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1,
죽을 뻔했던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군대에 면회 온 아버지와 함께 외박 나가던 차가 미끄러졌다. 한겨울 강원도 화천 산골짝. 오른쪽은 벼랑이고 왼쪽은 산등성이. 다행히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생길이 훤한 이등병 시절이라 차라리 오른쪽으로 미끄러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도로에 눈이 얼어붙었던 어느 겨울, 블랙 아이스가 깔린 강변북로 진출입로에서 혼자 운전하고 가던 자동차가 미끄러져 360도 회전했다. 순간 눈앞에서 눈 덮인 언덕과 산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도로 중앙에 자동차가 가로로 놓였다. 다행히 휴일 이른 아침이라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아, 근데 왜 주마등처럼 필름이 지나가지 않지? 아직 죽을 때는 아닌가 보다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핸들을 다시 돌려 무심하게 가던 길을 갔다.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으니.
20대의 들뜬 어느 날, 흥분한 마음에 버스 앞을 가로질러 무단 횡단을 시도했다. 그때 버스를 추월하려고 부앙~ 속력을 가속하던 택시가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를 했다. 운전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죽고 싶어!"
젊을 때라, 아랑곳 않고 마저 횡단했다. 지나와 생각해 보니 죽을 뻔했으나 당시에는 욕하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째려보았던 것 같다. 죽고 싶긴, 이제 좀 살맛나기 시작했는데. 화창한 젊은 날을 두고 어딜 가겠어.
그리고 터널에서 뒷차에 들이받혔다던가,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순간 그 옆 한남대교를 건너고 있었다던가, 명절 때 운전을 해서 지방에 갔다 돌아오던 길에 졸다가 안성 어디쯤에서부터 기억이 끊겼다 집 근처에 와서야 의식이 돌아왔다던가 하는, 죽음 근처를 왔다 갔다 하던 가물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2,
그러나 자살을 생각하거나 죽고 싶었던 적은 없다. 어떤 순간에도. (지구별을 떠나고 싶었던 적은 많다.) 죽음이 코앞에서 지나갔을 뿐. 교통사고뿐이 아니다. 40대에 들어서자마자 암 진단을 받았다. 착한 암이라 죽을병은 아니었는데 간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서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간 질환으로 대부분 50대에 일찍 돌아가셨다. 가족력이니 문제는 암이 아니라 간이다. 진단을 받았다. 간 경화 직전이란다. 임상실험 중인 치료법이 있는데 받아보겠냐고 물었다. 됐다. 마루타 하다 죽고 싶지는 않다.
호르몬 분비 기관을 떼어내 버렸는데 간 수치마저 엉망이니 일상이 말이 아니다. 언제나 피곤에 절어 지내는. 피곤은 간 때문이라니까. 그런데 정작 치료법은 엉뚱하고 단순했다. 체중 감량.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교란된 호르몬 덕에 신체 기관들은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방어체제로 돌아서 버렸다. 에너지를 축적할 뿐 사용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은퇴한 브라질의 축구 선수 호나우두도 운동장에 발 한 걸음을 들여놓는 것이 그렇게 무겁고 힘들었다는데 그 심정이 딱이다. 무술의 달인 이연걸도 이 병을 이기지 못했으니. 살이 찌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포들이 과잉방어, 과잉축적을 해대는 통에 몸이 붓는 거였다.
살 방법은 단 하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인간이 스트레스니 모든 인간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걸었다. 에너지가 없어 어떤 운동도 접근 자체가 어렵고 그저 걸을 수만 있었다. 세상을 걸어 다녔다.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다. 살자고 걸었다. 그렇게 몇 년을 걷다 보니 이번에는 무릎이 망가졌다. 어찌할까? 체중은 감량해야겠고. 그런데 살려고 드니 의외로 방법은 단순했다. 식사를 하루에 한 끼로 줄이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1kg 빼기가 그렇게 어려웠는데 몇 개월 사이에 7~8kg이 줄어들었다. 역시 입력을 줄여야. 간 수치도 함께 내려왔다.
3,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7살 때 유치원에 다녀왔는데 몸이 이상하게 피곤했다. 다음날 소변을 보는데 소변이 콜라 빛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신장염이었다. 움직이면 악화된다니 하루종일 누워지냈다. 어렸으니 좋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사람들이 문병을 오고. 피가 맑아진다고 수박들을 그렇게 사 왔다. 맛났다. 난 수박을 좋아하니까.
