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모든 것입니다

in stimcity •  2 months ago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모든 것입니다

+ Bollingen, Swiss



취리히 호숫가 볼링겐에는 카를 융이 손수 지은 성탑이 있습니다.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 이후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호숫가에 탑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얼마 동안 나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방향상실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완전히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_ 카를 융 <기억, 회상, 꿈> 中

 
융은 프로이트를 아버지처럼 생각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융이 대학생 때 돌아가신 후, 융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소 융은 아버지와의 신학적 견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목사로서 아들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학적 역량에 대해 크게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너를 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까지 했습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말은 아버지와의 종교적 토론이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을 때 느꼈던 열등감을 되살아나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여러 해 후에 그는 나에게, 그 당시 그의 아버지가 종교적인 딜레마를 해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고 말했다.
 
_ 바바라 한나 <융, 그의 삶과 저작> 中

 


융은 남성 권위자와의 지적 소통을 갈망했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프로이트를 아버지처럼 따랐지. 그 둘은 처음 만난 날 13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갈 정도로 잘 통했어.

 
그러나 사고형인 융은 프로이트와 감정적 교류를 원했던 게 아닙니다. 융은 프로이트와 지적 소통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와는 이룰 수 없었던, 자신의 생각에 대한 ‘받아들여짐’을 프로이트로부터 얻고 싶었을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性이론을 도그마화하고 싶어 했어. 융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 물론 프로이트도 융의 주요한 관심 영역이었던 신화와 신비주의적 경향을 탐탁지 않아 했어.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프로이트의 권위적인 태도에 융이 적응할 수 없었던 거야.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2인자로 키우고 싶어 했고 많은 권한을 주려 했지만, 융은 그가 제안한 자리와 위치가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이론의 차이는 또 다른 핑계였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이론을 도그마화하려는 프로이트의 태도가 융에게는 매우 권위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유대인이었고 융처럼 부유하지도 않았습니다. (융의 아내 엠마는 부유한 집의 딸이었습니다. 융은 엠마의 지원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고 프로이트는 그런 융을 종종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스승인 프로이트는 3등석을 타고 융은 1등석을 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빨리 학문적 업적을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유태인으로서의 한계와 사회적, 학문적 인정에 대한 조급함은 권위적인 태도로 보여졌을 수 있습니다. 융의 입장에서 ‘뭐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성향을 거스르면서까지 그의 권위에 따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결별은 미국 여행 이후 가속화되었습니다.

 

자네를 나의 장남이자 나의 후계자로 삼은 바로 그날 밤, 자네가 아버지로서의 나의 위엄을 떨어뜨린 것이 참 이상하네. 내가 자네를 그렇게 대한 것과는 반대로 자네는 그렇게 나의 권위를 빼앗은 것에 즐거워하는 듯하네.
 
내가 추종자들을 환자처럼 대한다는 주장은 확실히 터무니없네. 그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면 이 편지에 답장할 필요도 없네. 앞으로는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워질 것이고 더욱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 될 테니 말이지… 그래서 나는 우리의 개인적 관계를 완전히 끊을 것을 제안하네.
 
_ 융에게 보낸 프로이트의 마지막 편지 中

 
‘나는 우리의 개인적 관계를 완전히 끊을 것을 제안하네.’ 아들처럼 여겼던 제자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의 열등감이 느껴집니다. 융이나 프로이트나 실은 버려진 아들들입니다. 자신들의 이론을 세워가는 일은 생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나, 누군가를 수용하고 나를 넘어서도록 이끄는 현명함을 서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모두 어렸기 때문일까요? 욕구는 채워져야 하고 인정은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실현의 확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정욕구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기준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 누가 아무리 진심을 다해 인정해 주어도, 자신이 설정한 목표치를 스스로 인정할 수 없으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권위적인 아버지를 수용하는 일, 논리가 아닌 존재로서 그를 받아들이는 일. 결국 융은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은 인정욕구에 주위 사람들을 부속품처럼 대하는 프로이트의 태도는 계속 동료와 제자들을 떠나가게 했습니다. 버려진 아들들, 수용되고 인정받지 못한 아들들은 계속 그렇게 자신을 고립시킵니다. 외로운 성으로 숨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인정에 대한 갈증은 더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은 종종 우리를 거부와 갈등의 자리로 인도하지.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어라. 무엇이든…” 요셉은 부당함 속에 십수년을 견뎌야 했어.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권위자의 요구를 따라야 했지. 심지어 단 한번 거절했는데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야 했어. 신의 시련 중에 가장 잔혹한 시련이야. 하지만 그 시련의 끝에서야 자신을 버렸던 형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지. 그런 운명이 있어. 그런 운명의 시간들이 있어..

