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순례자 #2

in stimcity •  3 months ago




순례자 #2

+ camino de santiago



멀린은 8년 전 첫 번째 유럽여행에서, 로마를 지나 영국으로 넘어가기 전, 유럽 대륙에서의 마지막 여행지로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 들립니다. 멀린이 멀린으로 불리기 이전의 이름은 ‘빈센트’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삶에서 자신의 삶의 일부를 발견하고 동경한 멀린은, ‘빈센트’로서 로마의 길을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그 도시에서(아를), 멀린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또 다른 시작점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순례자 명 ‘빈센트’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마감하고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순례자 명 ‘멀린’.

 


그건 너무 우연한 일이었어. 아를에서 고흐의 발자취를 쫓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공식 오피스를 만나게 된 거야. 여기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 중 하나라더군. 그리고 인근 고대 로마인들의 무덤인 ‘알리스 캠프 (Alyscamp cementary)’에 세워진 표지석에는 이곳이 로마의 길과 산티아고의 길이 갈라지는 장소라고 쓰여 있었어. 나는 그 표지석을 발견한 순간 전율을 느끼며 깨달았지. 아! 이제 산티아고의 길이 시작되는구나. 결국 나는 산티아고에 가게 되겠구나.

 
그리고 멀린은 알리스 캠프(Alyscamp cementary)에 관해 검색하던 중, 카를 융의 자서전를 만나게 됩니다. 같은 장소를 언급하던 융은 자신을 마법사 멀린과 동일시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멀린의 외침!’

 

나는 아를 지방 근처 알리스 캠프를 연상하게 하는 어느 지역에 있었다. 그곳에는 메로빙거왕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석관들이 늘어선 길이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시내 쪽에서 걸어왔는데, 내 앞에 무덤들이 길게 늘어선 비슷한 길이 보였다. 거기 석판 대좌들 위에 죽은 자들이 고대 의상을 입고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누워 있었다. 옛날 교회 지하 묘소에 있는 갑옷 입은 기사들 같았다. 단지 그것과 차이가 나는 것은, 내 꿈속에서는 죽은 자들이 돌에 새겨져 있지 않고 기묘하게 미라로 만들어져 있었다.
 
_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中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 후 방향상실 상태에 빠집니다. 상실감에 젖은 융은 마음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꿈을 탐색해 들어가게 되고 자신의 내면을 상징하는 탑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탑의 상징물로서 돌로 된 기념비를 제작합니다.

 

그 돌은 탑 바깥에 서 있어 마치 그 탑을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아직 남들에게는 이해되지 못한 채로 있는 거주자의 선언이었다. 내가 돌의 뒷면에 무엇을 새기고자 했는지 아는가? ‘멀린의 외침!’이었다. 그 돌이 표현한 것을 보고 나는 멀린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 숲속에서 외친 선언을 연상했다. 멀린 전설을 보면,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외침을 듣고 있지만 그 뜻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해석하지 못한다고 한다.
 
멀린은 파르치발에 비견되는 인물을 만들려고 한 중세의 무의식적 시도를 나타내고 있다. 파르치발은 기독교의 영웅이고 멀린은 마귀와 처녀의 아들로서 파르치발의 어두운 형제다. 이 전설이 생긴 12세기에는 멀린이 표현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만한 전제가 아직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추방되었고, 그가 죽은 후에도 숲속에서 ‘멀린의 외침’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외침은 그가 구제받지 못한 상태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격히 말해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끝나지 않았고 그는 아직도 늘 배회하고 있다.
 
_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中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알게 되었지. 직관으로 말이야. 이제 나의 순례자 명은 ‘멀린’이구나. 마법사 멀린..

