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류학자의 초록색 일기장] 헤어짐이라는 일상

in #stimcity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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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nowflower




혼자가 되어버린 티베트 난민

망명하는 티베트인들은 대부분 혼자 인도로 건너온다. 인도로 오는 길은 쉽지 않은 여정이다. 밤에만 움직여야 하고, 공안에게 들킬까봐 노심초사해야 하며, 네팔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경찰의 의심을 받으면 유치장에 갇힐 수도 있다. 혼자 오는 것도 모자라 가족에게 비밀로 하는 경우도 많다. 모두가 반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가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고, 가족 구성원 중 여러 명이 한꺼번에 사라지면 공안의 감시대상이 되어 티베트에 남게 될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혼자가 된다.

인도에 오면 가지고 있던 모든 인간관계가 갑자기 사라진다.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티베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오는 것보다 더 힘들다. 혼자가 되어버린 티베트 망명인들은 이 낯선 곳에서 어떻게 또다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는 걸까.


새로운 관계를 만들다

망명 티베트인들의 인간관계는 고향이 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고향이 같은 사람을 ‘파율 찍빠’라고 하는데 '파율'은 고향', ‘찍빠'는 '같다'는 뜻이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영역까지 서로에게 큰 도움을 주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경조사는 물론 생일을 함께 보내거나 이사를 돕는 일 정도는 당연하다. 총리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고향 사람에게 투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티베트는 우짱(현재 티벳자치구와 청해성 일부), 캄(사천성, 운남성, 청해성의 일부), 암도(청해성, 사천성, 감숙성의 일부)로 나뉘는데 그 광활한 땅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 사이에 지역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덩그러니 남은 망명인들에게 고향 사람들은 가족 그 이상이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에 있는 가족보다 바로 옆집에 사는 고향 친구에게 더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Y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도 다른 지역에 가서 살 수도 있어. 다람살라는 월세도 너무 비싸고 살림살이가 빠듯하거든. 하지만 어쩌겠니. 다른 지역에 사는 티베트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야. 난 그들과 말이 통하지 않잖아. 티베트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다람살라에 살고 내 고향 사람들도 대부분 여기 있어. 그래서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이곳을 떠나면 정말 외로워질 거야.”


언젠가 헤어지거나, 남남이거나

결혼도 같은 고향 사람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연애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T에게는 남편에게 배신당한 친구가 있었다.

“결혼한 친구가 있었어. 사실 결혼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어. 가족도 없는 곳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도 없고 여기에선 그냥 같이 살기 시작하면 결혼이야.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떠난 거야. 티베트에 처자식을 두고 와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야. 결혼식을 안 올렸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부부로 인정하고 있었고 같이 산 지 3년이나 됐는데 남편은 그 말 한마디만 남기고 떠나버렸어. 다람살라에서 만난 티베트 사람들은 서로가 티베트에서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전혀 모르잖아. 다람살라에서 만나는 티베트 사람들을 완전히 믿는다는 건 우리에게 힘든 일이야. “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어렵지만, ‘난민’들의 인간관계에는 보통의 인간관계와는 다른 특수한 어려움이 있다. 남녀관계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면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데 그러한 믿음도 사실 오래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람살라에 사는 티베트인들에게 '헤어짐'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많은 티베트인은 언젠가 티베트로 돌아가거나 유럽, 미국과 같은 해외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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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은 말했다.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사람들, 특히 나같이 티베트에서 온 사람들은 연애하다가 제대로 이별을 해 본 적이 없을 거야. 언젠간 둘 중의 한 명이 어디론가 떠나거든. 다람살라를 떠날 기회가 오면 모두가 잡으려고 하지. 티베트로 다시 돌아가든 해외로 나가든. 그렇게 되면 그냥 자연스레 남남이 되는 거야. “

이들은 언젠가는 헤어지거나 남남이 되는 결말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인간관계를 맺는다. 나 또한 그들과 매일을 함께 하며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깊은 연대를 형성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고 나는 이제 그곳에 없다.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미 떠나 그곳에 없다. 내가 떠나든 그들이 떠나든 누군가는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로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구는 한 친구의 말에도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헤어짐이 일상인 그들과 어떻게 의미있는 관계를 맺어야 할까. 나에게는 여전히 너무 어려운 문제다.




어느 인류학자의 초록색 일기장_by @snow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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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timcity-lits님

랜덤 보팅!!

소소하게 보팅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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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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