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2] HERO(1)

in #kr-writing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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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lude - Blackened
Chapter 1 - Dog King(1)
Chapter 1 - Dog King(2)
Chapter 1 - Dog King(3)

“나 중위님 전투화는 왜 안 닦아 놨어, 이 개새끼들아!”

도 중사의 질책에 병사들이 일제히 눈을 내리깐다. 어디서 따로 동작 맞추는 연습이라도 하는 건가. 병사들은 정예조교답게 일사분란하게 고개를 숙였다.

또 시작이군. 신일이 굳은 표정으로 도 중사를 째려본다. 저 사람, 내 앞이라고 일부러 저러는 거다. 자기보다 어린 장교의 위신을 세워주는 든든한 베테랑 동료, 저 치는 나한테 그런 칭찬이라도 듣고 싶은 걸까.

“아, 도 중사님. 왜 또 이러세요. 제가 애들한테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다니까.”

“아닙니다, 나 중위님. 이건 그렇게 다룰 문제가 아니에요. 이 약삭빠른 새끼들, 내가 니네 마음 모를 줄 알아? 나 중위님이 니들한테 잘 대해 주니까 니네가 이렇게 막 나가는 거 아냐! 이 개새끼들아! 어차피 대대장님이랑 내 전투화도 닦아놓을 거면서 나 중위님 꺼 하나 더 닦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앙? 야, 마징가, 이 씨발 새끼야!”

“병장 마진하!”

“이 좆같은 새끼야, 너 요새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전투화 당번병이 누구야?”

“병장 마진하, 시정하겠습니다.”

“대답 똑바로 안 해? 당번병 누구냐고 이 새끼야!”

“병장 마진하, 제가 당번병입니다.”

일순간, 사무실에 찾아든 정적. 끝내 눈을 감아버린 몇몇 병사들 사이로 도 중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뭐라? 너 지금 뭐라 그랬냐?”

“병장 마진하, 제가 간부님들 전투화 당번입니다.”

“이 새끼가 뭔 땡중 말고기 뜯는 소리하고 있어. 야! 그걸 왜 네가 하고 앉았어? 누가 병장 달고 그런 거나 하라 그랬어?”

“병장 마진하. 시정하겠습니다.”

“어쩐지 요새 애새끼들 군기가 빠졌다 했어. 너 이 개새끼야, 병장이나 되가지고 그렇게 밖에 못 해? 니 권위가 안서니까 밑에 놈들이 다 그 모양인 거 아냐!”

“병장 마진하, 시정하겠습니다.”

“그걸 왜 네가 하고 앉았어?”

“병장 마진하, 요새 아침에 특별히 할 게 없어서 말입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답변. 그의 태도가 딱히 건방져 보이거나 허세 같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앞에 선 자는 무려 도살자, 라 불리는 사내다. 감히 그의 말에 토를 달다니, 신일은 조마조마한 마음에 도살자의 눈치를 살폈다.

곧, 저 자가 미쳐 날뛰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저 미친개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신일은 마른 입술에 침 한 모금을 발랐다. 폭풍전야의 침묵, 사무실 공기가 조금 전보다 몇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큭, 잠시 할 말을 잊고 있던 도살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시비를 걸기 전에 내비치는 야비한 도발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건, 여간해선 그에게서 보기 힘든 웃음이었다.

“새끼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고 있냐?”

여전히 거칠지만, 한결 누그러든 말투다. 방금 전까지 내뿜던 서슬 퍼런 독기는 어디로 사라진 건가.

“병장 마진하, 시정하겠습니다.”

“새끼야, 그런 건 그냥 애들을 시키라고.”

“제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라 말입니다.”

“참 나, 이 새끼가 뭔 자꾸 되도 않는 말을…”

“도 중사님, 제가 밖에서 구두 닦다 온 거 아시지 않습니까.”

“뭐가 어째, 이 새끼야?”

“도 중사님.”

“왜 씹새야?”

“도 중사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당분간만이라도 그 일, 제가 계속하면 안 되는지 말입니다.”

