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난 교오토 춘자와 겨울에 배달된 아오모리 춘자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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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가을 교토에서 봄의 아이, 춘자를 만났다.
갓 태어난 춘자는 수줍었지만 자기의 이야기를 조곤조곤하는 아이였다.
춘자는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 하나 하나에게 소소한 선물을 골라서 주곤 했는데 교오토호에서 난 에코백과 연필을 받았다. 붉은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에코백은 붉은색 긴 치마를 입고 교토 패피인척 하던 내게 썩 잘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1월, 춘자라는 아이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을 때쯤 아오모리의 춘자가 배달되었다. 우편함에서 춘자를 꺼낸 엄마는 내게 "춘자가 누구니?"라고 물었다. "사람 아니고 잡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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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거진 춘자를 다시금 찬찬히 들여다보니 글 춘자, 편집 춘자라고 적혀있었다. 그러고 보면 춘자는 사람이자 잡지이고 멤버쉽 회원들만을 위한 비밀공간이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날아오는 뜻밖의 소식이고 또또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듯하다. 아오모리호의 춘자는 바 루팡의 전단지와 과자와 커피를 함께 동봉해 주었는데 때 지난 산타의 선물처럼 갑작스러웠고 그래서 더 신났다. 아직은 미숙한 아이지만 카페 마론 처럼, MARRON PAPIER 처럼 '꾸준히' '오래도록' 누군가의 가슴에 '무언가'를 남기며 성숙미를 풀풀 풍기는 여인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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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으로 춘화를 모티브로 그려 보낸 색기? 넘치는 춘자는 아오모리호의 엽서로도 만들어져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일본어로 적혀 있어 읽을 수 없는 바 루팡의 팜플렛과 다자이 오사무가 그려진 세로로 긴 원고지를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참을 수 없이 인간실격이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 줄을 쳐놓은 한 부분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 당시 내 얘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내 얘기같다.

내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우스운 행동'입니다. 그 행동은 내게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입니다. 난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그렇다고 인간을 아무래도 단념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스운 행동을 수단으로 인간과의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들조차, 그들이 얼마나 고민을 하고, 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고, 단지 두려워했으며, 서먹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서 그 '우스운 행동'을 몸에 익혔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나는 언제부턴가 단 한마디도 본심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된 겁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中>

봄이 되면 만날 남미의 춘자들은 얼마나 뜨겁고 눈부실지,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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