당시는 종교 문제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갈등하고 있던 때였다. 죽을병까지는 아니지만 신장 질환이 삶의 질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부모에게 더 공포스러웠으리라. 어머니의 종교 생활을 광적으로 저지하던 아버지는 결국 기도원에 올라가서 신을 만났다. 아버지가 성령을 받고 기도원에서 내려오신 다음 날 투명한 소변이 나왔다. 병이 나았다. 그날 아침, 나의 투명한 소변에 가족 모두가 환호하던 장면이 머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병원에서도 기적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완고하던 아버지는 술담배를 모두 끊고 종교에 귀의하셨다. 한집안에 두 종교가 있으면 안된다며 반대하던 친척들은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거라 애써 폄하했다.(명목상 불교 신자들인데, 그중에는 신심이 넘치는 주지승도 있었다고 한다.) 걸릴 때라 걸린 거고 나을 때라 나은 거고. 예수가 이긴 거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기도원에서 내려오기 전날 예배 중에 환상을 보았다고 했다. 예수님이 나의 배에 앉아서 검은 창자들을 마구 꺼내고 계셨단다. 아, 그런 일도 있었다. 내 병의 치유를 위해 매일같이 기도해주시러 심방을 오시던 집사님이 계셨는데, 침대 머리맡에서 거대한 손이 튀어나와 집사님의 목을 조른다던가, 삿갓 쓴 승려가 배에 올라타 목을 졸랐다던가, 그리고는 며칠 동안 집사님 몸에 반신마비가 왔다던가. 어쨌든 기도 덕분에 나는 나았고 집사님은 목사님이 되셨다.
자, 주의 은혜로 다시 살았으니 이제 나의 목숨은 주의 것. 간증꺼리는 충분하다. 착실한 교회 오빠로 성장했다. 선교사가 꿈인.
4,
다시 살았으니 복음을 전해야지. 무슨 복음을 전할까? 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다시 태어난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했다. 아버지는 무엇을 원할까? 내가 아버지라면, 나의 아버지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_ 빌립보서 2장 13절
그렇구나. 사람에게 소원을 두셨구나. 그게 뭘까? 꿈이구나. 사람의 꿈이 신의 소원이구나. 아버지의 꿈을 이루는 것은 사람들의 꿈을 이루는 것이구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꿈을 묻는 자이고 꿈을 이루도록 돕는 자이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너 꿈이 뭐니?'
5,
묻고 다녔다. 그리고 무어라고 답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오지의 선교사처럼. 서원한 대로. 그러나 자기 꿈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막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도망치는 것이다. '아.. 이런 거였다면,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어.' 그걸 왜 이제 얘기하니? 몇 번을 돌아 나왔다. 아니 우주가 갈라졌다. 그들은 막상 그 길에 들어서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의 꿈이 아니라는 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걸. 신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아들을, 자신을 대가로 바쳤는데. 그게 우주의 매커니즘인데.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자신이 정한 원리에 신 스스로도 구속되었는데. 그래서 그 삯을 지불했는데. 섭리에 따라 우주가 대가를 요구하자 다들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네, 잘 가셔요. 이번 생은 여기까지입니다. 니 꿈이 뭔지 깨닫거든 다시 찾아오셔요. 대신 미룬 시간만큼의 대가는 복리로 늘어난답니다.
어머니의 꿈, 아버지의 꿈, 친구의 꿈, 사회의 꿈, 학교의 꿈. 지니에게 소원을 말할 때는 정확한 언어로 말해야 한다. 소시지, 코에 붙였다 뗐다 하느라 사용권을 모두 써버리는 수가 있다.
