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만 더이상 할 수 없는 것 | 스팀달러가 생겨서 간 곳 | 남미일상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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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springfeld

어젯밤엔 오랜만에 룸메이트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D
그동안 스팀잇을 하느라 제가 라면만 끓여먹는 통에
룸메이트도 덩달아 밥을 제대로 못먹었거든요.
아, 제가 우리집 밥당번입니다 :-)

외식할까? 하니까 냉큼 전화로 예약을 하네요.
동양음식이 먹고 싶다고 힌트는 주었는데
저를 어디로 데려갈 지?

오랜만에 하는 외출에, 오랜만에 렌즈를 끼고
오랜만에 집 대문을 열어 봅니다.
우와, 바깥공기! 밤 9시라 날이 선선하네요.
오랜만의 외출이었는데 걸은 지 5분 만에 도착 ㅎㅎㅎ
그런데 도착 한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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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Sunae Asian Cantina 라는 레스토랑입니다.

상호명: Sunae Asian Cantina
주소: Humboldt 1626, Capital Buenos Aires, Argentina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동남아시아 레스토랑인데요.

여기 비싼데...

제가 문 앞에서 발을 멈추었습니다.
집 근처라 꼭 한 번 오고 싶었던 곳이지만
가격때문에 늘 망설였던 곳이거든요.

스프링, 글 써서 스팀달러 생겼잖아?

방콕해서 혼자 일기나 쓰고 있던 제게
본인은 하지도 않는 스팀잇을 소개해준
룸메이트가 말합니다.
저도 모르게 얼굴에 화색이 들었네요.

그래, 먹자! 나 동양음식 먹고 싶었어!

사실 스팀달러로 뭘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모르면서
수입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위풍당당 입장합니다.

오픈 키친이네요.
주방을 본 순간 (또)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서서 바라보았는데,
그 이유는 조금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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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타이, 판씻, 시니강, 시식(Sisig), 포..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음식이 주를 이룹니다.
메뉴 중엔 한국오이김치를 곁들인 것도 있네요.
룸메이트는 팟타이(295페소, 약 2만2천원, 2018년 1월기준),
저는 판씻(330페소, 2만 5천원)을 주문했어요.

가격이 후덜덜합니다.
사실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서 크게 비싼 건 아닌데
정작 현지에서는 5천원이면 충분히 먹는 음식을
몇 배를 내고 먹는다는 게(현지 맛도 아니면서)
부담스럽고 억울한 것이지요 ㅎㅎ

수입, 유통에 여러 제약이 있는 아르헨티나에선
외국 재료나 해산물이 워낙 비싸기에
남이 해준 동양음식먹는 게 어디냐 합의를 봅니다.
게다가 저 돈 벌었잖아요?
(아직 어떻게 쓰는 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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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보기 드문 음식을 팔고 있다보니
손님이 엄청 많습니다. 저도 하나 차리고 싶네요 :D
저희가 식사를 끝낸 밤 11시쯤에는
식당 밖까지 줄을 서 있더군요.

아, 아르헨티나에서는 저녁을 9, 10시쯤 먹습니다.

식사 주문을 받는 데만 20분쯤 기다리고
식사가 나오는 데도 약 20분이 걸립니다.
오늘의 첫끼라 배는 고프지만 재촉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남미니까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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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드디어 등장한 음식들입니다.
팟타이는 사실 집에서 종종 해먹었는데
룸메이트가 다른 사람이 해준 것도 궁금했대요.
때깔은 더 화려하고 양념도 훨씬 진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구하기 힘든
고수(Cilantro)와 두부도 들어가 있네요!
아 근데.. 케찹맛이 나요 ㅜㅜㅜ

팟타이를 만들 때
타마린드(Tamarind)라는 식재료가 들어가는데
요게 팟타이 특유의 시콤달콤한 맛을 내거든요.
그런데 여기 팟타이에는 슬쩍 케찹맛이 ^^;
아무래도 타마린드를 구하기 힘들었겠지요?

그래도 쫄깃말랑한 면발과
정성스럽게 밑작업한 식재료들이 잘어우러집니다.
룸메이트도 고수를 쏙쏙 골라내며 잘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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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제가 주문한 판씻(Pancit) 이예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거라 주문했는데
생강맛이 나는 짭짤한 잡채 맛이 나요 :D
주재료는 소면보다 얇은 당면(살짝 보이지요?)으로
새우와 삼겹살, 양배추, 당근 등을 넣고
간장, 생강(듬뿍) 등으로 양념한 뒤
살짝 쪄서 내왔습니다.

