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모습
순진하지 않다면 순수할 수 없다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순수함과는 너무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눈빛은 반칙이었다. 그의 언어와 행동과 눈빛을 낱낱이 뜯어보자면 그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통합적으로 그는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하나 없었다. 나는 본질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오감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의존해 그 본질을 해체하곤 했다. 직관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지만, 직감은 오감에 의해 그리고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절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물리적인 힘으로.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말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결코 쓰지 못하고 아껴 둔 이야기. 소중하고 빛나서 글로 결코 옮겨질 리 없기에 차라리 묻어두는 이야기. 진공관 속 반짝거리는 순간을 함부로 꺼내면 공기에 닿아 산화되어 부식되어 사라질 테니.
나는 여전히 부모님을 용서하지 못했다. 아니 더 용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들이 내게 과오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행위에 관해서 묻는다면 일이 벌어져 엮인 그 순간조차 그들을 탓해 본 적 없었다. 용서해야 한다고 나를 어르고 이해해보려고 애쓰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그들의 선택과 그들의 인생 이야기는 저절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그들을 나의 안전지대에서 몰아낸 이후로 내 안으로 단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게 막아놓았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자격 박탈이 되었다. 그들이 내게 아무리 잘해주고 사랑으로 보듬어도 나 역시 친절하게 호의를 베풀려고 애써봐도 내 안에서 그들과 나의 거리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었다. 상처 입은 나는 그 누구보다 쪼잔하고 옹졸했기에 결코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가 주고 싶었던 때조차 줄 수 없었다. 그들은 악의가 없었고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지만, 우연히 내게 상처를 주었다는 조건 하나로 영원히 내게 추방당했다. 그것이 내가 부모님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는 나와 달리 너무 쉽게 아버지를 용서했다. 아니 명백한 과오를 저지른 아버지를 한 번도 미워해 본 적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에게 사실을 숨긴 적이 없다 했다. 모두가 나서서 어머니를 앗아가고 사랑을 망치고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만든 아버지를 미워해야 한다고 그에게 강요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해 본 적 없었다.
돌아온 아버지는 그를 미워했다. 그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고 각오한 미움이 돌아오지 않자 몹시 두려웠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눈빛과 경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그를 증오했다. 그의 눈동자의 색깔과 눈빛은 어머니를 빼닮았다. 아버지는 그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 그 눈빛을 볼 때마다 죄책감과 후회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과거 어린 시절과 부모님의 관계에 얽혀 인생을 갉아먹었어도 누구 하나 왜 그러냐고 비난하지 못할 정당성을 확보하고도 그는 그저 받아들였다. 결코 아버지 때문에 상처 입지 않았다. 그와 상관없이 자신 몫의 생을 살았고 그것에 굳이 얽매이거나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그 일은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갔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일화 정도로 결코 크거나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러나 애정을 갈구하지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의 안에는 늘 아버지의 자리가 있었고 햇볕은 그에게도 공평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게 내가 오감으로 느낀 용서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는 뻔한 질문에 그럴 것도 없었다고 그가 말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었다. 그때 그의 안에 가늠할 수 없이 거대하고 순수하고 단단한 사랑의 결정체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직감했다. 내가 영원히 그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것과 나도 그처럼 진정으로 부모님을 용서하고 싶다는 걸.
P.S. 원고 탈고를 하다가
-2021년 4월 10일, by 고물
저도 용서의 의미와 드는 품을 더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늘 쉽지 않은것 같아요. 탈고중이시군요. 원래 탈고하다가 옆으로 새면서 나오는 글이 매력적이죠. ㅎㅎ 힘내시기를 !
저 역시 여전히 진행중이에요. 제가 생각보다 엄청 쪼잔하더라고요..하하.
탈고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하고 있어요. 역시 딴짓하는 게 제일 재밌어요!ㅋ
쪼잔의 세계를 함께 나눠보시지 않으렵니까 ㅎㅎ 제가 쪼잔의 끝을 보여드리지요...
ㅋㅋㅋㅋ 레일라님 귀여워 언제 만나서 쪼잔을 나누자고요.
참 힘들지만 이것도 다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참 힘들었지만 지나가니 또 익숙해지네요~^^;
힘든 건 에너지가 들기 보다는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것 같아요.
언젠가 한 번 파치님의 용서 이야기 듣고 싶어요. :D ..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 용서겠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들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