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프로바이즈 - 인공지능이 음악을 지배한다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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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좋았어. 이렇게만 하면 이번 대회, 기대할 만 하겠는걸?”
루디가 활기차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날 저녁부터 시작된 연습은 호흡이 좋았다. 어제의 연주 사고 이후 나름 휴식을 푹 취한 덕분일까, 멤버들은 컨디션이 좋았다. 대물은 연습을 마치고 리허설 룸 안에서 짐을 꾸리는 밴드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컬리스트이자 첼리스트인 진하. 진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아이돌 그룹의 대표 멤버로 활동했지만 마약 스캔들을 터뜨리고 징역형을 선고받아 대중으로부터 잊혀진 불운의 가수였다. 올해 서른 둘인 진하와 대물의 공통점은 어릴 때에 음악으로 큰 돈을 벌고 스타덤에 올랐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어릴 때에 이룩한 성공을 남에게 빼앗겼는가, 스스로 빼앗겼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대물도 도박으로 적지 않은 돈을 잃기는 했지만, 진하는 도박은 물론이고 마약까지 거칠 것 없이 즐겼고, 유명세를 한창 떨치던 중에 징역을 살아야만 했다.
진하는 아이돌 활동을 하던 때부터 대물과 친한 편이었다. 대물의 곡을 가장 많이 부른 가수 중 한 명이기도 했기에 대물의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형기를 마치고 나왔을 때 대물은 진하에게 목소리가 더 깊어진 것 같다며 진심을 담아 놀렸다. 그리고 대물은 진하와 함께 팀을 결성하고 멤버를 구하기 시작했다.
DJ 및 믹서인 루디. 프랑스계 혼혈인 이 친구는 대물보다 두 살 어린 서른 살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으로 성공했고, 20대 후반에 성공의 정상에서 강제로 끌려내려 왔다는 점에서 대물과 많은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 일렉트로니카가 유행의 첨단을 오르락내리락 할 때에도 이 친구의 커리어는 언제나 오르막이었다. 적어도 음악 엔진이 클럽의 DJ석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음악 엔진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많은 DJ가 음악 엔진을 자신의 퍼포먼스에 도입하거나, 역으로 음악 엔진을 보조하는 스탭이 되어 업을 이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대물과 마찬가지로 자존심 덩어리인 루디는 인공지능이 자신의 선곡을, 자신의 디제잉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적당히 타협했으면 아직까지 전성기를 누렸을 텐데.’
대물은 차차 대중에게 잊혀지다가 이제는 은둔자나 다름없게 된 루디를 아깝게 생각했고,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루디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팀으로 영입했다.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마스터링 실력까지 겸비한 루디는 대물의 부족한 기술을 채워줄 수 있는 인재였다.
베이시스트 상아. 올해 스물여섯인 이 아가씨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음악으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적이 없다. 심지어는 음악을 본업으로 삼은 적도 없다. 낮에는 게임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상아는 그저 꾸준하게 취미로만 베이스를 쳐 왔다. 본업도, 취미도 그저 꾸준히 해 온 모범생 스타일인데, 음악적인 천재성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연주를 해 온 덕에 기본기가 좋은 편이고, 감각도 좋은 편이다. 어찌 보면, 현재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본업으로 제대로 된 수입을 거두고 있는 멤버이기도 하다.
상아는 루디와의 친분을 통해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루디의 손으로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니카를 오가는 온갖 종류의 드럼 비트를 만들 수 있었지만, 베이스 라인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대물이 중시하는 라이브 음악의 생동감은 손으로 연주하는 악기를 통해서만 만들 수 있었고, 진하가 노래하는 중간에 첼로로 베이스 라인까지 채우는 것은 무리였다. 루디가 상아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덕에 대물은 그녀를 팀으로 영입했다.
대물 자신은 이 밴드에서 기타리스트 역할을 하고 있었고, 필요하면 신시사이저도 연주했다. 작곡가로 잘 나갈 때에도 악기 연주는 꾸준히 연마해 왔다.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 가끔 손 가는 대로 프레이즈를 치면 무의식이 새로운 재료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엔진들에게 밥줄을 모두 빼앗긴 후에 대물은 오히려 연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래, 망할 것들아. 이것도 흉내내 봐!' 기계가 작곡을 사람으로부터 빼앗고 있지만, 손으로 연주하는 생음악만큼은 기계가 사람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인으로써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마저 위태로워졌다.
“지금까지 대회 결과가 어때?”
루디의 질문에 상아가 답했다.
“리프트 3연승이야. 다음 경연에서도 이기면 4연승이고, 그 다음에 우리랑 붙었을 때 또 이기면 5연승이지. 세계 기록이라는데?”
“당연히 기록이겠지. 이런 정신 나간 예능이 없었으니까. 인간 망신 아냐?”
“리프트도 인간이 개발한 거잖아. 그리고 리프트가 연주할 때 스테이지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DJ 매생이 말이지? 로봇 시다바리 새끼. 자존심도 없는 새끼지.”
진하가 거칠게 내뱉으며 보컬 이펙터 가방을 들어올렸다.
