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Pleochroism과 Panorama #2

in stimcity •  2 months ago




Pleochroism과 Panorama #2

+ Barcelona, Spain



가우디는 왜 그렇게 ‘성가족’ 성당에 천착했을까? 40년 동안이나 말이야. 말이 40년이지 한참 전성기인 30대 중반부터 시작한 거야. 아마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지을 생각은 아니었을지 몰라. 아스토르가의 주교관의 예에서 보듯, 건축가와 건축주의 관계는 갑을 관계일 수밖에 없고, 심지어 일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신경 쓰이는 작업이지. 그러니 거의 전권이 보장된 성당 건축 작업이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럼에도 40년은 너무 길잖아?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의 건축비를 오로지 기부와 헌금만으로 충당하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피카소 같은 진보적 예술가 후배들을 의식한 행위였을지도 모릅니다. 한때 자신을 존경하며 따르던 후배 예술가들이 자신을 변절한 ‘보수 꼴통’ 취급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명분과 진정성을 확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후배들이 자신을 부자들의 궁전이나 짓는 속물 건축가로 취급하며 지옥에나 떨어지라고 비난하는 상황에서, 가우디도 정서적으로 온전치는 않았을 거야. 아마 더더욱 자신의 청렴성이나 건축에 대한 진정성을 드러내고 싶었겠지. 그래서 다른 작업들을 거부하고 ‘성가족’ 성당에만 매달렸는지도 몰라. 그런 평가를 의식해서였는지 모르지만, 가우디는 평생을 청렴하게 살려고 노력했어. 심지어 그가 사고로 전차에 치여 죽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의 초라한 행색에 노숙자 취급을 하는 바람에, 제때에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죽어가야 했을 정도였어.
 
사람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또는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 때문에 비난을 받게 되면, 오히려 더더욱 자신의 신념에 집착하게 돼. 아마도 그것이 가우디에게는 ‘성가족’이었을 거야. 자신이 가진 공동체로서의 이상. 신의 뜻을 따라 펼쳐진 하나의 공동체 ‘성가족’. 그것에 모든 예술가들과 동료들이 순복하기를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싶었던 거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건물, 그러나 신이 지은 창조물보다 1m가 낮은, 신의 의지에 순복한, 그러나 매우 궁극적인.. ‘나는 고귀한 이상에 내 일생을 바쳤다. 가장 순전한 방법(기부와 헌금)에 의해, 그리고 그 영원성은 내가 죽은 뒤에도 대를 이어가며 완성 되어질 것이다.’ 소리 없는 항변을 하고 있는 거지.

 

‘모더니즘 양식의 성당이자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런 건물 가운데 하나인 「성가족 성당」을 보았다. 그 성당에는 포도주 병과 꼭 닮은 아몬드 형 첨탑 4개가 서 있다. 「성가족 성당」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다른 성당과는 달리 혁명기간 동안 어떠한 손상도 입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이 대성당이 지닌 소위 '예술적 가치'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무정부주의자들이 폭격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고 이 흉물스런 건축물을 피해 간 것 같다.’ (조지 오웰)
 
_ 손세관 <안토니 가우디> 中

 
‘1984’,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의 혹평입니다. 이런 비난과 손가락질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존경하고 따르던 후배 예술가들에 의해 자행될 때, 이 고독한 천재는 자기 안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남은 건 오로지 신과의 공동체뿐입니다. 그래서 수도사처럼 삶을 숨겨들고, 더더욱 현실과 괴리되어 신과의 절대적 소통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천재를 몰아붙여 이렇게 극단으로 몰고 간 것 또한 누군가의 이념과 신념입니다. 양 극단의 이념과 신념이 한 천재를 극단까지 몰아붙여,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과 같은 기괴하며 아름답고 슬픈 형상을 창조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신비롭고,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40년의 세월을 넘어 135년이 넘게 이어지는 이 창조물의 제작 과정이 신비롭지만, 차라리 그 40년 동안 이념과 신념을 넘어, 피카소와 같은 후배 예술가들과 함께 ‘성가족’을 이루고 더불어 성장해 왔다면, 천재적인 가우디의 작품들과 이에 영향받은 후배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얼마나 더 많이 전 세계에 펼쳐져 있을까요? 생각할수록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환상입니다. 절대성과 다양성은 언제나 톰과 제리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며 견제를 이어나갈 뿐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인류는, 이러한 갈등 속에 진화해 가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창조하고자 했던 고집불통의 가우디. 그는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려 삶의 마지막까지 혼자였던 것일까? 그의 성격은 고집이 대단했고, 평생을 ‘남은 틀리고 나는 맞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그의 평전에 종종 나오는 말 중 하나가 ‘다시는 하지 않았다.’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일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의 고집이 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가 맡은 건축물의 건축주, 아스트로 주교관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 가우디는 이렇게 말했다. “제 말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깨달았다. 그의 고집은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옳다는 것을 고집부리는 것이고, 건축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비법만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양식으로 멋진 건축 예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일생을 종교와 건축에 바쳐 고집 있는 소명의식으로 살았다.
 
