어요. 일단 메일에 적은 대로 일정을 진행했죠. 그 과정에서 F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추가로 이어진 마법사의 포스팅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댓글 활동도 멈추었어요. 그저 지켜보는 듯했어요. 의도를 알 수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인 의미로 지켜보는 듯해서, 마법사의 제안은 수용할 뜻이 없으리라 간주하고 일정을 진행했죠."



'그렇게 하시지요'의 최소의 의미는 향후 일정과 절차에 대한 동의일 겁니다. 마법사는 최소의 동의로 간주하고 일정을 진행했습니다. 이 구간은 매우 중요한 구간입니다. 제안한 자로서 더이상 묻지 않는 것은 배려를 가장한 회피일 수 있고, 제안을 받은 자로서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은 고민을 위장한 유리한 상황 모색일 수 있습니다. 그 공백에서 저마다의 입장이 교차하고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제안의 지점, 수락과 합의의 지점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의견은 갈라진 채 동거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명쾌하지 않은 동거는 살을 찢어나가는 과정입니다. 관계의 망을 탄성의 극한까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의 대결입니다. 선택의 지점을 그냥 지나친 채로 묻고 가게 되는 순간, 인과는 이미 시작되고 응보는 크기를 더해가는 것입니다. 길어질수록 피로는 극심해지고 상처의 폭은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에서는 한쪽의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싫은 소리를 또 한 번 해야 하기 때문이죠.


"지친 마법사는 단호할 수가 없었어요. 에너지가 바닥나 있었거든요. 물론 직관이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어느 때에라도 단호했을 거예요. 그러나 직관조차 침묵하고 있었어요. (무시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쩌면 모두에게 기회였을 거에요. F를 활용하고 싶은 마법사에게도, [스팀시티]의 기회를 확인하고 싶은 F에게도.. 그러나 둘 다 명쾌하게 대응하지 못했어요. 에너지가 없어 단호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상대를 배려하는 척하죠. 좋게좋게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눈치싸움을 하죠. 그러나 그것은 기만입니다.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고 상대를 기만하는 일이며 운명을 기만하는 일이에요. 물어야 했어요. "당신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선택으로 간주하고 어설픈 동행을 이어가는 것은 무례한 일이며 서로를 이용하는 기만적 행위예요. 그것을 마법사는 놓쳤어요. F에게 배려랍시고, 존중이랍시고, 분명한 선택의 답변을 묻지 않고 총수추대식에 초대한 것이죠."



총수추대식에 나타난 F



마법사는 F에게 총수추대식에 참석할 수 있냐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총수추대위원인 F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각성한 마법사로서는, 초대 이전에 마법사의 제안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다시 한번 물었어야 합니다. 그것은 상호 간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향후 행보에 오해가 없게 하는 진짜 배려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편하고 애매해져 버린 상황을 그냥 지나치려 합니다. 일단 지켜보자며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보통 그다음 기회란 것은 오지 않고, 더 악화된 상황만이 줄을 지어 찾아옵니다. 선택은 신중하더라도 후회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냥 지나쳐 버린 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감당하기 어려워지니까요.


"각성이 제대로 안 되었던 걸까요? 이런 일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여러 번 경험했음에도, 마법사는 집중하지 못했어요. 아니 그냥 선택한 걸로 간주하고 싶었나 봐요. 이건 F의 선택이 아니라 마법사의 선택이었어요. [스팀시티]의 멤버로 간주하는 일 말이죠.

그는 총수추대식에 나타났어요. 비행기를 타고 말이죠. 먼 길을 일부러 참석하러 왔어요. 초대는 했지만, 그가 진짜로 올 줄은 몰랐어요. 그냥 추대식을 한다고 알려주려고 했을 뿐이고, 예의상 참석이 가능하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가 정말로 비행기를 타고 추대식에 나타난 거예요. 당황했죠. 아.. 답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그 자리에서 물을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우리는 서로 언급하지 않은 채 행동했고, 그는 여전히 총수추대위원으로서 [스팀시티]의 멤버인 듯, 아닌 듯 행동했죠. 답변을 확실히 하지 않았으니 그전처럼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활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이미 일은 추대된 총수들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겉으로는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죠. 마법사는 그래서 그를 경계에 두고, 운명이 그에게 기회를 주고 있나 보다, 다음 모멘텀이 나타날 때까지 지켜보아야겠다며 나이브하게 생각하고 있었죠. 마법사의 실책입니다. 사람의 운명을 두고 너무 나이브했어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



직관의 메시지가 거부되거나 나이브하게 다루어질 때, 운명은 사건과 사고로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진입금지 표지를 무시하고 달리고 있다는 의미이니까요. 표지 뒤에 무엇이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절벽이 있을지, 수렁이 있을지.. 그러나 직관이 브레이크를 거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마법사는 직관이 브레이크를 거는 것 같지 않아 일단 직진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집중력을 회복하지 못한 마법사의 나이브한 판단이었습니다. F는 사건의 중심에 휘말렸고 사고의 당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폐차가 되어버린 선택


"사고가 일어났어요. 교통사고.. 그와는 총수추대식 이후 한 달여 만에 다시 만나는 날이었어요. [스팀시티]의 첫번째 행사인 <미니스트릿인서울>이 열리는 전날이었죠. 행사 준비를 돕겠다며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서 일어났죠. 교통사고.."



