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in #steem20 hours ago

초복/cjsdns

초복이다.
그러나 그 옛날 초복은 아니다.
눈에 선하다.
옛날 초복날이 그립다.
어제저녁부터 시작된 아내의 옥수수 찌는 일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집안에 열기가 가득하다.
복날이라며 기르던 닭을 잡아 가마솥에 넣고 푹푹 끓여서 대접 가득하게 담아주던 그때의 엄마가 그립다.
몸 어느 곳에 상처라도 있으면 그곳에 먼저 고기 한점 들고 문질러 주고 먹어야 상처가 탈이 안 난다며 그렇게 해주셨다.
그랬다.
그때는 그랬는데 라며, 지금은 그때를 그리워하며 그때가 참 좋았지라고 생각한다.

초복, 이맘때면 먹을게 흔해서 좋았다.
먹을 게 많아서 좋았다.
이름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종댕이 보다 큰 그래 다래끼라고 했다.
그 다래끼와 호미를 들고 엄마 따라 텃밭으로 나가면 감자 옥수수가 즐비했다.
엄마가 일러 주는 대로 나는 수염이 말라가는 옥수수를 따고 엄마는 감자를 캐고 그걸 집에 와서 옥수수는 껍질을 옷 벗기듯 벗기고 감자는 집 앞 도랑으로 가지고 나간다.
작은 도랑에 감자를 담가 놓고 바로 아래 여동생이랑 마주 보며 숟갈로 감자를 깐다.

감자를 까서 가지고 들어 오면 가마솥에 넣고 불을 때면 한여름의 푸짐한 잔치가 벌어진다.
그때 감자도 지금처럼 흰 감자가 아니고 파삭한 게 맛도 더 좋은 자주감자였다. 그게 지금은 왜 안 보이는지 얼뜬 어디서 보니 가공하는 데는 자주감자가 생김새가 덜 좋다나 그래서 밀려났다는 말도 있다.
자주감자는 흰 감자처럼 둥그렇기보다는 살짝 길쭉했다.
나는 그 감자가 더 좋았는데 지금은 감자라면 거의 다 흰 감자이다.
그러고 보니 내 대문에 바탕색도 짙은 자주감자 색과 비슷하게 닮은 거 같이 보인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삼복중 최소한 한 날은 동네 철렵으로 대동 잔치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그런 풍습이 다 사라졌다.
복날이라 해도 그냥 쓸쓸할 뿐이다.
기껏 해야 어디 식당에 가서 삼계탕이나 먹는 게 다다.
해마다 여름 더위는 오고 복날도 돌아오지만 풍습은 많이 변했다.
왠지 아쉬운 생각이 좀 드는 그런 복날이다.

김영하 작가의 사진관 살인사건의 마지막 문장, "행복한 꿈이었다."로 시작하려 "행복한 꿈이었다."를 써 놓고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갔다.
복날이라, 복날이라서 그런 거 같다.
아내는 아침 내내 찐 옥수수를 한소쿠리 들고 애터미 청평 행복센터로 나갔다.
복날인데 복날인데, 내 점심은...?

감사합니다.

2024/07/15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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