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꽃가마 안에서 입은 다홍치마
햇볕도 그 빨강을 탐을 냈겠지
바람이 흘깃 흘깃 냄새를 훔치고
새벽이슬도 한 방울 주는 체 빛을 빼내고
감나무에 내린 서리도 한 줌씩 훑어 갔을 터
노을빛으로 늙은 치마를 몫몫이 잘라
눈물에 뼈를 갈아
다시 볼 수 없는 마음을 적었다
천리밖에 흩어진 핏줄기
세월을 거슬러 흐른다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엣 읽어 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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