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 37. 죄와 벌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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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은,
인간 심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뜷어보는 심리적 영향력으로,
특히 인간 영혼의 어두운 부분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줌으로 20세기
문학 전반에 매우 심오한 영향을 주었다고 칭송을 받는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들인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도 유명하지만, 단연 그 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게 통찰력을 가진 소설을
고르라고 하면, 단연 <죄와벌> 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13살의 어린나이에 <죄와벌> 을 읽었다.
그 어린나이에 왜 나의 손에 그 책이 잡혔던 것인지는 이해불가이다.
그 당시 학교공부에는 관심없고 심오한 철학과 문학세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또래의 친구들이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그 책을
쉬지않고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뒤 이어서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읽어봤고,
그 후로 나의 인생가치관은 이 두 러시아 문호의 영향으로 인하여
그 밑바닥이 형성되어져서, 지금까지도 평탄하지 못한 삶을 버티면서
살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서야 어렴풋이, 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그렇게도 심오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는 구석이
있었다.
어릴 적 <죄와벌> 을 읽을 적에,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시나리오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속 서정감(抒情感)과 비슷할 것을
나의 영혼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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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12월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트에 있던 세묘노프광장에는
반체재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28세의 청년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청년에게는 세상과 작별한 마지막 시간으로 단 5분이 주어지고,
5분이 지나면 총살형이 거행될 것이었다.

그에게 주어인 마지막 5분 동안에, 그의 머리속은 이러했을 것이다.
"나는 단 5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
먼저 떠나는 나를 용서하고 나 때문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후회할 시간도 부족하구나, 난 왜 헛된 시간 속에서 살았을까?
찰나의 시간이라도 더 주어졌으면"
"매서운 칼바람도 느낄 수 없겠구나
맨발로 전해지는 땅의 냉기도 못 느끼겠구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겠구나"
"아쉽고 아쉽다"
"처음 느끼는 세상의 소중함"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조금만 더 조금이라도"

사형집행 순간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느꼈던 심정을 토로한 이 글은,
사형집행 바로 직전, 황제의 급박한 전갈로 사형집행이 취소되어버린,
바로 그 날 밤에 동생에게 써서 보낸 편지에 잘 표현되어져 있다.

동생에게 써서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등장한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실수와 게으름으로 허송세월했던 날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피를 흘리는 듯하다.
인생은 신의 선물,
모든 순간은 영원의 행복일수도 있었던 것을
조금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사형집행이 취소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후에, 시베리아의 옴스크에 위치한 감옥에서
족쇄가 채워진 채로 4년을 보내게 된다.
읽거나 쓰는 행위는 일체 금지되었고, 종일 중노동에 시달린 뒤에야
고단한 몸을 뉘울 수 있었다. 비참한 감옥 살이를 이어가는 동안,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과 같은 신세에 처한 허구의 인물에 대해서
상상하기 시작하였고, 그 인물이 겪고 느끼는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그의 머릿 속에서 펼쳐지면서, 이 상상 속의 이야기를 나중에 글로
옮기겠다고 결심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탄생하게 된
작품이다. 고된 삶의 굴곡과 그 속에서도 느껴질 수 있는 살아있음에
대한 찬사,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심오하게 파고들면서 가장 깊은 곳까지
끌어내어주는 문학적 성찰은, 그가 실제 살아온 체험 속에서의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뛰어난 인문학적 고찰, 이것은 그냥 지식을 쌓는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엘리트적인 지식과 배움의 경지가 높다고 해서,
<죄와벌> 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심오한 경지의 작품이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오로지 살갗으로 직접 느껴지는 차가운 겨울의
매서움을 몸소 느껴보야만, 인문학 작품들 속에,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심오함이 스며들 수 있게 된다.

문화예술의 작품들을 감상할 때에, 그 작품에 스며들어있는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라는 것이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전해져 오는 것은,
작품속에는 그 작가의 영혼이 가진 체험의 깊이가 그대로 투영되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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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양목님의 통찰!! 잘 보고 갑니다^^
/ [Curating #6] kr-newbie 지원 프로젝트(12월 2주)

비슷한 나이에 제3의 물결을 읽었었죠. 이유는 그저 그 책이 손에 잡히는 마지막 책이었기 때문이지만요. ㅎㅎㅎ. 하지만 제 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텍스트 중 하나는 경향일보에 연재되던 금강님의 “발해의 혼” 그런 종류의 책이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감상이란 각자의 삶의 시각에 비춰진 그림자 같은 것이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그런 이유로
문학작품을 일컬어 영혼의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하시네요. 13살때 보셨다니 어려운 책을.;;;
저도 초등학교때인가 친구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있었던게 생각나네요.ㅎㅎ

저는 중1때 천상변 시인의 귀천을 읽고 시에 빠져서 그때부터 문학의 매력을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죄와벌 읽었는데 사실 너무 어려서인지 무지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깊이 있게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지금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집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읽기를 소홀히하고있는데요
@yangmok701님 글 읽으면서 바쁜 일정속에서도 책을 읽고싶은 욕구가생기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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