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여름] 기차역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어서 가자.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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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침 10시에 나올 테니 작가님도 나오셔요."

"그러죠. 아니 그러지 말고 제가 키를 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못 일어날지도 모르니 모닝콜도 부탁합니다."



아침 10시에 가야 했다. 술 한잔을 하고 잠이 들면 새벽에 깬다.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술 한잔을 하고 또 아침에 깨면 5시에 오픈하는 펍에 가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다시 술을 마시는 일상의 연속이라고, 이러다 알콜 중독자가 되겠다고, 이런 삶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기 때문이다. 중독의 고리를 끊으려면 10시다. 10시에 가야 한다. 그리고 그의 시간을 함께 버텨주어야 한다.



"굳모닝~ 일어나셨어요?"

"점심전에. 도착하겠습니다."

"넵!"



그리고 나는 테라스에 앉아 <20세기소년 추천사>를 써 내려갔다.


지구를 여행 중인 20세기소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해 하며 여긴 왜 이렇게 됐냐고 탄식을 내쉬었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배척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 처사에 분개하는 것이 오히려 미개한 것으로 매도되는 세상에 어떻게 살고 있냐고 마법사에게 물었습니다.

_ 20세기소년 추천사



그 물음은 지난 <20세기의 여름> 내내 그치지 않았다. 그는 팀 춘자와 조인하며 세상에 없는 경험과 행복을 맛보았지만 그의 조국은 여전히 그에게 싸늘하게 대했다. 아니다 그들은 원래 그렇다. 그들의 냉대와 배척은 21세기의 표준이며 그 표준에서 제대로 벗어나 있는 20세기소년은 추방이 아니고서는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상식의 소유자이다. 결국 좀처럼 화합할 수 없는 조국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란 '사랑' 뿐인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려운데 세상을 사랑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그 세상을 사랑해보려 했던 20세기소년은 허튼 시도를 그만두고 사랑을 찾으러 떠났다. 그렇다. 이 여행은 여전히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꿈도 자신도 아닌 오로지 사랑. 포기할 수 없는 그것 말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사랑을 만나지 못한 여행자는
아직 여행을 마친 것이 아니다.
아직 여행을 시작하지 못한 것이다.

_ [위즈덤 레이스+Book100] 001. 80일간의 세계일주 / @mmerlin


그녀가 연수를 받고 있는 아틀리에에 찾아갔다. 불길함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최승희 씨의 발표 과제를 도와주러 온 뱅상이 프랑스 대통령이 곧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랑스의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고 있었다. 필시 재봉쇄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두 사람은 염려했다.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릴에 온 바로 이튿날이었다.

여행자인 나로선 이런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를 피해야 한다. 최악이란 코로나에 걸리는 걸 떠나 봉쇄된 프랑스에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히는 것이다. 일단 프랑스 대통령이 전면 봉쇄 여부를 발표한다는 전제하에 조치가 시행되기 전에 이 나라를 탈출하기로 한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는 나치 점령 직전의 파리를 급히 탈출한다. 파리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 잉그리드 버그만과 함께 떠나고자 했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약속했던 기차역에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험프리 보가트는 속절없이 비 내리는 역을 빠져나가는 열차에 절망적으로 몸을 싣는다. 나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_ [20세기소년 추방史] #38 전면 봉쇄 / @twentycenturyboy



그녀는 왜 기차역에 나타나지 않은 걸까? 20세기소년은 빈말을 죽도록 싫어한다. 그는 수도 없는 빈말에 사랑을 잃었고 마음을 허비했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말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약속은 더더욱.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기차역에 나타나야 할 차례다.



"소울 메이트라면서요. 그러면 찾아가셔야죠."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떠나겠다고 사랑을 찾아, 일생에 한 번이나 만날까말까한 소울메이트를 찾아 떠나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놓구선 그도 번뇌에 빠졌다. 이제야 좀 한숨을 돌리었건만 다시 떠나야 한다니. 그러나 그 말을 바꾸면 사랑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래 그게 사랑이지. 그리고 그건 소울메이트처럼, 샴쌍둥이처럼 바꿀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 사랑을 찾아. 프랑스로. 그리고 우리도 그를 뒤따라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멤버십 100명. 20세기소년의 멤버십 100명이 모이면 우리는 영업을 종료하고 러브일주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손에 손을 잡고 앞으로 앞으로 말이다. 그와 그녀가 나타나지 않은 기차역들마다 찾아가 그와 그녀, 우리의 소울메이트들을 열심히 찾아볼 것이다. 그렇게 만난 우리들이니까.



20세기소년의 순례는 그때 전면 봉쇄령이 내려진 프랑스 릴에서 멈추었다. 1년 뒤 그는 다시 그곳에서부터 순례를 재개한다. 이 순례는 모두 알다시피 사랑의 순례이고 그의 중단된 러브일주의 재개이다. 그러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계획된 그리고 기록된 그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순례를 중단한 채 남은 생을 미련 속에 채워가든지. 중단된 순례를, 러브일주를, 죽을 때까지, 만날 때까지 이어가든지.



그리고 그 러브일주에서 너도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려고 우리가 만난 것일 테니. 그때까지 <20세기의 여름>은 끝나지 않는다. 봄과 여름을 계속 반복할 뿐. 가을은 외로운 가슴의 입장을 받아주지 않으니까. 열매는 혼자 맺을 수 없으니. 그래서인지 '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20세기소년의 학비를 대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그는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 캠퍼스를 누비게 될 것이다. 기왕이면 CC 라이프를 흠뻑 누리시길. 그러나 그것은 Campus Couple이 아니라 사랑의 도시 [스팀시티]의 City Couple이리라.



그때에 우리는 모두 함께 모여 축배를!
그리고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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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여름을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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