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책추천해드립니다] 17탄 "세계도서관 기행" (특정 도서관 홍보주의)

in #kr6 years ago (edited)

아침 도서관 문을 연다. 평일에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도서관. @bulsik 편집부의 여러 공간 중 한 공간이 우리 도서관이다. 매주 일요일 정기모임일이면 몇 명이 책을 대여해 가고, 또 누군가는 기증하기도 하지만, 평일엔 굳이 책을 읽거나 빌리기 위해 오지 않는다. 출근해서 일을 해야하고, 또 따로 시간을 내서 이용할 만큼의 책도 없고, 잠깐 읽어보고 가려해도 마땅히 앉아서 읽을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교통이 그렇게 편한 위치도 아니고. 읽어야 할 이유는 하나지만, 못읽을 이유가 사실 너무 많다. 그래도 이 공간이 유지되고 있다는 자체가 흐뭇하다.

해외에서 한국글자로 된 활자매체를 읽기 어렵다는 이유로,

“책기증 받아서 작은 도서관 한 번 만들어 보죠”

말 한마디로 시작한 책들이 오직 기증만으로 모아진 장서가 3년만에 1,300권이다. 이제 제법 책꽂이 티가 난다.

"주변을 지나다 생각나면 들러서 불켜고, 에어콘 켜고, 읽다가 가셔도 좋고, 혹은 기록 후에 빌려가세요."

그렇게 홍보를 해도 그렇게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두어 달 전부터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아침이면 출근해서 불을 켜고 문을 열고, 10분만 원하는 책을 읽고 오자. 그리고 저녁엔 다시 10분만 읽고 문을 닫고 오자.”

그리고 8시엔 불을 켜고, 핸드폰으로 10분 시간을 맞추고, 혼자서 책을 읽고, 또 저녁 10시엔 핸드폰으로 10분 시간을 맞추고, 혼자서 책을 읽고 불을 끄고 문을 닫는다. 이제 약 두어 달. 가끔 늦잠을 자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너무 늦게 들러서 오후 늦게 불을 켜거나, 밤새 불을 켜둔 날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제 채 발견하지 못했거나 혹은 라벨링을 끝낸 책인데도 기억이 안나는 책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10분이 너무 짧아 15분으로 늘렸다가, 이제 20분으로 늘렸다. 아침저녁 합치면 매일 40분간은 강제독서다.

나는 학생이란 직업치고는 책을 참 잘 안 읽는 편이다. 불행 중 다행인건 책을 보는 건 좋아한다. 책에 얽힌 이야기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책에 관한 뒷담화, 일종의 가쉽거리를 좋아한다. 그 덕에 책을 잘 안읽으면서도 책과 나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독서광이 아니라 도서관장이다. 아무도 내게 임명장 하나도 주지 않았고, 내 소유의 책도 없고, 보수도 없는. 나혼자 다 해먹는.



오늘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은 [세계도서관기행]이다. 국립도서관장을 지냈던 저자 유종필 선생의 책이다. 오늘 서문에서 그의 아내도 사서출신이란 걸 알게되었다. (앗싸. 내가 좋아하는 가쉽거리를 또하나 발견했다!) 이 저자도 역시 나와 취미가 비슷한가 보다. 직접 도서관을 다니며 조사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하며 쓴 기록이라 현장감이 좋다.

유럽의 도서관들을 보면서 다만 좀 아쉬운 것은 역사의 길이와 문화의 깊이는 아시아가 훨씬 장구한데, 우리는 대개 오래된 것들은 ‘문화재’란 이름으로 박제해 버리는 반면, 유럽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그걸 실생활에서 그대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도서관도 나이든 냄새가 풍기는 도서관들이 중후함으로 드러나 있다. 우리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나이가 들면 함께 숨쉬는 게 아니라 구석으로 뒷전으로 감추어져 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처럼 늙은 냄새가 나는 따뜻한, 그런 오래되고 중후한 한국의 도서관들이 좀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은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냥 여행기 혹은 기행문 만큼이나 쉽고 단순한 책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뒷이야기를 꼭 들려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은 물론 러시아와 미국의 여러 도서관들,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북한의 국립도서관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도서관의 실태에 대해서 알기에 좋은 자료이다. 한국편에 소개되어 있는 도서관들은 약간 특화도서관들이라 대상이 좀 좁은 편이지만, 아무튼 도서관 행정을 아는 저자의 기록이라 도서관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실용적일 수 있다. 단편적이지만 몇몇 우리에게 미지의 도서관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도서관 기행을 웬만큼 하고 나니,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리더 reader가 리더leader가 된다’라는 제목의 강의는 제법 호응이 있었다. 그러나 칼럼 기고와 강연이 계속 되면서 왠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서관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고뇌를 거듭한 끝에 결국 나는 러시아에 당도했다... 북한을 포함한 11개국의 도서관 순례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 서문 중

책의 내용보다 책 자체에 집착하는 건 내 개인적인 취미기도 하지만, 가끔은 책보다 책을 담는 그릇인 도서관에 대한 관심도 분명 재미있을 것이고, 거기서 의외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에는 소크라테스도 있고 플라톤도 있다. 세종대왕도 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있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천재들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만나서 그들의 뇌 속으로 들어가 교감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다.

  • 서문 중

도서관장이책추천해드립니다 시리즈


#16 ⟪인기없는 에세이⟫
#15 ⟪꼬레아, 코리아 - 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
#14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13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12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11 ⟪송 오브 아리랑⟫
#10 ⟪대한민국은 왜? 1945-2015⟫
#09 ⟪육식의 종말⟫
#08 ⟪문명의 충돌⟫
#07 ⟪공부기술⟫
#06 ⟪르 몽드⟫
#05 ⟪이제 당신 차례요, 미스터 브라운⟫
#04 ⟪런던통신 1931-1935⟫
#03 ⟪번역의 탄생⟫
#02 ⟪그레이트 게임⟫
#01 ⟪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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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앞에 에코트리 보고 받았는데 RC때문에 보팅도 인사도 못하고 ㅎㅎ
저도 도서관 좋아해서 (특히 책 냄새!) 이 글에 인사드려요.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오는 분위기네용 rc때문에 고생많으셨습니당^^ 책냄새 좋은 냄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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