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예브게니 오네긴
작년부터 부쩍 독서량이 줄었다. 읽고 싶은 책을 여러 권 사댔지만, 대부분 손도 대지 않은 채로 책장 위로 쌓아두기만 했다. 그 원인을 여태껏 나의 게으름+충동적 소비 심리로 단정 지었는데, 최근 몇 개의 경험을 통해 나의 '책 구매 습관'이 되려 독서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겐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만나게 되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내가 주문한 책들은 저마다 나와의 개별적인 연결 지점이 있었지만, 내 방에 도착한 순간 나의 소유물이 되었고, 그랬더니 흥미를 잃고 결합이 느슨해진 채로 만남이 뒤로 미뤄지기만 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간 날, 이 책이 나를 잡아끌었다. 손에 감기는 책의 감촉과 무게, 종이의 질, 이상한 제목, 잊고 있던 푸시킨의 이름 위로 이유를 알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이 더해졌다. 책을 빠르게 훑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글이 아니었지만 이 책을 빌려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책을 빌려온 후로는 역시나 읽기가 힘들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잔뜩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같고, 그 안에 성스러운 지혜가 담겨있는 것도 같았다. 몇 번이고 책을 덮고 싶었지만 이 책을 고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 하나로 결국 끝까지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난 후에는 글쎄?였다. 책에 따르면 몇 년 뒤에 그 답을 주겠다고 하는데, 몇 년이 지나 그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이 책을 내용을, 심지어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마저 잊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상관없지 뭐. 덕분에 푸시킨의 글을 하나라도 더 읽게 되었으니.
22
그럼 누굴 사랑해야 하나? 누굴 믿어야 하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유일한 사람은 누군가?
모든 행동, 모든 말을 친절하게도
우리 눈높이에 맞추어 줄 사람은?
우리를 중상하지 않을 사람은?
우리를 자상하게 보살펴 줄 사람은?
우리의 결점도 눈감아 줄 사람은?
절대로 우릴 지겹게 하지 않을 사람은?
부질없는 환영을 추구하는 이여,
내 존경하는 독자여,
헛되이 노력을 낭비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지어다.
그야말로 가치 있는 대상이니
더 이상 소중한 존재는 없도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