 
멀린은 융과 프로이트의 결별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을 일이긴 합니다만, 멀린의 결별의 시간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도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 준’ 결과로 인한 결별은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직관을 따랐을 뿐인데, 그럼에도 결별로 이어진다면 왜 ‘그가 원하는 대로’여야 했을까요?

 


그것은 그림자였겠지. 못마땅하지만 따라야 했던 ‘그들의 어떠함’은 사실 나의 그림자인 거야. 내 내면의 어두움, 내가 통합해가야 할 내 의식의 반대편 말이야. 관계를 얻으려 했으나 그것 때문에 버려지는 것은 만남과 이별이 하나인 것과 같아. 내 내면에서 그것을 통합하지 못하고 외부로 그것이 투사 되어질 때, 끝은 결별일 수밖에 없는 거야. 내면에서 화해하지 못하니 외부에서 끊어짐을 당하게 되는 거야. 아프지만..

 
융은 상실감에 젖어 듭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프로이트에게서도 관계를 단절 당한 (또는 단절한) 융은, 방향을 잃고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토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 둬보자.” 그리하여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충동에 맡겨버렸다.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었을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 무렵 나는 벽돌로 집 짓는 놀이에 열중했다. 내가 작은 집과 성을 세우고 병으로 현관과 천장을 만든 기억이 분명히 났다. 조금 후에 나는 흔히 보는 돌들을 사용하고 모르타르 대신 진흙을 사용했다. 이런 건축물들은 오랫동안 나를 매료시켰다. 놀랍게도 이런 기억들이 일종의 감격과 함께 떠올랐다.
 
_ 카를 융 <기억, 회상, 꿈> 中

 
융은 호숫가에 성탑을 짓기 시작합니다. 융의 성탑은 ‘사위일체’를 상징하는 네 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융은 33년에 걸쳐 이 성탑을 손수 짓습니다. 돌과 바위를 가져다 일일이 다듬고 기초를 쌓아 올렸습니다. 성에서 사용할 땔감도 직접 구해다가 장작을 만들어 재워 놓습니다. 융은 이 성탑을 쌓아 올리며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하고 통합해 갔습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몰라 암흑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생각난 것은, 그가 다만 유치한 놀이를 해 보는 것임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그에게 거의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논리적으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실제로 용기를 내어 자신의 정원에 있는 호숫가에서 다시 집 짓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융이 가진 성격의 특징이다. 즉, 그는 모든 길이 다 막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고, 그들에게 유치하고 무가치한 일이라고 여겨 묵살해버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해도, 그 길로 가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도록 했다.
 
그들이, 그것은 다만 그의 정서적 불안 혹은 관점의 천박함을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말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그의 창조적 충동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다만 이런 대단한 집요함과 의향 때문에 어린아이 같은 바보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융이 풍성한 무의식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전에는 무의식을, 좋아하지 않는 모든 것이 버려진 쓰레기 더미로 여겨왔다. 하지만 그는 모든 창조적인 충동을 따르면서 밀고 나아감으로써,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발견했다.
 
_ 바바라 한나 <융, 그의 삶과 저작> 中

 


융의 그림자는 프로이트와의 통합을 이루어 내지는 못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요구되어졌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 말이야.

 
융에게는 아내인 엠마 이외에 토니 볼프라는 여인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토니는 융보다 13살이 어렸습니다. 그녀는 처음 그의 환자로, 그의 어머니에 의해 그의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정신분석이 진행되어가는 중, 융은 그녀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실 아버지를 급작스럽게 여의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융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를 상실한 그녀를 돌보며,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한 자신의 상처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토니는 융의 그림자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무의식 세계를 탐색하는 융의 충실한 동행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무의식과 대면”하느라 극도로 힘들었던 시기에 그는 또한 결혼한 남자가 늘 직면해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처해야 했던 것 같다. 즉, 그것은 아내와 다른 여성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다른 문제와 얽혀있었는데, 그 둘은 실제로 같은 문제의 두 측면이었다. 비록 그가 그때에는 아직 아니마 원형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 인물은 내면의 모든 인물들 중 한 남자와 가장 비슷한 존재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남자와 그의 무의식을 잇는 다리이며 중개자다. 융은 또한 아니마가 그녀 자신을 현실의 여성에게 자주 투사한다는 것과, 이 투사가 그 여성에게 전적으로 누미노제적인 무의식적 속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여신과 같은 매력까지 가지고 있다. 토니 볼프는 아마-내가 여태까지 알고 있던 모든 “아니마 유형”중에서- 이런 인물로 투사 받기에 가장 적합했던 것 같다.
 
