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나로 산다는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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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산다는 것 #1

+ Autobahn, Germany


“멀린은 무슨 유형이라고 했죠?”
 
“MBTI 유형 말하는 거야? 난 INTJ 야.”
 
“INTJ라.. 내향, 직관, 사고, 판단형으로..”
 
“그건 뭐니?”
 
“아.. 이거 위키백과에 나온 INTJ에 대한 설명이에요.”
 
“오호~ 그래 그건 못 읽어 본 것 같은데, 나도 듣게 소리 내서 읽어보렴.”

 
길게는 7~8시간씩 이어지는 지루한 이동시간입니다. 한스가 갑자기 멀린의 심리유형에 대한 묻습니다. 멀린은 지난 미국 투어 때 한스의 밴드에게 MBTI 검사와 강의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밴드의 갈등이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스는 MBTI 강의를 듣고는 매우 공감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한동안 MBTI 전도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심리유형검사는 융의 대극 이론과 심리유형론을 바탕으로,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의 딸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개발한 인간 심리유형 분류지표입니다. (어머니 캐서린은 딸 이사벨이 남자친구를 데려왔는데, 그녀의 남자친구가 자신의 가족들과 매우 다른 성격적 특성을 보여서, 심리유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모가 사위 될 사람의 성격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만들어진 이론인 것입니다. 좋은 장모님입니다. 물론 이사벨은 그 남자친구와 결혼하였습니다.)

멀린은 20대에 MBTI를 처음 접하고는 융의 이론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질서와 충돌이 많은 시절에, MBTI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힘들었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멀린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심리유형을 잘못 판단하는 바람에 한참 다른 길에 들어서 헤매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조차 자기 자신을 바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INTJ는…. 완벽주의자로, 자신의 관심을 이끄는 대상을 개선하는 것에는 거의 끝없이 보이는 수용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이 고질적인 완벽함의 추구를 포기하게 하는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실용주의의 경향이다. INTJ들은 “이게 정말 되는 걸까?”하는 기준을, 자신의 관심분야 연구로부터 통상적인 사회적인 기준들까지, 거의 무차별적으로 적용한다. 따라서 그들은 비상하게 독립적인 정신을 지니게 되고, INTJ들로 하여금 권위, 전통, 또는 감정을 위한 감정 등에서 자유롭게 한다… 멀린, 정말 그래요?”
 
“오~ 설명이 잘 돼 있네. 그래 맞아. 나는 끝없는 수용력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매우 관대하지. 나는 사람들이 개선될 가능성만 있다면 그가 어떤 실수를 하든지 수용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아. 몇 년이 걸리든, 죽을 때까지라도... 개선될 가능성만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관계를 이어가지. 사람들은 그래서 종종 나를 오해해. 내가 무언가 다른 꿍꿍이와 잇속을 가지고 자신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한다고 말이야. 그런 게 아니면 왜 이렇게까지 자신들과 상호작용을 이어갈까? 스스로도 의아한 거지. 그리고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유형의 사람들의 결론은,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버려질 거라는 피해 의식으로 이어지곤 해. 그래서 그들 스스로 먼저 관계를 끊고 도망가기도 하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말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왜냐하면 사실 나 같은 유형은 완벽주의자라 상대를 믿는 게 아니거든. 자신의 완벽주의를 믿는 거야. 그러므로 상대가 일단 상호작용만 멈추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도망치지만 않으면, 그 사람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나의 능력으로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상대 보고 그걸 해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 능력으로 상대가 목표를 달성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지. 그리고 그 확신은 직관으로부터 오는 거야. 그러므로 직관이 멈추지 않는 이상 관계는 계속되고, 성취를 향한 도전(개선)은 계속되는 거야.
 
그런데 직관이 멈추면, 그러니까 네가 읽은 설명에서 말하는 “이게 정말 되는 걸까?”하는 실용적 기준으로서의 직관이 멈추면, 관계는 어디서든, 어느 지점에서든, 끝나버려. 그리고 설명에서 말한 것처럼 그 직관이라는 기준을 관심분야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사회적 기준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지.
 
도대체 언제, 어디로, 어떻게, 직관이 이끌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매우 불안정해 보이기는 해. 하지만 경험적으로는 NT 유형의 직관만큼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것도 드문 것 같아. 가우디를 보렴. 가우디의 직관은 100년이 넘어서도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어. 직관은 수십 년, 평생, 때로는 사후에까지 이어질 만큼 방향성이 달라지지 않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말과 믿음, 개인의 계획과 목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일 년에도 여러 차례 달라지거든. 뭐가 더 안정적이니? 그래서 나와 직관적으로 관계하게 되면, 자신의 선택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관계가 끊어질 염려가 없다고 봐도 좋아. 적어도 INTJ의 직관을 이해하고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죽도록 싫은 사람과 두요?”
 
