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순례: 불암산(7사찰)-5 석천암(石泉庵)
100대 명산 순례: 불암산(7사찰)-5 석천암(石泉庵)
불암사에서 석천암 가는 길은 온통 바위투성이 길이다. 집채 만한 거대한 바위들이 좁은 산길 양 옆으로 산재해 있었다. 처음에는 큰 바위들을 만나면 기록에 남긴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한 장씩 찍었는데 너무 많다 보니 무의미한 작업처럼 여겨졌다.
도대체 수백개도 넘는 바위를 기록으로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훔쳐 가지도 못할 것이고 언제라도 오면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을텐데… 이름있는 사물이나 동물을 닮은 바위는 모든 사람이 경외하는 보물이지만 그냥 그렇게 생긴 바위는 아무리 크도 대접을 받지못하는 게 현실이다.
자연은 아무 죄가 없다. 자연은 그냥 생긴 대로 살아 갈 뿐이다. 산에 자생하는 식물 중에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산삼 같은 약초도 흔해 빠진 조릿대와 전혀 다름이 없다. 가치를 인간이 필요에 따라 매겼을 뿐 자연은 평등하다.
석천암은 뒤쪽 거대한 암석에 새겨진 마애불을 제외하면 볼만한 견물은 전혀 없다. 대웅전과 삼신각이 전부인 작은 절이다. 불행하게도 신라시대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남아있는 유물은 전혀없고 마애불조차도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석천암(石泉庵)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산 97번지 불암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말법시대 중생들의 귀의처인 이 미륵불은 1966년 설봉스님이 조성하신 것으로 오늘날 석천암의 상징이 되고 있다.
신라 흥덕왕 때 지증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1882년(고종 19)에 병역제도의 개편으로 오위제도가 해체되자, 오위장(五衛將) 이장군(李將軍)이 옛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
그 후 1902년에 거사(居士) 김한구(金漢九)가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이곳에서 공부하였으며, 1956년에는 주지 창근(昶根)스님이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채를 중수하고, 1960년에는 법당을 세웠다. 하지만 대웅전이 낡고 협소하여 수년전 중건하던 중 완성을 보지 못하고 화재로 전소되어 신도들과 남양주시의 도움으로 어렵게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양주군 불우(佛宇)조에 보면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석천암의 경치가 잘 담겨있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하고 있다.
“천불산(千佛山) 높푸르러 겹쳐졌는데, 발자국 미끄러워 칡을 잡는다. 구름이 노목을 덮어 매 집이 높고, 물이 샘에 흘러와 용이 숨었다. 손님은 시를 쓰려 석탑(石塔)을 쓸고, 스님은 예불(禮佛)하며 종을 울린다. 올라가 임해 보니 동남쪽이 모두 보인다. 건곤(乾坤)을 굽어보니 가슴 시원하네.”
그 덕에 산엘 가지 않는 저 같은 사람들도
그 산의 바위를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
thank @syskwl
WhereIn Android
두번째 사진부터 나오는 바위 하단이 무엇인가에 의해 녹여 나간거 같은데 물에 의한것이라면 거대핸 물줄기가 흐르던 곳이었나 봅니다. 참 신기하네요.
어마어마한 규모네요. 장엄합니다.
스쳐가는 인생,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지나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