반가운 맛이지만...
집에서 잡채를 즐겨 해먹는 저로서는
메뉴선택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색이나 플레이팅이 귀여워 좋아요.

게다가 시금치인가 해서 먹은 초록잎은
미나리 맛이 납니다! +_+
메뉴판을 확인하니 재료 중에 ‘apio chino’,
중국샐러리가 들어가있다고 나오네요.
minari’ 로 바꿔주고 싶지만 ㅎㅎㅎ
이거 우리나라에도 있어!
룸메이트에게 말해줍니다.
그런데 먹자마자 허겁지겁 물을 마시네요.
쓰고 맛없대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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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로 먹은 알로알로(Halo Halo).
고구마, 녹차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과
백향과(Passion fruit), 리치, 오렌지, 자몽 등이
한 데 섞여 나왔어요. 열대지방의 맛이 납니다 :D
가격은 한화 약 9천원(125페소).
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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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포스팅을 쓴 계기는

다름 아닌 이 오픈주방 때문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정성껏 손질해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식재료들.
오픈하기 전에 몇 시간동안 다듬은 것이지요.
위 사진처럼 적양파를 다지려면 품이 많이 듭니다.
물론 저 재료들을 냉장보관하지 못한다면
용기 아래에 얼음통(Ice Bath)을 깔아야 하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이 정도면 선방입니다.

제가 아르헨티나에 온 이유는 2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요리’였어요.
아르헨티나는 요식업이 발달한 나라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사먹을 게 없어 고생하고 있지만

남미에서 일해보고 싶었어요.

뉴욕에서 일할 때 라티노친구들 덕에
주방 분위기가 흥겨웠던 기억도 있고,
요식업 부흥에 걸음마를 뗀 이 곳에서 일하면
서로서로 배울 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일할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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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오이김치(오이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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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신분이기도 하고
스페인어가 서툴기도 하지만
이건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고요,

제 손이 버티지 못하게 되었거든요.

물에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ㅎㅎ
사실 파리에서 일할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주방에 들어가는게 겁이났거든요.

한국에서 휴식기간을 갖고 상태도 나아져서
겸사겸사 큰 마음 먹고 아르헨티나로 오긴 왔는데
이 곳 물 상태가 좋지 않은지 다시 악화되어서
졸지에 집에서 뒹굴뒹굴, 스페인어 공부,
그리고 스팀잇을 하게 되었네요 :D
한국에 바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비행기표 왕복 끊어놓은 것도 있고^^)

그래서 부러웠어요.

애써 잊고 있었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서비스를 위해 손질해놓은 재료를 보면서,
나도 일하고 싶다.
나 잘할 수 있는데..
생각이 들고 말았습니다 :D
사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고 먹었네요 ㅎㅎㅎ

그래서 더욱 더,

스팀잇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는 기회도 되고
그 경험들을 가치있게 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요렇게 밥 값은 하고 살 수 있고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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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주방@ Gramercy Tavern in NY


별 볼일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인데..
제 글을 찾아주신 소중한 분들께
쬐끔 용기내어 요로코롬 풀어보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스팀잇 한 지 한달이 되었네요.
그리고 오늘 블로그 들어오니 보이는 200 followers!
다시 한 번, 만나서 반갑습니다 :D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마워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spring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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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jungs 님 힘내세요!!! 화이팅이요!!!!!!!!!!!!!

너무 슬픕니다. 능력도 열정도 아닌 이유로...

@kmlee 님..^^ 사실 마지막 몇 문단은 눈이 그렁그렁한 채 썼는데.. 그걸 알아보셨군요. 설암에 걸려 미각을 잃을 뻔 하고도 여지껏 세계 최고에 서있는 셰프도 있는걸요. 제 능력과 열정이 더 강했다면 저도 극복하지 않았을까요. 그저 그렇게 마음편히 생각하고 있답니다. 제 마음을 읽어주어서 감사해요.

