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용서는 놓아두고 가렴

in stimcity •  3 months ago




용서는 놓아두고 가렴

+ Pamplona, Spain



멀린과 한스, 잭은 생장드피에르포트의 순례자 오피스에 들려,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껍데기를 얻었습니다. 가리비 껍데기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의 수호성인인 사도 야고보의 유해를 실은 배가 풍랑에 뒤집히려고 할 때, 수많은 가리비들이 나타나서 배를 보호했다는 전설도 있고, 한 순례자가 길을 나섰다가 바다에 빠졌는데, 산티아고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자 바다에서 갑자기 큰 가리비 껍데기가 나타나, 육지까지 무사히 태워다 주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또한 가난한 순례자들의 유일한 소지품이, 지팡이와 물을 떠먹기 위해 사용했다는 가리비 껍데기여서, 순례길의 상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유래가 어떻든 가리비는, 순례자들에게 자신이 순례자임을 알리는 상징이며, 자신의 순례길을 보호해 줄 부적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순례를 떠나는 모든 순례자들은, 오피스에 들려 순례자임을 증명하는 여권인 크레덴시알을 만들고, 가리비를 부착한 채로 순례를 시작합니다. 멀린과 한스, 잭은 도보순례자가 아님으로 여권을 만들지는 않고, 대신 가리비 껍데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멀린은 남은 여행 동안 안전하게 보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동차 룸미러에 가리비 껍데기를 달고 순례길을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가게에서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가리비들도 많이 있지만, 공식 오피스에서 순례자들에게 주는 가리비를 얻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지. 800km가 아니라 8년을 달려온 순례길에 대한 상징물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스페인에 차량털이범이 많다는 데 가리비 껍데기가 매달려 있으면 지들도 좀 머뭇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생장드피에르포트를 떠나 오리손 산장에서의 버스킹을 마치고, 일행은 피레네산맥을 넘어갑니다. 안개와 구름이 가득한 피레네산맥은 구불구불 거친 도로가 끝없이 산맥을 타고 이어집니다. 그러다 마침내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을 넘어 론세스바예스에 이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하늘을 보여줍니다. 구름은 스페인 국경을 넘지 못하고 계속 피어났다 물러났다를 반복하였습니다.

 

“앗! 백마다.”
“어디! 어디~”

 
론세스바예스를 떠나 본격적인 카미노(산티아고 순례길)에 접어들 무렵, 뒷좌석에 앉아있던 잭이 외칩니다. 백마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소들이 풀을 뜯고 양들이 풀어져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유럽의 목축 환경에서도, 백마를 보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백마 맞아? 정말 백마야?” 한스가 묻습니다.
“네 맞아요. 정말 백마였어요.” 잭은 확신하며 대답합니다.
“유니콘 일지도 몰라..”
“유니콘 이라구요??”

 
멀린은 백마가 유니콘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수 유니콘, 환상의 동물.. 스페인의 끝없이 펼쳐진 이국적 풍경이라면 유니콘이 나타나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카미노의 수호성인 ‘聖 야고보’(산티아고는 ‘聖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는 스페인인들에게 백마를 타고 나타나 적을 무찌르는 용맹한 기사로 묘사됩니다.

스페인은 720년부터 800여 년간, 이슬람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때 북부로 쫓겨난 스페인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세력을 결집하고 국가를 재건해 갔습니다. 그러다 11세기에 접어들며, 내부 분열로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한 이슬람 지배세력에 대해, 레콩키스타(재정복)라는 국토회복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1492년, 마침내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확대 등으로 말미암아 전 유럽의 강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산티아고’(사도 야고보)는 그들의 아이콘이자 수호성인으로 전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잭이 본 백마는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산티아고가 보낸 환영의 사절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쟌다르크가 프랑스를 떠나는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보낸 환송의 사절일지도 모릅니다. 일루미나티에 대항하여 제2의 레콩키스타를 수행할 전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말이죠. 어쨌든 일행은 백마의 배웅과 환영을 받으며 스페인의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팜플로냐에서의 버스킹 공연을 무사히 마친 일행은 순례의 길을 계속 이어갑니다. 카미노를 지나다 보면 이라체 수도원이 나타납니다. 이곳에는 ‘포도주의 샘 (Fuente del Vino)’ 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Bodegas Irache라는 양조장에서 매일 일정량의 포도주를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해 줍니다. 두 개의 수도꼭지에서 하나는 물이, 하나는 포도주가 콸콸콸 쏟아져 나옵니다. 고단한 순례길의 한 모금의 생수와 한 잔의 포도주는 정말 꿀 맛입니다.