“뭐?”

“제가 이번에 새로 온 녀석 붙잡고 확실히 교육시키겠습니다. 그 놈이 어느 정도 제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일, 그냥 저한테 맡겨주시면 안 되는지 말입니다.”

“하, 나 이거, 또 이런 경우는 처음일세.”

황당하다는 듯 말을 더듬지만 도 중사의 표정, 그리 나쁘지 않다.

신일은 치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정녕 그 악랄한 도살자와 그가 다진 고기 취급하는 일개 병사 간의 대화인가. 훈훈한 분위기가 어색하다 못해 괴기스러울 정도다.

이미 대화의 주도권은 넘어갔다. 놀랍게도 지금 칼을 쥐고 있는 건, 저 악명 높은 도살자가 아니라 일개 병장 마징가다.

“그니까 널 믿고 일 한 번 맡겨 주십사, 뭐 그런 거여?”

“병장 마진하. 예, 그렇습니다!”

신기한 일이군. 늘 이런 식이다. 그가 말을 시작하면, 주변의 모든 번잡한 것들은 스스로 잦아든다. 사이렌(Siren)의 목소리를 연상케 하는 의연한 화법. 구차한 변명이나 더러운 아부로 들릴 법한 말도 저 녀석의 입을 거치면 늘 진심어린 호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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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사이렌(The Siren), 1900

저런 건 훈련이나 교육으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저 아이의 타고난 재능인 거다. 도 중사를 쥐락펴락하는 진하를 바라보며 신일은 들리지 않는 탄성을 질렀다.

“너 이 자식, 그럼 내가 당분간은… 넘어가겠어. 그래도 앞으로는 일처리 이렇게 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밑에 애들한테 잘해주고 풀어주고 하는 게 능사가 아니야. 그 정도 위계질서도 없으면 그게 무슨 군대야? 니네 뭔 야영 캠프 온 거 아니잖아. 알았어?”

“병장 마진하.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하는 절도 있게 거수경례하고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병사들은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쭈뼛거리며 탄식했다. 어리둥절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녀석부터 한숨을 낮게 내쉬며 뒷목을 훔치는 녀석까지, 사무실에 도열한 병사들은 조심스레 눈치 보며 어수선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난감한 건 도 중사일 게다. 신일은 먹잇감에게 농락당한 포식자를 흘겨봤다. 으흠, 그는 몇 번이나 마른기침을 토하며 신일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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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그… 나 중위님요.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나 중위님 앞에서 목소리를 너무 높였네요.”

평소와 너무 다른 모습에 스스로도 민망했던 걸까. 그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계속 말을 더듬었다.

“도 중사님. 무슨 취지로 이러시는지는 알겠는데요. 전 괜찮으니까 애들한테 전투화 닦게 하지 마세요. 저희한테 이런 거 시킬 권한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에이, 뭘 또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러세요. 나 중위님이 너무 착하셔서 그래. 그런 건 그냥 애들이 알아서 하게 모르는 척, 내버려두십쇼. 나 중위님 같은 고급인력이 그런 잡다한 일에 정력 낭비하실 필요 있나요. 그런 일은 아무래도 아랫것들한테 맡기는 게 낫지요. 하하하.”

아랫것들, 이라는 말에 신일은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마징가 저 새끼, 능글맞아 가지고. 지가 무슨 대단한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지 혼자 좆 잡고 지랄해봐야 여기가 바뀔 수 없다는 걸 모르네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새끼, 어차피 지 제대하고 나면 다 원상 복구될 텐데. 저게 오히려 밑에 애들한테 헛된 희망만 심어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나 중위님?”

계속된 망언에 신일은 격한 피로감을 느꼈다. 모르겠다. 담배나 한 대 피고 와야지, 신일은 보란 듯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이제 전역까지 얼마나 남았지? 다가오는 봄이 지나면,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겠군. 넌더리나는 지루함에 신일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이번 봄은 유난히 나른하고 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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