_ 바바라 한나 <융, 그의 삶과 저작> 中

 


토니와의 관계에서 융은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할 수 있었어. 남자에게 있어 내면의 여성성과의 통합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발현되는데, 하나는 어머니로서, 하나는 신부로서야. 인류가, 특히 기독교가 신의 여성성을 성모와 창녀로 분리시켜 인식해 온 과정에서 보듯, 인류의 의식은 남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여성성을 두 가지 역할로 나누어 인식하게 만들어 왔지. 융에게 아내인 엠마는 돌보는 어머니로서, 토니는 모험에 동참하는 신부로서 (그것이 선악과를 따먹는 일일지언정) 자신의 여성성을 통합하기 위한 투사의 대상이 되었어.

 
물론 이것은 모두 융 그리고 모든 남성안에 드리워진 여성성입니다. 그것은 남성의 내면에서 아니마(여성성), 여성의 내면에서는 아니무스(남성성)으로 발현되고 개인은 이것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이것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인식되지 않을 때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외부의 대상에게 투사하게 되고, 우리는 그렇게 외부자에 의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최초의 여자이자 마지막 여자이니
나는 경배 받는 여자이자 멸시받는 여자이니
나는 창녀이자 성녀이니
나는 아내이자 동정녀이니
나는 어머니이자 딸이니
나는 내 어머니의 팔이니
나는 불임이자 다산이니
나는 유부녀이자 독신녀이니
나는 빛 가운데 분만하는 여자이자 결코 출산해 본 적이 없는 여자이니
나는 출산의 고통을 위로하는 여자이니
나는 아내이자 남편이니
그리고 나를 창조한 것이 내 남자라
나는 내 아버지의 어머니이니
나는 내 남편의 누이이니
그리고 그는 버려진 내 자식이니
언제나 날 존중하라
나는 추문을 일으키는 여자이고 더없이 멋진 여자이니
 
_ <이시스 찬가> 中

 

융은 토니와의 우정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만드는 노력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는 주로 그 자신과 관계된 모든 이들을 세심하고 공정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생활방식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물론 그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다. 질투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그러나 융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질투의 핵심에는 사랑의 결핍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셋 중 어떤 이에게도 “사랑의 결핍”이 없었기 때문이다. 융은 아내와 토니 모두에게 만족할 만큼 최선의 것을 줄 수 있었고, 두 여자는 정말로 그를 사랑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그들이 때로 서로에 대해 고통스러운 질투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언제나 사랑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갔으며, 상대방에게 어떤 파괴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엠마 융은 심지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내게서 어떤 것을 취해서 토니에게 주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그가 그녀에게 더 주면 줄수록,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이런 놀라운 통찰은 쉽게 얻어진 것도 아니고, 고통 없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부분의 아내들이 독점하려는 태도를 가진 것을 생각해 보면, 어쨌든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토니 역시 많은 미혼 여성들이 빠지기 쉬운 죄, 즉 어떻게든 결혼 생활을 파탄 내고 그 남자와 결혼하고자 하는 욕구를 극복했다. 토니는, 이 정도로 거의 보편적인 여성적 본능에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힘들었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사실을 천천히 깨닫는 것은 – 그녀는 직관형이었다.- 토니의 특성이었다. 그러나 일단 그녀가 그것을 한 번 깨닫게 되면 그것을 영원히 인식했고, 다시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나중에 융이 결혼생활에 변함없이 충실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것이 오히려 충실하지 않은 것보다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_ 바바라 한나 <융, 그의 삶과 저작> 中

 


이건 너무 바른 생각, 바른 태도야. 융은 여기서 한계를 보였어. 그는 뭐랄까 좀 범생이었거든. 융의 아니마(여성성)는 토니 볼프에게서 그 여성성의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해 버렸어. 아니마의 부정적인 측면은 파괴 충동이야. 질투의 절정을 다해서 그 관계를 파괴하려고 들었어야 해. 그것까지 수용되거나 다루어졌어야 융의 아니마(여성성)가 온전히 드러나지는 거야.

 
융의 아니마는 그녀의 어두움, 파괴적 본성을 토니로부터 드러내지지 못하자 다른 여성에게 투사되었습니다. 사비나 슈필라인..(러시아의 정신분석가 및 아동심리학자) 그녀는 융에게 파괴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온전한 대극 합일을 이룰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융은 자신의 아니마로서의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멀린은 그래서 융의 위대한 여정이 다음 생에서 더 연구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고 말합니다.