포도주 맛이 좋습니다. 생수 병 하나에 포도주를 담아 봅니다. 너무 많이 담아 가지 말라는 주의문구가 적혀 있고, 뒤로는 이를 감시하는 cctv도 달려 있습니다. 순례자들을 위한 것이니, 일반 관광객들은 조금 양보해도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여길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순례는 한 번뿐이고 지나간 길을 되돌아 가지는 않습니다. 과하지 않다면, 순례든, 여행이든,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목을 축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이라는 순례도 한 달간의 순례만큼 만만치 않으니까요.

 

이틀 후, 우리는 ‘용서의 봉우리’라고 불리는 산을 올라가야 했다. 여러 시간이 걸려 정상에 오른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라디오 볼륨을 크게 높여두고 일광욕을 즐기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지방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올라온 이들이었다.
 
“세상의 길이 이런 겁니다. 여기서 무어인이 다시 쳐들어올까 봐 망을 보고 있는 시드의 전사들이라도 만날 줄 알았습니까?”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작가가 충격을 받은 광경 속 관광객들처럼, 멀린과 일행은 정상까지 이어지는 지방 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용서의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난 뭐 그럴 자격이 있다고, 이런 용서의 봉우리쯤이야, 지난 8년 동안 수도 없이 올랐던걸.

 
그럴까요? 멀린.. 정말 용서하셨습니까? 봉우리에 올랐을 뿐, 여전히 분노의 감정을 가진 채, 내려오고 내려오고 하지 않았나요?

 

“한스, 이젠 다 용서했니?”
 
“네? 글쎄요..”

 
멀린은 질문을 애꿏은 한스에게로 돌려 버립니다. 용서하는 자는 힘들게 용서의 산봉우리를 올라갑니다. 그러나 용서받아야 하는 자들은 자동차를 몰고 유유히 봉우리에 올라 일광욕을 즐기며 파티를 즐깁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자는 용서하지 못하고, 또 분노에 휩싸인 채 봉우리를 홧김에 내려갑니다. 봉우리는 계속 이어지고 용서받아야 하는 자들은 점점 자취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용서하는 자는 용서하지도 못하고, 봉우리와 봉우리를 맴돌다 길을 잃고 갇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아야 하는 자들은 두 다리를 쭉 펴고 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다고..

 
그래서 죄를 더해야 합니까 멀린?

 


아니 용서하는 자가 될 것인가, 용서받을 자가 될 것인가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야. 무엇이 죄고 아니고를 내가 정할 수 없는 것처럼. 다만 우리는 상처받은 자로 충분해. 용서하는 자가 아니라 그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는 거야. 예수는 그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지. 그러나 용서하는 자가 되면 우리는 봉우리를 헤매야 해. 그러나 용서받아야 하는 자들은 훌훌 벗어버리고 맥주를 마시다가, 세상의 길을 따라 자동차를 타고 가버리지. 그러니 우리는, 용서는 여기 이 봉우리에 두고, 가난한 마음으로 봉우리를 내려가면 되는 거야.

 
묘하게도 용서의 봉우리에 서울까지의 거리가 적힌 이정표가 있습니다. ‘Seoul, 9700km’, 대략 이번 여행의 이동거리와 비슷합니다. 여기에 용서를 내려두고 남은 여행을 마치면 결국 서울까지 달려간 셈입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복을 얻을까요?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서울에는.. 용서를 내려놓고 갈 수 있다면 말이지.

 
용서.. 멀린의 마음에 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또한 한스의 생각 속에도 여러 순간들이 떠올랐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남겨 놓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순례의 걸음 하나하나에, 매달렸다 떨어졌다를 반복해야 할 지난한 과정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계속 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요. 내려 놓아진 만큼 가벼워졌을 테니 말입니다. 또한 일광욕을 즐기고 맥주를 마시던 관광객들처럼, 자동차를 타고 올라온 멀린과 한스들도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자였음을 말이죠.

인생을 조금 더 산 자들이 심란한 와중에도, 젊은이 잭은 그저 풍경 감탄과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젊음이란 좋은 것입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용서와 관련한 기억들이 아직은 부족할 테니 말입니다. 젊은 잭에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용서하는 자가 되기 보다 늘 가난한 마음이기를.. 분노에 갇히기 보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은혜를 얻는 자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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