 
그때부터였습니다. 멀린이 ‘멀린’이 된 것 말이죠. 어린 마법사 ‘빈센트’의 로마의 길 순례가 끝나고, 젊은 마법사 ‘멀린’의 산티아고의 길 순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마법사의 산티아고의 길 순례는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800km를 한 달에 걸쳐 후루룩 걸어버리면 끝나는 그런 도보순례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길’이라는 산티아고의 순례길은 8년여에 걸쳐 매우 평범하고 지루하며 고통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고개를 넘고 넘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순례길의 끝은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영적인 탐색을 내가 마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결코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신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적절한 순간에 기도를 드리고, 낯선 길을 걷고 훈련을 받고, 부조리해 보이는 지시들을 받아들이는 것 모두가 너무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순례를 끝까지 마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했다. 페트루스는 매일같이 산티아고의 길이 모든 이의 것,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나를 적잖이 실망시켰다. 나는 이 순례를 통해 일찍이 우주의 원형에 가까이 다가갔던 소수의 선택된 자들 가운데서도 으뜸을 차지하게 될 거라 믿고 있었고, 또한 티베트의 현자들이 만든 비밀단체나, 불가능한 사랑도 이루어지게 해준다는 묘약, 천국 문을 열어주는 의식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페트루스의 말은 그와 정반대였다. 선택된 자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묻는 대신 마음속의 열정을 깨워 줄 무언가를 실행하겠다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었고, 천국 문의 열쇠는 열정을 쏟아 행하는 그 일 속에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변화를 부르고,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어. 반복되는 좌절과 끝없이 펼쳐지는 고단한 일상, 극복하기 힘든 월요병과 떠나가는 사람들,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보상과 삶의 부조리들 말이야. 선택된 소수의 존재들과 현세를 초월해 영원의 시간을 주유하리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매일매일 짜증스러운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직관과 열정을 따라 도전하길 멈출 수 없는 천형(天刑) 같은 삶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 결국 넘쳐나는 울화를 참고 참다 모가지를 따고 나서야, 그것도 모자라 모든 것을 잃고 맨몸이 되고 나서야,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거야.

 
순례의 초입에서는 많은 것들을 짊어지게 됩니다. 필요한 것들이 많아 보이고 모두가 반드시 사용할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순례가 시작되고 고된 걸음이 계속되면 필요한 것들이 모두가 짐이 됩니다. 반드시 사용할 것 같던 것들이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들이 됩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벗어 놓고, 내려놓다 보면.. 그것도 모자라 차라리 벌거벗은 몸으로 훌훌 걸어가고 싶습니다. 편리하려고 짊어졌던 모든 것들이 편하지 못하게 하는 짐이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길’인 산티아고의 순례길이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는 이것입니다.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는 것. 빈털터리가 되어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해졌다는 것. 그리고 남은 것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왔던 도전의 근육들이며, 죽을 것 같은 고비를 순간순간 넘어왔던 몸의 습관일 것입니다.

 


솔직히 여행의 중간중간 이 책을 다시 읽으려고 집어 들 때마다 ‘평범한’ 짜증이 몰려왔어. 아직도 ‘순례 중’인가 싶어 말이야. 십 년 전, 이 책을 처음 접한 이후로, 이제는 순례가 끝나지 않았을까 싶어 열어보고 열어보고 하다가, 나중에는 너무 짜증이 나서 아예 치워버렸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가져오긴 했는데, 아직도 끝난 게 아닐까 봐 읽고 싶지 않더라구.

