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괴롭지 않은 명절이 되려면?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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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명절이 싫었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 시골에 내려갈 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 잠자리, 화장실이 불편하다.
  • 차례 지내기 위해 너무 많은 고생을 하는 분들이 있다.
  • 대화가 없다. 대화할 주제가 부족하니 텔레비전을 멍하게 보다가 뭔가를 우물우물 먹게 된다.
  • 남자 어른들은 고스톱을 치거나 술 마시거나 아니면 술 마시며 고스톱 친다. 여자 어른들은 그 수발을 든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본 사촌들과 어색하게 한 공간에 있을 뿐이다.

좀 자라니까 명절이 더 싫어졌다. 역시 이유는 역시 여러가지다.

  •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어른이 어디 가나 꼭 있다. 그런 어른이 무슨 훌륭한 삶을 사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 누구 하나 잘된 일이 있으면 그거 축하하고 지나가면 될 텐데 꼭 거기서 더 나간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 취직한 친척이 있으면 꼭 취직 못한 사람에게 "너는 어떻게 되는 거냐?"며 걱정하듯이 말하지만 당사자는 정말 죽을 노릇이다. 그뿐 아니라 그의 부모도 불편해하고 전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누군가는 힘든 명절 노동에 시달린다.
  • 여전히 대화 주제가 부족하다. 고스톱을 치지 않거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별달리 할일이 없다.
  • 끝나고 집에 오면 매우 피곤하다. 이건 명절이 휴식이 아니라는 증거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농경문화 때 성립된 명절 의식은 현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문화지체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이 따라야 한다.

  1. 명절의 기본 취지는 개인, 휴식, 만남으로 한정하자.

  2. 개인이 집단보다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이 근대 사회의 기본이다. 각자의 즐거움을 추구할 시간을 명절의 중심으로 삼자.

  3. 명절은 되도록 모두가 푹 쉬는 것을 권장하자.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가 더 많이 희생하면 안 된다. 이 휴식은 자신을 돌보는 것에 쓰여야 옳다.

  4. 명절의 만남은 짧고 긴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곳에 여러 사람이 모이는 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꼭 누구의 집에 다 모이는 방식도 재고되어야 한다. 바깥에서 밥 한 끼 혹은 커피 한 잔 먹으며 얘기하고 헤어지면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5.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여기에는 음식부터 이동을 위한 화석연료까지 다 포함된다. 지금은 물자가 부족하던 농경사회가 아니다. 평소에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 명절에 더 많이 쓰는 소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적인 재정비를 하자.

명절 문화는 바뀌고 있다. 해마다 명절 기간 해외 출국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그 증거다. 물론 일가족이 다 출국해서 현지에서 차례를 올리기도 한다지만 그래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기 바란다.

물론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여 즐겁게 노는 집안도 있을 것이다. 못 보던 친척들 보는 재미로 명절 연휴가 기다려지는 사람도 왜 없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런 행복한 경우에 속하지 못했다. 또 나와 비슷한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 분들이라면 명절을 새롭게 기획하는 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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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대학생이라 명절이면 용돈받을 생각부터 듭니다.(아직 철들려면 멀었어요ㅠ) 명절에대한 특별한 해석 재밌게 보구갑니다~!

하하. 용돈 받는 재미도 크죠. 글 재밌게 읽으셨다니 좋네요. ^^

저도 크면서 어느 순간부터 명절이 싫어지더라구요.
이번 명절도 행복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꽤 잘 보냈음 좋겠어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명절이 누구에게나 즐거운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명절날 가족들과 있으면 오히려 힐링이 되는거 같더라구요 :) 암튼 휴식의 기준이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테니... 정말 이번 연휴때는 일 걱정없이 푹 쉬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네, 팬더님 말씀처럼 모든 이에게 명절이 힐링이기를 희망합니다. ^^

저도 명절 없이 그냥 많이 노는날... 이랬으면...

네, 명절 의식을 치르더라도 많은 휴식이 보장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서로 부담을 주지 말고요.

옳소옳소~~~공감하고 갑니다. 명절은 힘드러^^;;

네, 누구는 힘들고 누구는 먹고 눕는 명절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명절 좋아하는 사람 참 드물어요.
아이러니죠…

그렇습니다. 이제 명절이 즐거운 휴일이 되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할 때라고 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무급노동기간이죠 ㅠ_ㅠ @홍보해

네, 설이든 추석이든 부담스런 가사노동이 전제되는 명절이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오히려 한 해를 시작하거나 매듭을 짓는 내적 의미가 추구되어야 하고, 그것은 충분한 휴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witism님 안녕하세요. 개사원 입니다. @eversloth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요즘은 명절에 여행가는 가족들이 그렇게 부럽습니다

네, 저도 부럽습니다. 조만간 한번 시도해 볼 참입니다.

완전 동의합니다. 업보트 팔로우 리스팀 하고 갑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도 팔로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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