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류학자의 초록색 일기장] 히말라야를 넘는 사람들

in #stimcity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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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now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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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17살의 한 소녀가 홀로, 티베트에서 인도로 넘어왔다.

이런 이들은 티베트 난민 사회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목숨을 건 망명 이야기가 넘쳐난다. 조사를 위해 수많은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무뎌질 법도 하지만, 들을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앞에서 감히 눈물을 보일 수조차 없다.

이 기록은, 그 많은 이야기 중 하나이다.

다람살라에 오는 여행객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난민'이라는 어휘에 어울리지 않는 티베트인들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다람살라에 사는 티베트 난민들은 늘 웃고 있지만, 사실 매일매일 고뇌하며 애써 견디고 있다.

그들은 '난민'이다. 이유가 어떻든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어온 난민이다.




인도에 오기 전까지는 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남의 집으로 시집가는 게 너무 싫었어. 그러던 중에 인도로 망명했다가 다시 티베트로 돌아온 스님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인도에 가면 무료로 공부할 수 있고 달라이 라마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

나는 그때 매일 가축을 돌보고 동충하초를 캐러 다녔는데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인도 생각뿐이었어. 혼자 차근차근 인도에 갈 계획을 세우면서 인도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다녔지. 라싸의 새라 사원에서 수행 중인 사촌오빠가 인도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길래 나도 데려가 달라고 엄청나게 졸랐어. 너무 위험하니까 안 된다고 하더라고. 부모님이 알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도 난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 인도에 가면 정말 좋을 것 같았거든.

라싸에 사는 사촌 오빠가 인도에 가는 걸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 오빠에겐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지.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향을 떠나서 사촌오빠와 라싸에 같이 왔어. 평상시처럼 그냥 엄마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 하고 나왔어. 엄마는 내가 인도에 갈 거라고 상상도 못 했을 거야.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엄마에게 정말 미안하고 눈물이 나와.

청두에서 라싸까지 기차를 타고 갔어. 라싸에서 몇 개월간 있으면서 이것저것 준비했어. 라싸에서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성지순례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거짓말을 했지.

사촌오빠가 인도로 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도와줬어. 사촌오빠의 친구 중 한 명이 라싸와 장무를 오고 가는 장사꾼이었는데 그와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었어. 장무까지는 그 장사꾼의 차를 타고 갔어. 차 안에 6~7명 정도가 타고 있었는데 나는 장사꾼의 조수인 것처럼 위장해서 같이 탔어. 나머지는 다 장사꾼들이었고 나만 인도로 가려고 하는 사람이었지.

중간에 중국 공안들이 나의 신상에 관해 물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입을 맞췄던 대로 대답했어. 사촌오빠가 그 장사꾼 친구에게 돈을 줬는지는 모르겠어. 아마 줬을 거야. 위험한 일이니까. 장무에 도착해서는 이틀 정도 지내고, 다음 날 밤에 추바(티벳 전통의상)에서 청바지 같은 옷으로 싹 다 갈아입었어. 거기부터 네팔까지 걸어 갔지. 그들은 2주 정도가 걸릴 거라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더 걸린 것 같아. 아마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어. 거의 밤에만 걸었고, 낮에는 동굴 같은 곳에서 잤어. 음식은 매일 짬빠(보릿가루)만 먹었고.

장무부터는 거기서 만난 스님 5명과 함께 걸었어. 사촌 오빠가 내가 그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두었거든. 그들은 장무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어. 네팔 브로커가 우리들과 함께 갔는데 그에게 돈을 많이 줬다고 들었어. 다른 짐들은 사촌오빠가 이미 네팔에 있는 난민센터에 보내 놔서 나는 먹을 것만 챙겨갈 수 있었어.

항상 산 위를 걷다가 하루는 산 밑으로 내려와 어떤 동네에 갔어. 어딘지는 잘 모르겠어. 네팔 브로커가 이제 거의 다 도착해서 안전하다고 하더라고. 한두 명씩 따로따로 브로커와 움직이기로 했어. 일단 브로커가 두 스님과 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나머지 스님들과 움직이는 식으로 말이야. 나는 그때 그 브로커의 딸인 두 네팔 여자와 같이 있었어. 네팔 옷으로 갈아 입었지. 그때 난생 처음으로 처음으로 슬리퍼를 신어서 걸음걸이가 진짜 이상했을 거야.

그런데 길에 경찰서가 있는 거야. 이상하게 나에게만 엄청 질문을 해댔고 결국 이유 없이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어. 나는 뭔가 모자란 아이처럼 보이려고 질문을 해도 못 알아듣는 척했어. 사실 정말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긴 했지. 유치장에는 다른 티베트 아이들이 두세 명 더 있었던 것 같아. 이틀 후 날 장무까지 데려다 준 장사꾼이 내가 갇혀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사촌오빠도 알게 되었어.

사촌오빠가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나서야 유치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유치장에서 나온 이후에는 날 기다리고 있던 어떤 티베트 사람이 난민센터까지 데려다줬어. 이 사람이 내가 유치장에 갇혀있을 때 경찰에게 뇌물을 건넨 사람이야.

난민센터에 도착한 후로는 위험한 일은 안 일어났어. 거의 3개월 정도를 지냈을 거야. 이름이랑 출신 지역, 네팔로 오게 된 이유 같은 걸 내게 물었어. 그리고 나는 난민으로 등록되었지. 센터는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항상 여기저기 사람으로 넘쳐 났어. 2003~2006년이 아마 난민들이 가장 많이 네팔로 건너온 시기였을 거야.

이 3개월 동안 거기서 만난 비구니 스님에게 티베트 글자를 배웠어. 티베트에 있을 때 나는 말할 줄만 알았지, 읽고 쓰기는 못 했거든. 3개월이 지나 버스를 타고 델리로 갔고, 델리에 있는 난민센터에서 3일 정도 지낸 다음 결국 다람살라로 왔어. 내가 아직 미성년자였으니까, 기숙사 학교로 갈 수 있었지.

학교로 가서 공부를 시작하는데 어려워서 너무 슬펐어. 지금까지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정말 많이 울었어. 수학이 정말 어렵더라고. 하지만 후회는 절대 하지 않아. 날씨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공부도 너무 어려워서 1년이 지나고는 고향 생각도 나지 않던 걸.

같은 고향 출신인 음악 선생님이 있었는데 어떤 스님이 전화를 걸어 나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어. 내가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 건지 가족에게 연락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말이야. 내 가족들은 내가 살아있는지도 모른다는 거야. 인도에 와서도 한 번도 연락을 못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인도에 오고 2년이 지나서야 언니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어. 언니도 나도 엄청나게 울었어. 2년 동안 가족들은 내가 인도로 갔다는 말만 사촌오빠에게 듣고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해서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더라. 우리 엄마는 매년 내가 떠난 날에 맞춰서 불공을 드리기까지 했다는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너무 죄송스러워.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자주 연락드릴 수 있긴 해. 이미 가족들을 못 본 지 10년이나 됐네. 인도에 오자마자 자유를 만끽하며 후회하지 않고 살았는데 요즘은 고향이 너무 그리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아. 대학도 다니고 있잖아. 티베트에 있었으면 절대 대학에 못 갔을 거야. 단지, 고향이 그리워. 그곳의 산과 하늘이 그리워. 가족들이 너무 보고싶어.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너희와 다르게 우리들은 난민이니까. 특히 티베트에 돌아가는 일은 너무 어려워.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해. 그래도 언젠가는 돌아갈 거야. 고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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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언니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정이 마음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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