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후 채점과 피드백을 하며

in #kr6 years ago

요즘 우리 학교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이에 대한 채점 및 피드백이 한창입니다. 가능하면 학생들의 생각을 묻는 서,논술형 문항으로 출제된 문제들이어서 단순히 교사 혼자서 채점하고 그 점수를 통보하는 형식이 아니라 가채점한 것을 그 아이와 1:1로 대면하여 표현이 덜 되거나 잘 못 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첨언이 필요한 것은 들려주면서 채점하는 것, 그 자체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아쉬움은 남겠지만 그렇게 채점하여 받은 점수에 대해서 크게 불평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시간을 계기로 교사는 학생을 더 알게 되고 학생은 교사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게 됩니다.

한 학생이 '무한소수 0.333...에 대해 글을 썼는데 0.3보다 0.33이 더 크고 0.33보다 0.333이 더 큰데 0.333...은 이런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니 무한히 큰 수이다.'라는 논리로 글을 전개해 놨더군요. '무한'이라는 말과 '무한대'라는 말을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기에 오는 오개념이 잘 드러난 글이지요. 0.333...은 순환소수니까 분수로 바꿀 수 있겠냐고 그럼 바꿔보라고 하니 3분의 1로 바꿔냅니다. 3분의 1이 무한히 큰 수인 거 같냐고 물어보니 아닌 거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3분의 1과는 별개로 0.333...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한히 큰 수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그럼 1이 클까? 0.333...이 클까?라고 묻자 입을 닫고 한참 생각합니다. 그러더니 0.333...이 무한히 큰 수가 아니라는 것을 납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용기내어 주어 고맙다고 눈빛으로 말해 보았습니다. 머리로는 깨달아도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어쩌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환소수를 가르칠 때 제논의 역설을 예를 들어 나름 아이들이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수업을 했어도 '무한'(실제적으론 '무한소')과 '무한대'에 대한 구분을 확실히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험 시간에 문제를 풀면서 고민을 한번 더 하고 피드백 시간에 설명을 들으니 완전히 이해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식의 채점과 피드백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엄청 든다는 것이지요. 학생이 많은 경우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학생수가 적은 학교라 시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가채점을 좀 더 꼼꼼히 해 가면 시간을 더 줄일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이런 채점 및 피드백 시간이 너무 좋은데요. 아이들 한명 한명의 논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답안에 작성한 글을 채점기준표에 의거해서 점수를 부여하다가 문득 스팀잇 포스팅에 업보팅하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최근에 피라미 급이 되면서 업보팅할 때 보팅%게이지가 생겨서 다양하게 업보팅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업보팅할 때 잠시 몇 퍼센트로 업보팅해야 하나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아이들이 쓴 서,논술형 답안의 글에 채점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죠. 스팀잇에 많이 빠져있나봅니다. 업보팅%를 조절해 가며 업보팅을 하다보면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포스팅에 대해 평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답안에 점수를 부여하고 그 점수를 합당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은 그 답안에 대한 학생의 의견을 들어보고 답변 혹은 설명을 해서 아이들을 납득시켰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스팀잇에서 포스팅에 대한 업보팅을 하는데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포스팅에 대한 나의 생각과 포스팅에 대한 궁금점을 댓글로 최대한 정성들여 남기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험(평가)도 어쩌면 수업의 일부가 되어야 겠고 시험을 통해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이 아닌 모르는 것을 배울 수도 있어야 하리라 봅니다. 경쟁을 가시화 하기 위한 줄세우기의 수단이 아니라 본인의 성장을 확인하고 다시 성장의 기회로 말입니다.


거북토끼2.jpg

<캘리그래피를 그려주신 @dorothy.kim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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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학창시절에 재돌님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수학 성적이 좀 나았을까요? 한 번은 작정하고 공부해서 시험을 봤는데 찍었던 친구보다 점수가 더 낮게 나와서.. 결국 수포자가 되었습니다.

저도 재돌님 같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았겠다라고 댓글달라고 했는데 ㅎㅎ

통했네요 ㅎㅎㅎㅎgyedo님도..수포자?