_ 김지선 <고집 있는 창조 건축, 가우디>

 


가우디는 옳았어. 어설픈 천재들의 공동체를 꿈꾸지 않고 끝까지 자기가 옳다 믿으며 절대성을 구현해 갔기에,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그의 ‘성가족 성당’에 찾아 드는 거야. 그런 면에서 한스는 자신감이 없었지.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어. 처음부터 자신의 신념 ‘pleochroism’을 강력하게 주장해 갔으면 어땠을까? 가우디처럼 굽히지 않고 고집스럽게 말이야. 그의 노래 제목 ‘one and only’처럼 말이야.

 

나는 기다려 나의 한 사람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의 모든 것 바쳐 사랑하려 하는데 
 
난 한 사람만 기다리기에
나는 상관없기에
오직 한 사람 사랑할 준비됐기에
힘들고 어렵다 해도 기다려 볼래
 
하루 이틀이 다 일리 없어
내 사랑에 유통기한이 없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보다
환상적인 건 이 세상에 없어
 
하나뿐인 나의 그대여
영원히 사랑하자고
이거 하나 약속해
영원히 사랑한다고

 
‘난 한 사람만 기다리기에’ 그래서 결국 그의 밴드는 잭,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한스는 가우디여야 했습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음악을 소중히 여겨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그 한 사람 ‘한스’를 사랑해야 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해야 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처럼, 이웃을 사랑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스는 말씀 그대로 몸만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몸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의 몸만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멤버들에게 몸에 좋은 것들만 먹이려고 했고, 몸을 만들어주겠다며 헬스장으로 데려갔습니다.)

 
한스는 절대성에 귀의해 자기만 옳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천재성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한스가 가우디였다면, 여러 보석이 박힌 포스터를 보자마자 쭉쭉 찢으며, 이게 아니라고 보석은 하나여야 한다고 화를 내었을 것입니다. 찢긴 포스터를 연습실 바닥에 집어던지며 “다시 해 와!”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항의하는 멤버에게 “제 말은 언제나 옳습니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쫄보 한스는 ‘내가 옳아’ 말을 하지 못합니다. 내가 옳다고 힘주어 말하지 못합니다. 그랬다가 다 도망갈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맞춰주고 하자는 대로 따라 줬건만, 결국 다 떠나갔습니다. ‘뭐야 천재가 아니잖아’ 실망하며 떠나갑니다. ‘천재도 아니면서 왜 남의 삶에 간섭해’하며 비아냥대면서 떠나갔습니다. 고집불통 천재든가, 천재성을 알아보는 갑부든가..

 


가우디가 가우디일 수 있었던 건, 구엘 백작과 같은 훌륭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야. 가우디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구엘 백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가우디의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을 거야. 다들 아스토르가의 건축주들처럼 열정페이로 부려먹으려다, 가우디가 굶어 죽거나 활동을 접어 버렸을 테니 말이야.

 

갑부 구엘과 예술가 가우디의 각별한 관계는 1918년 구엘이 죽기까지 40년 동안 계속되었다. 구엘과 가우디의 관계는 고객과 건축가 혹은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 그 이상으로, 어쩌면 예술에 대한 공통된 사명감으로 맺어진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르네상스시대 메디치(Medici) 같은 재력가 집안에 의해 피렌체의 예술가들이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예술적 안목과 재능을 겸비한 재력가 구엘은 자신의 열정을 가우디를 통해 불태웠던 것이다.
 
1910년 파리의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 구엘이 자신의 비용으로 '가우디 전시회'를 개최할 만큼 그에 대한 믿음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가우디의 완벽한 후원자로서 변치 않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오랜 친구는 서로 닮는다 했던가? 구엘은 점차 가우디의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닮아갔다. 그래서 작업을 추진함에 있어 수익은 개의치 않고 가우디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했고, 「구엘 공원」을 건설할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구엘과 가우디를 공동 작가라고 여길 정도가 되었다.
 
_ 손세관 <안토니 가우디> 中

 
오히려 공동체는 가우디와 구엘 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천재와 그의 천재성을 알아 본 후원자의 관계는 공동 작가의 반열로 까지 성숙되었습니다. 한스가 조용필이나 가우디보다 유명한 아티스트였더라도 그의 멤버들이 떠나갔을까요? 한스가 가우디나 조용필이었으면 그 포스터를 그냥 놔두었을까요? 반대로 한스가 구엘 같은 부자였어도 그 멤버들과 밴드를 했을까요? 그들의 앨범을 내주었을까요? 한스는 갑부가 아니니 가우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신념과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는 일단 고집불통 천재가 되어야 합니다. 울지만 말고 말입니다.

 


‘Pleochroism’과 ‘Panorama’.. ‘Pleochroism’을 ‘Panorama’로 확장시키려면, 어쨌든 먼저 자신의 ‘Pleochroism’을 발현시켜야 해. 자신의 색들을 먼저 찾아야 해. 그런 다음에, 내가 온전한 하나의 보석으로 발현한 뒤에야 ‘Panorama’를 꿈꿀 수 있는 거야.

 
한스의 ‘pleochroism’은 이렇게 눈물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걸까요? 이 밴드의 운명은 보석들의 ‘panorama’로부터 영원히 멀어졌을까요? 그러나 운명은 포기하지 않고 한스에게 테러를 가했습니다.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말입니다.

 

모든 면에서 덕 있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덕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_ 마키아벨리 <군주론> 中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Pleochroism과 Panorama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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