제목의 의미를 추측하며 읽다 마지막에야 알게되었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포스팅 잘보고 갑니당~

@dreamyacorn 님, 방문과 댓글 감사합니다~^^

스티미언에 남미 계신 분들이 좀 있네요. 낯설고 먼 곳에서의 생활이 부러우면서 걱정도 됩니다. 흥겹게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저도 고수는 못먹어서 빼고 먹어요ㅠ ㅎㅎㅎ

@coldbeec 님 :-) 남미에 계신분이 종종 계신가보군요? 저는 아직 만나질 못했는데.. 가까이 계신 분이면 남미 스팀잇 밋업이라도!? 저도 고수를 처음 맛봤을 때는 낯설어 인상을 찌푸렸는데 언제부턴가 남의 것도 뺏어먹고 있더랍니다! ㅎㅎㅎ

잘 봤습니다. 스팀잇도 하시는데 잘 드세요. 팟타이는 제가 점심에 즐겨 먹는 메뉴중 하나인데요. 물론 비교할수는 없지만 재료도 좋은것일테고 분위기도 좋고... 어쨌든 제가 점심에 먹는 팟타이는 50바트(약 1,500원) 입니다.^^

@gaeteul 님, 안그래도 현지에 계시는 개털^^님 생각이 났습니다. 언제 한 번 팟타이 특집 포스팅 올려주시지요 ㅜㅜ 저는 태국음식을 참 좋아하는데 타국에서 2만원 넘는 케찹맛 팟타이를 먹고 있노라니 참...한숨이 납니다 ㅎㅎㅎ 저도 태국 50바트 팟타이를 점심에 즐겨먹고 싶습니다!! ㅎㅎ

@springfield 님! 제 생각이 났다는 말씀에 감동 했습니다. 태국 오시면 태국 요리 꼭 사드리겠습니다. 똠 얌꿍이랑 해서... 푸짐하게... 제가 태국요리를 한국에서도 비싼 값으로 사 먹어 봤는데요. 역시 현지에서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그럼 잘 드시고 스팀잇도 열심히 하세요.

그럼요 어딜가든 현지음식 맛+가격만 할까요 ㅠㅠ 아참! 방콕에 태국친구가 하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개털님이 거기라도 한번 다녀와주시면 ㅎㅎㅎ

네. 알려 주세요. 제가 인증하고 오겠습니다.^^

한류가 전세계로 퍼졌네요 ^^

유니님 :-) 사실 필리핀, 태국 등에 밀려 한국 디쉬는 없었지만 오이김치본 것만으로도 반가웠어요..^^ 사실 남미를 강타한 한류는 방탄소년단이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이지요 ㅎㅎ

스달로 맛난 식사에 디저트까지 최고 입니다. ^^
다른 좋은 직업이스프링님을기다릴것만 같아요 ~
앞으로 더더더 행복한 나날들만 펼쳐지길 바랍니다. ^^

러브흠님 :-) 스달을 직접 쓴 건 아니지만 기분은 좀 나더라구요! 좋은 말씀 감사해요. 러브흠님의 댓글에선 늘 밝은 기운과 따뜻한 진심이 느껴져서 더 큰 응원이 되는 거 있죠. 러브흠님의 2018년, 그 후에도 계~~속 더더더 행복한 나날들이 펼쳐지길..^^

멋집니다. 저도 꼭 먹어보고 싶네요. 팔로우 합니다. ^.^;;

@yhoh 님 안녕하세요 :-) 같은 가격이면 한국에서 파는 음식이 좀 더 맛난것 같아요. 방문과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팔로우 할게요~~^^

키야 태국음식, 저도 너무 그립습니다ㅠ,ㅠ
잘봤습니다
항상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고
걱정근심없이 지내시길 바랄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스팀잇+스프링필드의 영양제 브양님~~^^ 브양님이 아시는 그맛이 아니었을 거예요 ㅜㅜ 진짜 팟타이 먹고 싶어욧!! ㅋㅋㅋ지금쯤 주팔님과 뮌헨여행 한창하고 계시겠죠? 브양님이야말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ㅎㅎㅎ 스팀잇과 일상과의 발란스 ㅜㅜ 잘 지켜나가시길 바래요! 화이팅!!!

저는 먹기위해 살고 먹기위해 돈을벌고 먹기위해 남미로갑니다

@rhkddl6647 님, 남미 오시기로 하신건가요? ㅎㅎㅎ 저도 먹는 것에 목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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