 
멀린은 파울로 코엘료와 몇몇 작가의 글에서 융이 말한 ‘동시성’같은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예언하듯 자신의 미래가 담겨있거나, 현재의 생각 또는 과거의 경험이 일기장을 보듯이 겹쳐지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새로운 텍스트가 발간되면 자못 긴장하며 펼쳐보게 된다고 합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보여주는 거대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이니까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면 글을 쓰거나 발레를 구상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디에 있든지 간에 누구든지 신비로운 산티아고 순례길인 은하수를 따라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그래서 멀린은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례자의 의무이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도 의무를 따라 여행을 마치자마자 이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작가의 아내는 자신과 의논도 하지 않은 채, 친구가 운영하는 이름도 없는 작은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버렸습니다. 작가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생에 첫 책인 <순례자>를 유명한 출판사를 통해 잘 내고 싶었을 텐데. 아마도 아내의 생각에는 무명작가의 책을 출간해 줄 대형출판사가 있을 리 없고, 그렇게 몇 번을 거절 당하고 나면, 결국 남편이 작가로서의 자신의 꿈을 포기해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첫 출간은 이루어졌지만 그의 첫 책 <순례자>는 천 권이 조금 넘게 팔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쓴 책이 그 유명한 <연금술사>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작은 출판사에서조차 거절을 당합니다.

 

“이 책, 솔직히 별로야. 정말 재미있게 읽고 싶었는데 재미있지가 않아. 이대로 가다간 나도 힘들어져. 내가 알아봐 줄 테니까 기자로 일해보는 건 어때?”
 
“난 작가에요.”
 
“세월이 지난들 사람들이 이걸 읽을 것 같아?”
 
_ 영화 <파울로 코엘료> 中

 
그리고 30년이 흘렀습니다. 1988년 5월, 결국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연금술사>는 전 세계 120여 개 국에서 출간되어 2,000만 부 이상 팔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168개국 73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어, 1억 3500만 부 이상의 판매 기록을 달성했으며, 200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라. 순간을 포착하라. 신은 매일 우리에게 운명이 바뀌는 순간을 선물한다. 그 순간에 내린 결정으로 당신의 운명이 바뀔 것이다.’
 
_ 영화 <파울로 코엘료> 中

 


‘평범한 사람들’의 길이란 바로 이런 거야. ‘그게 될 것 같아?’, ‘누가 알아 봐 주기나 할 것 같아?’.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런 비웃음과 경멸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고 또 걷는 거지. 무엇보다 ‘이게 될까?’, ‘실패하면 어떡하지?’하고 끝없이 괴롭히는 포기의 그림자와 함께 그 길을 걸어내는 거야.

 
마치 도플갱어처럼, 영혼의 나툼처럼..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작가의 30년 전 삶과 수많은 순례자의 삶에 ‘동시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가가 출판사로부터 들었던 그 말들이, 여전히 도전 중인 평범한 순례자들에게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몰라봐 주는 세상이, 폄하하는 평가자들의 문제가 아니야. 평범한 일상을 살아낸다는 것은 순례자의 몫이지. 그리고 이러한 좌절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평범한 일상인 거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례를 계속할 것인가?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이 계속되는 ‘순간의 결정’이 순례자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거야.

 
멀린은 순례를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어디가 끝인지, 언제가 끝인지도 모르고 시작한 순례이니, 순례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순례의 끝을 만나기 전까지 걷고 또 걷는 것뿐입니다.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 그리고 보상을 기다리는 것 말이죠.

 

페트루스는 우리가 항상 보상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해 말했다. 나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의 말을 인용하며 반박했다.
 
“하지만 예수도 ‘달란트의 비유’를 들어 말하지 않았습니까. 주인의 재산을 그저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불린 노예가 보상을 받는 것이죠. 사람들이 예수의 말을 믿고 따른 것은 그가 단지 훌륭한 설교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기적을 행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었기 때문이에요.”
 
_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中

 
멀린은 자신의 기록이 또 다른 순례자들에게 읽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멀린은 ‘람’의 의례와 생경한 이야기들로 가득 찬 작가의 책이 읽히는 게 신기하지 않냐고 묻습니다. 한국뿐 만 아니라 세계의 어떤 출판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신인 작가의 원고가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달란트가 하나이든 다섯이든 반드시 보상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작품을 알아봐 줄 단 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역사는 그 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그 단 한 사람을 만나기까지 ‘순간의 결정’을 계속 유지해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달란트를 알아봐 줄 그 단 한 사람. 평범한 순례자들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그 단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입니다.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순례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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