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준비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보통 오전에 레슨을 마치고 20세기 소년을 방문하는 편인데, 오늘은 학생이 오후에만 시간이 된다고 해 처음으로 아침에 방문하게 되었다. 아침 방문이라지만 늦잠을 잤고, 출발하기 전 끝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10시 30분이 돼서야 겨우 도착하게 되었다.


택슨 오빠가 내려준 커피를 소중히 챙겨 지하로 내려갔다. 이번 주까지는 노드를 살펴보지 않고 연주에 집중하려 했지만 아침 버프를 받아서인지 오늘은 처음으로 노드의 노브와 버튼 이것저것을 건드려보며 어떤 기능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신스 파트가 인상 깊었는데, 그간 좋아하는 음악에서 듣던 사운드가 튀어나와 이걸 이용해 음악을 만들면 얼마나 재밌을까 두근거렸다.

이번 주말에는 과거에 만든 곡을 연주할 일이 있어 그 연습에 매진했다. 곡들이 노드와는 맞지 않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노드 피아노가 아닌 노드 스테이지를 선택한 것부터가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그것이 정말 과거와는 다른 길이 되리라는 것을 딱딱한 피아노 톤을 들으며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만들었다지만 오랜만에 악보대로 연주하려니 그간 얼마나 연습을 안 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 기본기 부족의 자괴감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망가졌다니... 역시 악기는 정직해.


그래도 오랜만에 악보를 보고 연습하는 기분이 좋았다. 연습 중에 만난 어떤 프레이즈는 좀 더 풍성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오른손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는 걸 양손으로 나누기로 했다. 그런 디테일을 정해가는 과정이 너무 즐거워 연습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몹시 슬펐다. 연주 일정을 다음 주로 미룰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주로 미루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새로운 할 일만 생길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연습 후에는 예전에 가르치던 학생을 20세기 소년에서 만났다. 공간의 힘인지 학생과는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학생이 마법사님께 본 사주에서는 자신을 더 많이 표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처방 덕분인지 학생은 나에게 아름다운 말들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 표현에 감동한 나는 더욱 많이 표현하게 되었는데, 오래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따뜻한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다섯시 레슨이라 네시 반쯤 집에 돌아왔다. 레슨이 끝난 지금은 완전 지쳐버렸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이 산뜻해 방문과 귀가 시간을 앞으로 더 이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남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두고 또다시 예민해지려고 하는 것 때문에 괴로웠다.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해도 몸이 기억하는 익숙한 습관들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아직 그런 예민함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묘하게 안도하는 하루기도 했다.

요즘은 사람들과 원없이 대화를 나눠서인지, 혼자만의 시간이 생길 때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대개 연습을 하려고 한다.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치는 요즘이지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조금이라도 더 집중할 생각이다.


오늘은 짧았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집중한 하루였다. 얼른 헤드폰도 오고 일들도 정리돼 노드와 함께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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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빌드업 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는 것 같아, 이런 글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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