저는 고등학교까지는 괜찮았는데 대학수학이... oTL

대학 수학은 저 역시...ㄷㄷ 미분기하학은 완전 외계어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힘들여 노력한 결과가 아무렇게나 찍은 결과보다 못 하다면 많은 자괴감 내지는 배신감이 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수학 성적이 좀 더 나왔을지는 장담하진 못하겠지만 수학을 미워하는 것은 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해 봅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이지요. 수업을 하며 늘 "'수학'이라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함께 협력하는 것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만 이 수업에서 그것을 수학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할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전엔 저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모두 수학을 잘 하게 되길 바랐지만 그것은 엄청난 욕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다른 교과 선생님들 역시 수업에서 그 교과의 성적이 높게 만들고 싶었을테니 그 안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생각해보게 되었죠. 요즘은 다만 수업을 즐길 수 있으면, 배우는 기쁨을 알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 커서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수학과 과학이 우주를 통하게 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내 삶에서 가장 멀게 느껴졌던 이과 계열의.. 과목들이 친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재돌님의 학생들이 부럽습니다! ^^

그러한 채점과 피드백을 받는 학생들은 더 많은 성장을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선생님들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어려운 시간이 되겠지요.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채점방식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정말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물리적 시간의 제약 때문에 항상 충분하게 이루어지지는 못 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 때보다 확실히 아이들의 성적에 대한 납득이나 평가에 대한 반응이 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좋은 교육의 현장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일전에도 한번 말씀 드렸지만 @zaedol 님은 학생들에게 교사 보다는 스승님으로 기억 될 분인것 같습니다. 학생들과의 시간 더욱더 소중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선생님들이 뜻을 합하여 함께 행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되고 있는 요즘의 교육 현장에 대해 함께 생각을 나눠주길 바라며 공감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큽니다. 응원, 칭찬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 힘을 얻어 학생들과의 시간에 충실하도록 하겠습니다. ^^

채점방식이 아주 선진적이시네요. 저희 학창시절과는 많이 다른 발전된 방법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저희 반 성적 채점을 제가 하던 기억이 납니다. 선택형(객관식) 문제들이었고 당시엔 컴퓨터가 일상화 되지 않았기에 말 잘 듣고 똘똘해 보이는 학생에게 맡기곤 했었던 거 같습니다. 그저 듣는 칭찬 한마디에 신나게 채점하던 기억이 있는데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러한 채점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채점으로 점수를 알고 어떤 문제가 틀렸는지 확인은 되지만 아깝다, 운이 없네 정도로 넘기고 틀린 것에 대해 따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단지 점수에 이은 등수가 중요했죠. 정답에 맞춰 구멍이 뚫린 답안지를 친구들의 답안지에 올리고 맞는 것을 체크하던 기억이 납니다. ^^;;;

일교차가 큰 날씨에요 감기조심하세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네요^^

늘 감사합니다. 오치님도 바람과 일교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응원드립니다. ^^

멋진 선생님입니다..... 학원에서도 그러고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주입식이 되기가 싶죠..... 요즘 아이들에게 휴식 주면서 한명씩 피드백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무한의 개념을 많이 어려워 하는거 같긴 합니다... ^^

무한 소수를 하면서 무한소 개념을 다루게 되는데 그게 잘 인해가 안되나봐요. 수가 끝없이 붙는데 왜 계속 커지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요.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에 힘입어 꾸준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신 것 같습니다..학생이 본인의 성장를 확인하고 다시 성장함에 있어 @zaedol 님 같은 선생님이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해주심이 틀림없습니다!

부디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이벤트에도 추천해 주시고 우왓!!
덕분에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고마워요 ^^

와우 팔로우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 왕팬입니다!! 더불어 숲이 됩시다!!

저 역시 팬입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

머리로는 깨달아도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어쩌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과정을 거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용기'를 냈다기보다는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인정을 하니 쓸데없는 자존심도 안 세우게 되고,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더 많은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과정에 많은 시간이 걸렸던 거 같습니다. 나이를 먹고 제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러한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거 같습니다. 아직도 스스로 어른이라고 밝히기엔 부족한 모습이 많네요. ^^;; 그 언젠가 읽은 글 중의 '설득당하는 용기'라는 말이 늘 머리에 박혀 있어서 '인정' 혹은 '설득 당함'의 부분에서는 늘 '용기'라는 것이 떠오릅니다. 실제로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정도인 경우가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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