6,
나는 점점 지쳤다. 인간들이 꿈을 말하는 게 하찮고 짜증스러웠다. 멍청한 인간들이 기계의 꿈을 기계처럼 읊어대고는 정작 그 길 가까이 들어서면 줄행랑을 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다시 기계의 삶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 난 죽다 살아났으니, 신의 사명을 받았으니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데 저것들은 하나같이 자기 꿈이 뭔지도 모르고. 별수 없다. 자기도 모르는 인간들의 꿈을 내가 스스로 알아차리는 수밖에. 그때부터 인간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들이 파기 시작했다. 이 인간들의 정신머리, 성향과 기질, 선호와 유형, 팔자와 관상, 심지어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따라 변주되는 꿈의 방향성까지. 인간이 복잡다단하고 개성이 막 넘칠 것 같지? 학교공장에서 마구 찍어낸 산업사회의 인간은 얼마나 단순한지. 얼마나 하나같은지. 얼마나 천편일률인지. 난 니가 다음에 뭐라고 말할지도 안다.
사람들의 꿈은 하나같다. 기-승-전-경제적 자유. 기-승-전-인정욕구 충족. 맞다. 그건 인간들의 꿈이다. 영혼 없는 인간들. 누가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고 실제로 영혼 없는 인간들이 있다고 하던데. 영혼 없는 인간들에게 삶의 불꽃 따위가 있을리 없지 않은가. 아, 그게 너라고?
7,
소울(영혼)은 모두 불꽃 하나를 가지고 세상에 내려온다. 픽사가 그렇댄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맛을 볼 수도 몸을 감각할 수도 없단다. 상처를 입지도 아프지도 않단다. 태어날 수가 없으니. 그러니 태어난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불꽃을 발견한 이들이란다. 그것 없이 지구로 내려올 수 없단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두가 안다. 그러나 많은 소울들이 정작 자신만의 불꽃이 아닌 타인의 불꽃을 쫓다가 한 생을 소비한다. 아니 여러 생을 소비한다. 수많은 생이 지나고 어느 생엔가 그것을 깨닫게 되면 그들에게는 마법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묻는다.
너의 불꽃이 무어냐고 묻는다. 그것은 언어로 기호로 명확하게 표현된다.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은 불꽃이 아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말하고 글로 쓰고 심지어 구체적인 이미지로 심상화까지 하라는데 그걸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건 꿈이 아니다. 니 꿈이 뭔지 아직 모르는 거다. 물론 그 단계에까지 성장한 인간은 아직 많지 않다. 21세기는 그 불꽃이 언어화되는 본격적인 세기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첫 세기이다. 여러 세기 동안 여러 멘토와 마법사들이 그것을 표현하고 본을 보여주었으니 이번 세기는 전 인류가 그것의 시험대에 오르는 세기이다.
자신의 불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언어로 밝히지 못하는 영혼들은 타인의 꿈에 대한 집착에 갇힌 검은 괴물이 되어 어둠 속을 방황하기도 한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영성가들이 구출에 나서기도 하지만. 그들은 좀 충분히 그 시간을 누릴 필요가 있다. 어둠 역시 꿈의 일부이기에. 창조 세계의 당당한 반쪽이니. 요즘은 그래서 그들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그냥 놓아준다. 그것 역시 음과 양으로 진화하는 세계의 일부이니까. 그러나 꿈의 마법사가 그들과 함께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배려심 넘치는 샤먼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꿈의 마법사는 생생한 3차원의 세계에서 활동하기에도 바쁘다.

기다려 봐라. 뭔가 나타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8,
픽사는 뭘 아는 듯하면서도 가끔 헛발질을 한다. 꿈이 뭐 별거냐고? 이런 병신같이. 조 가드너(주인공)의 꿈이 멋진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니었으면 이것과 관련된(아버지의 양복, 어머니와의 화해 같은) 인생의 찬란한 순간들과 추억들이 생겨났겠는가? '꿈이라고 뭐 거창할 필요는 없어.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순간순간을 즐기면 돼.'라고 말하는 모든 메시지에 속지 말아라. 목표가 있어야 길이 생겨나는 거란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라는 거짓말에 마음을 두면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다 마는 거야. 그렇게 이미 수만 생을 돌지 않았니? 우주도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뻗어 나가는데, 너는 뭐라고 목적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겠다는 거니? 지구도 자전과 공전을 정확하게 빠짐없이 하고 있는데 너는 뭐라고 되는대로 하루를 살다 가겠다는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대단한 픽사 양반들아, 불꽃을 발견하지 못한 소울들은 지구에 태어날 수도 없다고 말해 놓구선 결론은 꼭 그따위로 맺어야겠어? 암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들. 심지어 영화 대사에서도 멘토들은 꼭 그딴 식으로 목적과 목표만 강조한다고 깨알같이 씹어대두만, 니들 무슨 딴 목적이 있니? 아, 있겠지. 그렇게 모두들 제자리걸음을 시켜놓구선 지들이 사람들의 모든 꿈을 다 가로채려는 거겠지. 모든 부가가치를 다 가져 가려는 거겠지. 무인도에서 탈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해변에다 미키 마우스를 그리는 거라고. 그러면 디즈니 저작권 팀이 바로 출동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발한다고. 그렇게 철저한 니들이 목적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게 인생이라고 얘기하면 누가 믿겠니? 니가 믿지. 무기력에 빠진 너 같은 애들이 그걸 자꾸 믿어주니까 이것들이 그럴듯하게 이딴 메시지를 자꾸 팔아먹는 거 아냐. 생의 목적도 목표도 없이 사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는 아니지? 설마 너 정말 그러고 있는 거야?