“당연하지. 싫고 좋은 건 중요하지 않아. 직관이 GO냐 STOP이냐가 중요하지. 그러다 울화병이 도지더라도 말이야. (그러니까 니들이랑 여행도 올 수 있는 거란다. ㅎㅎ)”

 
멀린은 상처가 많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의 직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멀린은 그것조차 조건으로 여깁니다.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와 변덕조차, 자신이 계산해야 하고 대처해야 할 완벽주의적 조건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건 상처가 아니라 시행착오일 뿐입니다.

 


난 단지 아쉬울 뿐이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지 않아.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면, 터무니없는 직관이라 생각하고 시작도 하지 않으려 들지. 처음에는 환호하지. 자신의 꿈에 관심을 가져주는 타인이 나타났으니까. 그런 사람 만나기가 어디 쉬워? 다들 자기한테만 관심을 갖는 데 말이야. 그런데 사실은 그게 나의 꿈인 거야.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도록 돕는 일 말이야. 그러니까 나도 나의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일 뿐이지.
 
그런데 정말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사람들은 그냥 당연히 안 이루어질 줄 알고, 부담 없이 ‘꿈이 뭐냐?’는 질문에 답했을 뿐인데, 나는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자!’하고는 하나씩 현실화시켜 나가니까 갑자기 부담스러워지는 거야. 그건 정말 꿈이었거든. 현실 가능성 없는.. 그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거지. 평생 꿈만 꿀 줄 알았는데, 그냥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에 타고만 있을 줄 알았는데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야. ‘어~헉!’ 큰일 났어. 큰일 난 거야. 난 운전할 줄 모르는데 그냥 꿈만 꾸려고 했던 건대. 꿈을 향해 자동차가 달려가기 시작하는 거야. 덜컥 겁이 나는 거지.
 
물론 처음에 슬슬 움직일 때는 신기하고 놀라워서 흥분하기도 해. 그런데 막 속력이 빨라지니까 감당이 안 되는 거야. 이러다 막 사고 날 것 같고, 부딪힐 것 같고, 뒤집어질 것 같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마법사가 있잖니. 하나하나 익숙해질 거야. 그리고 운전하는 법은 네가 이미 가지고 태어났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 자동차가 시동이 걸렸을 리 없잖아. 그걸 기억나게 하면 돼. 하나씩 하나씩 네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꿈을 운전하는 매뉴얼들을 끌어올리면 돼. 난 그걸 기억나게 해주는 존재일 뿐이야.’
 
그렇게 달려가는 거야. 곧 익숙해질 텐데, 어차피 위기가 닥치면 마법사가 마법으로 구해줄 텐데.. 차라리 위기 중에는 괜찮아. 겁나니까 말을 막 잘 들어. 그런데 위기가 멈추고 운전이 궤도에 오르면 이~상한 거지. 이 인간이 왜 옆에 앉아서 뭐 얻는 것도 없이 날 도와주지? 의~심스러운 거지. 그러면 여지없이 갈림길이 나타나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갈림길에서 꿈으로 가는 길이 아닌, 이 의심스러운 마법사를 내려놓을 길을 선택하지. 그들의 무의식은 알아. 마법사는 꿈으로 가는 길이 아니면 계속 같이 갈 수 없다는 걸. 기가 막히게 알더라고.. 거기서 관계는 멈추는 거야. 직관은 거기서 멈추는 거야.

 
멀린. 그럼 그들은 어떡하나요? 다른 길로 갔으니 그들은 이제 영영 안녕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어. 운명으로 만났을 텐데. 산전수전 다 겪겠지. 묘하게도 한참을 헤매다 다시 꿈의 길에 들어서기도 해. 매우 드문 예이지만… 하지만 대부분은 계속 운명의 교차로를 뺑뺑 돌지. 몇 번의 생을, 수천 번의 생을 말이야. 그러다 그러다 다시 겨우 교차로를 빠져나오는 거야. 어렵게 겨우 빠져나오면 거기 마법사가 서 있지. ‘오래 걸렸네..’ 하고 말이야. 그렇게 만난 거야. 이번 생에 말이야. 나를 거쳐간 그대들 말이야. 처음이 아니라구. 다음 생에도 또 만나겠지만 말이야. 지겹게시리..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왜냐구? 다음 생에 또, 지금 이대로의 그대들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멀린.. 못할 짓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랑 얽혀서리.. 그것도 한 생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뭐 어쩌겠어. 이렇게 태어난걸. 그래서 할 게 마법사 밖에 없어..

 
멀린은 담담히 얘기하지만 이런 자신의 생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알고 걸어간 길이 아닙니다. 상처와 시행착오, 실패를 반복하며 깨달아진 길입니다. 그 과정에서 심리유형에 대한 이론을 만난 것은 마치 복음 같았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그런 꿈을 꾸는지,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루어질 걸 알면서도 왜 도망가는지, 그 모든 게 개인의 심리유형, 성향 안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으면서도 어떻게 억압되고, 그 억압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말입니다. 멀린에게 그 모든 것들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직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INTJ 유형의 주기능은 내적직관(Ni)입니다. 내적직관을 통해 얻은 기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주기능으로 사용합니다. 그가 얘기하는 직관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종종 오해를 삽니다. 왜냐하면 ‘직관’이란 실현되는 것이지, 설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나로 산다는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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