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PEN클럽 공모전 [아빠의 스물두 번의 환생]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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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스물두 번의 환생

글/ 키만소리

지난 주말, 목욕을 하다 내 몸에 새겨진 점들을 발견했다. 평생 봐왔던 점들일 텐데 욕탕에 앉아서 유심히 쳐다보니, '어? 여기에도 점이 있었나' 싶었다. 몸에 새겨진 점을 보니 어릴 적 엄마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때는 날이 무더운 여름이었다. 엄마는 수박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있었고, 아빠는 선풍기 앞에서 웃통을 벗고 '아이고야, 덥다'라고 말하고 계셨다. 나는 수박을 기다리면서 아빠의 등을 봤다. 우리 아빠는 유난히 점이 많은데, 특히 등 부분에 점들이 몰려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아빠의 점들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그렇게 시작된 점 세기는 무려 스물두 개를 세고야 끝이 났다. 무려 등에서의 스코어다. 나는 점들을 다 세고서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는 왜 점이 많아? 엄마도 그렇고, 언니도 나도 점이 별로 없는데"

엄마는 쟁반 가득 시원한 수박을 거실에 내려놓으시면서 아빠 대신 대답해주었다.

"아빠는 전생에 환생을 많이 해서 그래."
"환생?"
"사람 몸에 있는 점들은 환생한 수를 말해주는 거야. 잊지 말라고"

엄마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 우리 몸에 있는 점들은 우리가 전생에 살았던 환생의 수를 알려주는 거라고. 지금의 몸이 몇 번의 환생을 통해 다시 태어난 몸인지 기억하려고 점들이 있는 거라고. 나는 너무 놀라 태평하게 선풍기 앞에 앉아서 수박을 먹을 수 없었다. 무려 스물두 번을 훌쩍 넘겨 환생한 아빠의 점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바빴다.

"그럼, 아빠가 다음생에 태어나면 이번 생의 점이 또 생기는 거야?"
"그렇지. 이번 생을 잊으면 안 되니깐 점이 하나 더 느는 거지."

상상을 했다. 갓 태어난 아이의 몸에 스물 두개 하고도 하나의 점이 더 있다면 어떨까. 내가 그 아이의 부모라면 왠지 걱정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이렇게 많은 환생을 거치고 내게 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더 기쁘려나. 아, 정말 나는 모르겠다.

"아빠는 지난 생이 기억나?"

수박을 먹던 아빠는 크게 웃었다.

"아니, 기억이 안 나."

나는 진지했다.

"그럼 다음 생에는 엄마랑 나랑 언니가 있었다는 걸 까먹는 거야?"

진지한 나의 질문에 아빠와 엄마의 짧은 눈빛을 공유했다. 1, 2초 부부간의 눈빛이었으리라. 아빠는 먹던 수박을 내려놓으시고 내게 말해주셨다.

"그때는 이번 생의 점을 보면서 엄마랑 진아랑 솔이를 기억할게."

나는 조금 감동받았다. 어린 나의 나는 정말 감동받았다.

"그럼, 다음생엔 여기에 점이 생겼으면 좋겠다. 거울을 볼 때마다 우리를 기억할 수 있게."

나는 아빠의 왼쪽 뺨을 가리키며, 다음생에 그려질 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모양새는 조금 우습겠지만, 그 점을 볼 때마다 우리 가족을 떠올려야 하니 꼭 얼굴에 있어야 했다. 아빠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안심이 되는 나는 그때서야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쫓았다.

나는 그때부터 점을 볼 때마다, '아, 이 점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 몸에 그려진 점들을 찾으면서 나의 환생 수를 세어보기도 했고, 내가 과거에 살았던 생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끝났고 선풍기는 창고로 돌아갔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내 몸에 있는 점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아빠의 스물 두개의 점들 역시 기억에서 잊고 살았다. 어른이 된 나는 내 몸에 그려진 점들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다가올 내일의 걱정에 치여 사느라 엄마의 귀여운 환생 거짓말은 어린 시절 서랍에 꼭꼭 넣어두고 까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목욕을 하면서 엄마의 귀여운 거짓말이 불현듯 생각난 것이다. 점의 개수가 환생의 수라니. 엄마는 어떻게 이런 귀여운 발상을 하신 걸까. 엄마의 귀여운 거짓말이 혹시라도, 진짜 점이 환생의 수를 뜻하는 거라면? 말도 안 되지만, 진짜 그렇다면 어린 시절 내가 아빠 왼쪽 뺨에 콕 집어놓았던 그 자리에 이번 생의 점이 생겼으면 싶다. 거울을 볼 때마다 우리 가족을 생각할 수 있게 말이다.

2000자 세이프!




안녕하세요:) 키만과 효밥 (@twohs)입니다.
@kimthewriter 님의 PEN클럽 공모전에 참가 글입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농담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떠올라서 적어봤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그림을 그리느라 글에 조금 소홀했는데, 이런 이벤트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글/ 키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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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점이 몇 개나 있더라~~^-^
어머니께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요
키만님이 이렇게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작가가 된 건 모두 어머니덕분인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마음껏 상상하도록 날개를 달아주셨네요^-^

초등학생 때 들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나는 걸 보면 그때 충격(?)과 놀람이 꽤 컸나봐요 ㅎㅎ 하지만 정작 엄마는 저런 말을 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하세요 ㅋㅋ

겨우 겨우 살아 남겨진 얼굴의 점을 한번 만지게 되네요
제 자화상을 보고 애들이 하는말
" 점이 빠졌네요"
그래서
얼마전 점빼러 유명한 성형외과 갔는데요
몇 녀석은 사망햇지만,
볓번을 치료받았는데 뿌리가 깊어서 몇 놈이 살아 남아있어요

저도 얼굴에 있는 점이 늘 스트레스라서 큰 마음 먹고 온 얼굴의 점들을 다 뺐는데, 해외 자외선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뿌리가 깊어서 그런지 다시 올라왔어요! 다시 올라오는 점들은 강력한 환생 점들인가봐요 ㅋㅋ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점에 그런 의미가 있는지 몰랐네요:> 거짓이라도 가슴에 남는 순간이 되었으니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저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해보니, 아무도 모르더라구요 ㅋㅋ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이제 점을 보면 환생을 기억하시겠죠?

그럴 것 같아요~저만해도 글 보고 점 갯수를 세어보기 시작했어요~ㅋㅋ

귀엽기도 재미나기도 한데 저는 왜이리 울컥하는지 모르겠어요 ㅜㅜ 이번 생의 점을 보면서 지난 생의 가족을 기억한다는 이야기나, 우리를 잊지 말라고 아빠 뺨에 점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아 저도 님 같은 딸이 있었으면 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식들과 저런 좀 알콩 달콩한 이야기 좀 해보고 싶네요.

일기 투어 중에 들렸습니다.
모두들 참 글을 잘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아 ㅎㅎ 방금 깐 귤 같은 너무 귀엽고 아름답고 깊은 다이어리 입니다. 정말 좋은 부모님이시네요.

급 저도 제게 있는 점을 세어보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수의 환생을 했네요.
뭐가 아직 아쉬운 것이 있어서 이렇게도 많은 환생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ㅋ

어머님의 귀여운 거짓말에 저도 잠깐 재미있었네요^^

스물두개의 점들이 다 똑같지 않았겠지요? 다 똑같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어떤건 크고 어떤 것 작고 어떤 것 엷은 색이고 위치도 다르니까 다채로운 인생을 사셨겠습니다. 아주 멋진 상상입니다.

우왕 너무 따뜻한 글이네요. 저도 몸에 점 한 번 세어봐야겠다싶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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