보안과 직관의 혼선 속에서 그의 자동차는 급커브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과 충돌했습니다. 자동차는 폐차를 시켜야 할 정도로 큰 사고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다치지 않고 무사했습니다. 그는 자동차는 폐차장으로 보내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병원에 들러 간단하게 처치를 받았습니다. 오른팔에 금이 갔는지 욱신거렸기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이에요. 큰일이 날 뻔했어요. 아니 큰일이 났죠. 다행한 일이었을 뿐. 누구든 이 정도의 사고면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거예요. 큰 외상이 보이지 않아 입원을 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안정을 취해야 할 일이죠. 그리고 누구라도 이런 일이 생기면 불길한 느낌을 받기 마련일거에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그는 오른팔에 붕대를 하고 나타났어요. 차는 폐차가 될 정도로 부서졌는데 그 와중에 비행편을 취소하고 다시 예매해서, 기어코 약속장소에 나타난 거예요. 그것은 약속을 지키려는 신의였을까요? 배제되지 않으려는,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는 욕심이었을까요?"



우려했던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선택의 경계에 모호하게 서 있던 F를, 운명은 위기 속으로 몰고 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F에게 매우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보안 프로그램 너머로 나서지 말 것.


"이미 선택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법사는 모멘텀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F는 이미 선택했어요. 자신의 방호벽 안에 머물기로.. 그는 자신의 방호벽 안에서 [스팀시티]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러면 그렇게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거에요. 자동차를 몰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날아올 일이 아니었어요. 그의 근거지 안에서, 그의 보안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말았어야 해요. 그러나 그는 넘어섰고 브레이크는 제동이 걸리지 않았어요. 핸들도 말을 듣지 않았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발광 수류탄이 차 안에서 폭발한 것 같았다는 그의 표현대로, 이불 밖은 위험합니다. [스팀시티]는 위험합니다. 마법사는 더더욱 위험합니다. 그의 보안 프로그램 너머에 있으니까요. 무지개를 찾아 나서려면 보안 프로그램부터 해제를 해야 해요. 그리고 [스팀시티]의 마법사에게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답변을 해야 했죠. 무단이탈을 감행한 F를 그의 보안 프로그램조차 보호해 줄 수 없었나 봅니다."



다행히 에어백이 터졌습니다. 덕분에 마법사는 위기를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F가 들었던, 가드레일과 충돌할 때 발생한 첫번째 충돌음입니다. 그리고 에어백이 터지면서 들려온 두번째 충돌음은 마법사에게서 나왔습니다. 이생은 여기까지..


"폐차된 자동차는 마법사가 F에게 제안했던 최초의 선택입니다. 그것은 이미 폐차장으로 사라졌죠. 그는 이미 자신의 보안 프로그램 안에 머물기로 선택했던 겁니다. 그러나 욕심을 따라 무단이탈을 한 것이죠. 그 정도의 교통사고를 무릅쓰고, 약속을 지키겠다며, 오른팔에 붕대를 감은 채 일을 돕겠다고 나타난 이를 만나게 되면, 누구나 서늘하고 섬뜩한 감정을 느끼게 될 거예요. 그는 F가 아닌 화상전화 속 박순열일 테니까요."



그는 사고의 와중에도 매우 침착했습니다. 보험사에 연락을 하고, 경찰서에 사고를 접수를 하고, 탑승 시간을 약 1시간 30분 정도 남겨 둔 상황에서,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온라인 체크인까지 끝난 항공편을 취소하는 일까지..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미 체크인이 끝난 항공권은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으로 취소할 수가 없다는군요. 사고처리 등으로 전화 통화가 어려울 텐데, 체크인까지 마친 상황에서 탑승을 하지 않으면, 공항 내 방송으로 자신을 찾느라 난리가 날 것이므로,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체크인 취소와 함께 취소/환불 절차까지 밟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항공권을 예약했죠. 약속장소로 가기 위한 항공권. 그의 선택도 취소되고 기회마저 환불된 줄도 모르고..


"그는 그의 말만큼이나 치밀하고 꼼꼼한 사람이에요. 그러나 시작하는 [스팀시티]는 엉성하고 어설프죠. 시작되는 관계들을 흔들려는 외부 손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해요.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인 동호회여서는 안되죠. 돈이 걸리고, 운명이 걸린 위험한 비즈니스, 인류사에 새로운 국면을 열 혁명적 혼란의 현장에 진입하고 있어요. 그래서 마법사는 그에게 기대했어요.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험이 많은 그가 이 시작되는 커뮤니티를 잘 보호해 줄 수 있을 거라, 할 일이 많은 이 [스팀시티]에 그의 성실하고 꼼꼼한 능력이 마음껏 발휘되어 구멍 난 부분들을 메워주기를.. 그래서 애써 직관을 무시했나 봐요. 그가 필요하다고 느꼈으니.. 그러나 그것은 그를 이용하는 것이죠.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그를 이용만 하려는 위험한 태도인 거에요. 서로 원하고 필요로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은 선택 이후의 일들이죠. 운명과의 계약 없이 [스팀시티]에 진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때로 목숨을 담보로 하니까요."



그는 아픈 줄도 모르고 날아왔습니다. 이렇게나 위험한 이불 밖으로 말입니다. 다행히 사고는 그것으로 끝났지만, 운명의 경고를 무시하고 서울로 날아 온 F에게는 또 다른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충돌음을 경고로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그리고 안전한 방호벽 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선택은 이미 이루어졌고 기회와 함께 폐차장으로 보내버렸으니까요. [스팀시티]는 그에게 매우 위험할 뿐만 아니라, 지친 마법사는 그를 보호해 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마법사도 기만하고 방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사고.. 그것은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니었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불길하게 느꼈어야 할 경고이죠. 그것은 이미 '그렇게 하시지요.'라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로 불투명한 경계에 서버린 F에게, 더 이상 진입을 시도하지 말라는 운명의 매우 심각한 경고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경은 다친 팔과 운명의 경고에 있지 않고, 자신의 성실성과 치밀함, 희생적인 태도를 증명해 보일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붕대를 감고 나타난 그를 보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어요. 그리고 그 예감은 매우 빠르게 사건으로 비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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