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를 타고
<이 낯선 여행, 이 낯선 세계> 텀블벅 펀딩 중!
나는 당장 길 위에 서고 싶다. 두리번거리다 넘어지고 싶다. 다시 일어나 걷고 싶다. 걷다가 울고 싶다. 울다가 웃고 싶다. 내 삶은 그것이 전부다.
스무 살에는 낡고 커다란 버스를 집처럼 개조해서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싣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는 꿈을 꾸었다. 버스는 곧 집이었다. 연인이고 친구인 사람들은 함께 사니 곧 가족이었다. 구약을 읽어 본 적도 없는데, 버스의 모티프는 노아의 방주이며,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은 선택되었지만 선택된 것이 아니라고 일기에 적었다.
시간이 흘러 방주의 흔적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갈 수 있었다. 터키와 아르메니아 국경에 걸친 아라라트 산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나와 젠젠은 아무런 계획 없이 떠돌고 있었고, 터키 곳곳에서 만난 쿠르드 친구들의 말을 듣고 터키 동쪽 도우베야짓이라는 도시로 흘러 들어갔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숙소에 손글씨로 남은 방명록과 길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들의 말이 오롯이 정보의 보고였던 터라 어쩌다 그곳으로 흘러든 우리는 도우베야짓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운이 좋아 길에서 만난 친구들 손에 이끌려 아라라트 산으로, 노아의 방주로, 향할 수 있었다. 산자락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을 하나씩 통과하는 동안 커다란 털북숭이 들개들이 천둥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듯 차를 따라와서 몹시 겁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차가 멈춘 언덕배기에는 작고 낡은 건물이 초라하게 서 있었다. 박물관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노아의 방주' 유적(?)의 고고학적 가치를 관광객에게 어필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언덕 아래로 과연 배 모양의 지형이 보였다. "그냥 땅이 배처럼 생겼을 뿐이잖아." 무려 창세기에도 기록된, 무려 노아의 방주인데 그 흔적이 너무 시시했다. 그렇지만 그 때 찍어둔 '배 모양의 땅' 사진을 싸이월드에도, 페이스북에도 올려두고 자주 찾아보았다.
지난 휴일에 소파에 드러누워 한참 채널을 돌리다 멈춘 화면 속에서 한 여행자가 나미브 사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끝이 아득한 초원 위로 묵직한 먹구름이 깔렸고, 구름이 미처 채우지 못한 하늘 틈 사이로 빛이 쏟아졌다. 쏟아지는 빛줄기 너머로 피처럼 시뻘겋게 하늘이 물들었다. 여행자를 태우고 달리던 차는 초원을 가르는 흙길 한가운데 멈춰 섰다. 길 위에 선 여행자의 모습이 화면 속에서 손톱만큼 작아졌다. 텔레비전을 끄고, 방주를 모티프로 한 나의 버스가 흙먼지를 구름처럼 일으키며 초원을 가르는 모습을 떠올렸다.
2018년 마법사 멀린은 내게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라도 가라앉은 스팀시티를 찾아오라고 말했다.
"45일 안에 떠나셔야 합니다. 하실 수 있겠어요?"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 과정에서 나를 잃게 될 거라는 타로카드의 메시지가 날 두렵게 만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지구가 돌고 있으니 나도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다. 그게 나를 완성하는 일이고, 동시에 나를 잃는 일이다. 나를 잃는 일이 더는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마법사 멀린의 글을 읽다가 깨달았다. 스팀시티는 21세기 노아의 방주라는 걸. 스팀시티는 집이라는 걸. 스팀시티는 버스이자 기차이고, 배이자 비행기라는 걸. 스팀시티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걸. 모든 차원과 시공간을 연결하는 포털이라는 걸.
선택되었지만 선택된 것이 아니다. 누구는 그걸 예언이라 하고, 누구는 그걸 운명이라 하고, 누구는 미래 기억, 또 누구는 예측 가능한 미래, 또 누구는 이미 결정된 무엇이라 한다.
- 이 책 <이 낯선 여행, 이 낯선 세계>는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여름까지 이어진 길에 대한 기록이다.
- 나의 길은 터키 보드룸에 멈춰 있다.
- 20세기소년이 길을 연다. 곧.
- 2022년 나는, 우리는, 다시 길 위에 선다. 배 타고, 비행기 타고, 차 타고, 오토바이 타고.
- 그리고 모인다. 우리의 집에, 우리의 방주에.
참 멋있어요. 꿈꾸고 실행에 옮기고 추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