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사이공 억류기) 19. 옮긴 감방에서 한시를 보다

in #leedaeyong5 years ago (edited)

1976년 10월부터 치화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수감자들이 북월로 대량 이송되었다. 그러나 이대용은 당시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15개월이 지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12월 20일 오전 A동 수석간수 구중위가 이대용에게 복도에 나와서 체조와 구보를 하라고 했다. 복도길이는 35m 넓이는 2.8미터 정도였다. 약 15분정도 운동을 했고 그러고 나서 복도옆 물탱크에서 약 10분간 목욕도 하게 해주었다.

오후 2시경에는 이대용의 감방문을 약 30분정도 열어 놓아 답답한 감방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해 주었다. 구중위의 조치는 A동 수감자에게는 파격적인 특혜였다. 이대용은 이런 특혜조치가 아마도 자신이 석방을 위한 조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해도 무심하게 지나버렸다.

1977년 1월 1일 새해 아침이 밝았으나 이대용의 수감생활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구중위는 이대용에게 1월분 차입편지를 쓰라고 했다. 그제서야 이대용은 자신에게 베풀어진 특혜가 조기석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1월 9일부터는 그런 특혜도 없어졌다.

1977년 1월 15일, 1년 3개월동안 수감되어 있던 A동 4층 2호 감방에서 A동 3층 3호감방으로 이감되었다. 역시 외로운 독방이었다. 이대용은 장기수감의 징조라는 것을 직감했다.

무심하게 감방 벽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거기에 한시 한수가 적혀져 있었다.

心身在獄中
我思在獄外
中準男兒志
成仁更貴重

시를 지은 날자는 1975년 6월 3일이고 이름은 람 도 장이라고 월남어로 쓰여져 있었으나 월남국적을 가진 중국인인 듯 했다.

봄은 비록 옥중에 있으나
내 생각은 옥밖에 있다
중용을 지킴은 남아의 뜻이고
인을 이루는 것은 또다시 귀중하다.

이대용은 이시가 조금 소극적이라고 생각했으나, 람 도 장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지못할 친밀감은 느꼈다. 그는 어디론가 떠나 버렸고 감방벽에 그의 이름만 남아 있었다. 이대용은 가느다란 못으로 감방 철문의 벽에 한글로 ‘공사 이대용’이라고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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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곧내(제목이 곧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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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ery excellent history in vietnam sir,useful works sir @wisdomandjustice

계속해서 잘 밁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름을 남기셨군요.

이름을 새기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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