 

근대의 냉철한 이성만으로 근대적 삶에 안착하려고 했던 융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러시아로 떠나려 하는 슈필라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하며, 열정과 생명, 즉 욕망이라는 이름의 창조적 생명력이,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성은 단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창조적 생명력을 가족주의나 국가주의의 감옥에 가두려는 덫일 뿐이다. 감각과 느낌, 즉 본능적으로 모든 사회적 이분법을 넘어서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즐거움을 갈망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창조적 생명력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융은 슈필라인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학문적인 진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람의 가치, 즉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슈필라인에게 고백한다. 영화는 그곳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슈필라인과 융이 서로 함께 있었다면, 융과 슈필라인은 프로이트의 근대적 정신분석학에서 벗어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창조적 생명력을 근원적으로 밀고 들어가 마침내 들뢰즈가 이야기하는 탈근대의 생명학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_ 욕망이라는 이름의 창조적 생명력, [장시기의 '영화로 읽는 세상']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데인저러스 메소드>, 프레시안

 


아쉬운 부분이지만, 융은 무의식의 세계를 인류에게 열어준 것만으로도 큰 업적을 남겼어. 그러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겠지. 하지만 우리는 융을 대극의 합일로 끝까지 인도하려고 했던 사비나 슈필라인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돼. 그녀는 결국 고향 러시아에서 두 딸과 함께 나치에게 총살을 당했지. 그녀의 논문 제목은 <존재 생성 원인으로서의 파괴> 였어. 융에게 욥처럼 모든 것을 상실하는 파괴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융의 이해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요셉처럼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수용했으나, 한 번 뿐이었던 거절 때문에 감옥에까지 가야 했다면.. 융은 아내 엠마와 토니로 인해 안전한 탐험을 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였어.

 
멀린은 볼링겐의 성탑 앞에서 바람 때문에 거세게 물결치는 호수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물을 좋아했던 융이었지만, 이렇게 호숫가에 바로 임박해서 성탑을 지은 건 고요해 보이기 보다 위태해 보였습니다. 멀린은 안전을 선택했던 융의 무의식이 오히려 성탑을 언제라도 물에 잠기거나 파도의 공격을 받을 위치에 세움으로, 그의 생에 탐색해 보지 못했던 파괴의 충동 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느낍니다.

 


융, 현실의 토대를 완전히 상실하고 모든 관계에서 끊어지는 어두움을 경험하는 일은 그리 두려워해야만 할 일이 아닙니다. 완전히 상실된 상태에서야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되니까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은 모든 것입니다. everything..

 
그러나 융은 그대로 머물지 않고, 엠마와 토니의 든든하고 안전한 배를 타고, 서구사회의 정신적 아버지인 기독교를 정면으로 돌파해 들어갔습니다. 마치 그가 목사였던 아버지 그리고 스승이었던 프로이트와 정면으로 맞섰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탐색해 들어간 융은 마침내 ‘삼위일체’의 불완전한 신성인식을 ‘4위일체’로 확장함으로써, 비로소 빛과 어두움, 음과 양, 존재와 그림자를 온전히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짝을 잃은 불완전한 ‘삼위일체’ 신(神)에게 그의 신부를 찾아줌으로써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인류는 성(聖)과 속(俗), 도덕과 비도덕, 륜(倫)과 불륜(不倫)의 경계를 넘어 창조의 원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융의 대극 이론이며 심리유형론입니다.

 


어쩌면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이 아닌가 생각해. 창조된 본성과 원형으로 살아갈 자유 말이야. 우리가 죄 또는 부정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그 성향의 한 면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대극 관계에 놓인 자들이 서로 비난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근거가, 단지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긴 편협한 이해라는 것 말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동전의 한 면만 소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야. 날카로운 칼은 베일 위험이 크고, 소금은 짜야 한다는 것이지.

 
멀린은 융의 심리유형론을 통해 해방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된 인성(人性)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창조된 그대로의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수용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정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나는 나 태어난 대로 살면 된다는 사실, 아니 그래야 한다는 사명 말입니다. 이로써 융은 인류의 의식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존재와 차이의 이해의 낙원으로 들어갈 문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배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20대에 처음 융을 만나고 그에게서 멀린이라는 이름을 얻었지. 결국 그의 성탑에까지 왔네. 나도 이제 나의 세계를 건축해야겠어. 돌이.. 돌이 필요해.

 
돌이요? 멀린? 돈이 아니구요? 멀린은 어떤 세계를 건축하게 될까요? 마법사의 건축물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돌(돈?)부터 모아야겠습니다. 마법사의 손에 다듬어질 ‘현자의 돌’ 말입니다.

 

볼링겐에서는 고요함이 나를 에워싸고 사람은 ‘겸허하기 그지 없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산다.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생각들. 그에 따라 먼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여기서는 창조의 고통이 완화되며 창조성과 유희성이 거의 하나로 어울린다.
 
_ 카를 융 <기억, 회상, 꿈> 中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모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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