서로 느슨하게 알던 사이인 네 사람이 팀을 이루고 밴드로써 연습을 시작한 건 '뮤즈 챌린지'라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장르와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어떤 종류의 뮤지션이든 참가할 수 있는 이 대회는, 심사위원단의 선발을 거쳐 무대에 두 팀이 올라 3라운드에 걸쳐 퍼포먼스를 주고받는 대회였다. 이전 세대의 수많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비해 너무 포용력이 넓은 듯 보이는 이 대회에도 큰 제약이 될 만한 룰이 있었다.
연주에 즉흥성이 필요했다.
큰 틀에서 퍼포먼스의 테마나 곡 재료를 준비하는 건 괜찮지만, 즉흥성이 반드시 필요하고, 평가의 요소가 되었다. 그 이유는 최근 음악 소비자들의 성향과도 관계가 깊었다. 너무나 많은 음악의 범람 때문에 같은 음악에 쉽게 질리던 소비자들은, 음악 엔진이 제공하는 무한한 변주와 즉흥성에 매료되었다. 더군다나 음악 엔진은 센서를 통해 수집한 소비자의 취향과 기분까지 고려해서 음악을 제공했다.
뮤즈 챌린지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팀은 라이브에 온 방청객의 감정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고, 이를 해석해서 연주를 펼쳐나가야 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평가와 댓글도 연주자들에게 직접 날아왔다. 루디와 같은 DJ의 역할은 이러한 피드백을 해석하고 연주 진행 방향을 리드하는 데에 매우 중요했다.
“그래, 제일 최근 방송에 나온 도전 팀에도 DJ가 없었어?”
“아니, 있었어. 그럼에도 진 거야. 호응도를 집계할 필요도 없었대. 두 팀이 각각 세 번씩 퍼포먼스를 하는데, 두 번째에서 이미 리프트가 압승이었다나 봐.”
듣기만 하던 대물이 말문을 열었다.
“리프트는 쇼 전용이야. 음악적으로는 그냥 카피 덩어리지. 차라리 스트롬이 낫지.”
“그거나 그거나. 똑같이 쓰레기 같은 음악 엔진들."
“똑같지는 않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볼거리로 리프트에게 승부를 걸 수가 없어. 리프트는 시각적인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현혹시키는 데에 집중하고, 이전 생방송에서 쓰지 않았던 장르를 골라 가면서 허를 찌르고 있어. 리프트에게 두 번째로 졌던 제 5극장은 사실 모든 관객의 눈을 가리고 음악만으로 승부했으면 이길 수도 있는 팀이었어.”
상아가 물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
“리프트가 5번째 경연에서 고를 장르는 몇 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루브 있는 훵키 스타일이나 1980~1990년대의 아메리칸 팝이 나오는 데 걸겠어. 총 3회전 중에서 한 번 정도는 리프트와 비슷한 장르로 정면 승부를 거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나머지 2회는?”
“우리 걸 보여줘야지.”
진하가 끼어들었다.
“맞아. 렘비언트, 그리고 BDM. 철저히 비 대중적인 장르로 연습을 계속해온 이유가 이거야. 이제부터의 연습에는 시각적인 퍼포먼스도 놓치면 안돼.”
루디가 눈을 빛냈다.
“기계 따위, 뭉개줘야지.”
“좋은 자세야.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다른 딴따라들처럼 즐거우면 됐어, 정도로 생각하는 자세는 버려.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모였고, 이기기 위해 만든 팀이야.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해.”
진하가 대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자, 애들 그만 피곤하게 하고, 오늘은 다같이 맥주 마시러 가기로 한 거 알지?”
“아, 오늘인가?”
대물은 주머니 사정이 떠올라 살짝 난감했다.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재정적 압박을 겪다 보니 대물은 밖에서 식사하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진하는 대물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자, 나가자들. 오늘 맥주는 내가 쏜다!”
“이야, 왠일이야?”
“너무 기대하지 마. 비싼 데 안 갈 거야. 상아, 차 가져 왔지?”
“뭐야, 난 술 마시지 마?”
“자율주행 걸어놓으면 되잖아?”
“그거 다 단속 걸려! 언제 적 소리야?”
네 사람은 리허설 룸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쳐갔다.
“우승하면, 리허설 룸도 큰 걸로 새로 얻을 거야.”
대물의 말에 진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 우승하고 나서도 연습 계속 할 거냐?”
“스튜디오 용도로 쓰는 거지. 우승하면 각자 일감도 많이 들어올 거야. 공동 작업실로 쓰고, 팀웍을 계속 만들어 보자고. 그리고 아예 옛날 방식으로 음악을 하는 거지. 10곡 정도 써서 앨범도 하나 내고, CD도 만들어 보는 거야.”
“세상에, CD라니. 이 늙은이.”
대물은 씨익 웃었다.
“마음만은 10년 전을 살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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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Nice post my friend i am @djnoel :)
Hey, thank you for reply. Unfortunately I've got no plan for English version of this series yet :)
잘 읽고 갑니다
제5극장은 혹시 제8극장 패러디인가요
으허허허허 날카로우십니다 ... ;
깜빡하고 보팅을 안했네요...
아직 보팅량을 조절할 수 없어서 최소로 보팅되는게 아쉽네요
괜찮습니다 ㅎㅎ 즐겁게 읽어주시는 덕에 연재는 죽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