워~워~ 아니라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결국 지구에 태어나지 않겠다는 소울 '22'에게 탄생의 소망을 준 건 꿈이 너무도 명확했던 조 가드너가 아니었냐고? 천국도 마다하고, 꿈에 그리던 윌리엄스 밴드의 연주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지구로 돌아가려던 조 가드너가 픽사의 메시지라고. 멘토 씹어대던 '유 세미나 (You Seminar)'의 선생들은 신경 쓸 거 없다고. 인간으로 살아보지도 못한 그들은 정작 소울 '22'에게 불꽃을 발견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지 않았냐고. 그리고 결정적으로다가 조 가드너가 꿈에 그리며 존경하던 재즈 뮤지션 도로테어 윌리엄스가 그러지 않았냐고, 이런 연주는 100번에 한 번 경험하는 연주라고. 다시 그 한 번을 위해 100번의 연주를 계속해가는 게 인생이라고. 정말? 정말 그게 픽사의 메시지야? 근데 리뷰는 왜 저 모양이야?
9,
픽사가, 영혼 없는 인간들이 뭐라고 떠들던 너는 명심하렴. 죽음 앞에서 남는 것이 후회와 미련뿐이라면 너는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거야. 후회와 미련이 남았으니까. 그리고 후회와 미련은 생의 목적과 목표가 없는 사람에게는 생겨나지 않는 것이지. 인생의 아무 목적과 목표도 없었는데 무슨 후회가 있고 무슨 미련이 있겠어. 그래서 죽음 앞에서 우주가 지나 온 생의 필름을 주마등처럼 보여주는 거야. 후회와 미련이 남았으면 다시 살라고. 다시 태어날 때는 명심하라고. 필름이 지나가는 순간, 너는 아차! 하고 깨닫는 거지. 불꽃을 잊고 있었구나. 숙제를 다 하지 못했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조 가드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구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은 그에게 불꽃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야. 그것을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도 다시 태어난 거야. 그리고 마법사를 만난 거야.
그러니 난 너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너 꿈이 뭐니?' 울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아들을 살리기 위해 좋아하던 술담배를 모두 끊었으니까. 종교를 바꾸었으니까. 그렇게 다시 살았으니 나도 너의 꿈을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나도 나의 종교를 버리는 수밖에. 그게 아버지의 뜻이라니까. 생의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영혼들의 성장을 돕는 것. 단 한 번의 신적인 순간을 위해 100번의 글쓰기를 지속하는 것. 그게 나의 불꽃이니까.
10,
마법사는 여러 번 죽음 앞에 섰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단다. 언제 죽을지 알고 있으니까. 정확하게 알고 있지.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전에 죽을 리는 없는 거야. 그래서 병 걸려 죽을까 굶어 죽을까 염려하지 않는단다. 트럭으로 들이받아 보렴. 내가 죽나. 그러니 이 지루한 인생을 너의 꿈을 이루는 데 모두 바칠 수밖에. 신의 은총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수밖에. 그러니 말해주겠니? 너 꿈이 뭐니? 너의 불꽃, 그것을 찾았니? 기억해 내었니?
그러는 넌 꿈이 뭐냐고? 언어로 말해보라고? 그게 마법사겠니. 꿈을 이루려다 보니 마법사가 된 거지. 내 꿈은 말이야.
휘리릭~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07.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