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책추천해드립니다] 12탄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개인히스토리스압주의)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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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장이책추천해드립니다] 12탄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개인히스토리스압주의)


“고급스럽다”란 표현만큼 10대의 어린 나에게 멋진 표현도 또 없었다. 아무데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그 수식을 붙이면서 나는 내 취향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급+스럽다'란 말엔 참 어폐가 있는데도 나는 어린 시절을 그 말과 함께 했었던 것 같다. 또, 내게 그 표현을 쓰도록 만든 사람은 유년시절의 내 삶의 큰 선생님 혹은 스승이기도 했다. 그 분이 내게 들려주고 가르쳐줬던 많은 것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세계를 관념적으로나마 경험했고, 전혀 몰랐던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고 유지되는지를 알아가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많이 다른 생각을 갖고 살고 있고, 또 그 분의 생각들 중에는 내가 버려야 할 것들이 어쩌면 더 많다는 걸 알게되었지만, 나는 20대가 되어서 늘 그분의 대단한 지식과 정보를 내가 약 1억 정도는 줘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고 회상하고는 했다. 사실 30대의 끝에 서 있는 나에게 그와의 좋은 기억이란 여전히 유효하기도, 또한 그가 내게 준 것들이 그정도 가치는 있을것이란 생각엔 아직도 변함이 없다.

만약 지금에 그를 만났다면 나는 그런 기억으로 그를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비싼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은 내가 10대에 그를 만났기 때문이다. 내게 뭔가를 ‘열심히’, ‘똑바로’ 해야하고, 또 어떤 것이 ‘틀리고’ 어떤 것이 ‘옳은 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사람은 너무 많아서 지겨울 지경이었을 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 때도 우리 주변에도, 우리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름’과 더 ‘좋음’으로 인도하고 가르치려는 사람은 여전히 너무 많다. 물론 스스로들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강요하는 문제야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그 어린 아이에게 그게 왜 그래야 하는지, 왜 옳고 그른지, 왜 열심히 해야하는지를 설득시켜주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 없었다. 오직 그게 맞고, 그 말을 들으면 그 뿐이었다. 지금 생각컨데, 그것은 ‘귀찮아’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10대의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줄 ‘능력이 없어서’일 수도, 혹은 본인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왜’인지에 대해서 친절하고 ‘설명’을 해주고 나를 ‘납득’시킨 사람이기 때문에 나에게 그는 인생에서 매우 가치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안타깝게도 내게 ‘고급스럽다’란 말을 알려줬다. 물론 자신도 그 말을 즐겨 썼다. 그리고 내 10대를 가득 채웠던 그 말. 고급스러운 표현, 고급스러운 사람, 고급스러운 문화…

그래서 나는 늘 좋은 것, 그리고 ‘고급’만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이외의 것들은 촌스럽고 무시해 마땅한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어왔다. 그래서 난 항상 고급스러운 것과 천박한 것을 구분하는 재미에 빠져있었고, 늘 세상과 사람, 사물을 그렇게 구분해 나가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한 때 음악의 경이로움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피아노를 한 번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우 무거운 틀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내게 어느날 그런 기회가 왔다. 나는 엉뚱하게도 피아노 학원에 가서 바이엘을 배웠다. 열흘 정도는 열심히 했는데 내 특유의 산만한 성격 때문에 그 진도가 너무 싫증이 났다. 피아노 선생님한테 이걸 끝내고 나면 무엇을 하냐고 물었더니, 체르니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체르니로 바로 들어가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그래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바이엘 2권을 시작하자 마자 나는 체르니를 시작했다. 하지만 몇 장 나가지 않아서 역시 곧 싫증이 났다. 체르니를 다 뗄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했더니 2달 정도 (20년도 넘은 이야기라 가물가물하다) 란다. 그럼 그 다음엔 뭘 하냐고 물었더니 재즈를 한단다. 그럼 재즈를 바로 하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그래도 된단다. 그래서 체르니를 몇 장 나가지 않아 나는 곧 재즈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은 참 마음도 좋았다. 덕분에 나는 3달이나 열심히(?) 피아노를 쳤지만, 이제 다시 악보를 볼 줄 모르고 피아노를 칠 줄 모르게 되었다. 그 땐 2달 만에 어니언스의 ‘편지’나 나훈아의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응? 제목이 이게 아닌데..)’, ‘감수광’같은 음악들을 피아노 재즈로 현란(?)하게 칠 수 있었는데...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는데, 나는 독실한(?) 불교도였다. 하지만 거기서 오는 불편함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아무튼 내 잦은 싫증과 선생의 관대함 덕분에 피아노를 때려치고 이번엔 음악이론을 배우겠다고 덤벼서 한 달 내내 악보만 그렸다. 화성이니 메이저 마이너 등… 학교에서 공부를 못했던 내게 매우 신비로운 세계였지만 결국 한달만에 나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 맨날 이런저런 아는체를 하며 노닥거리는데 학원에서 주어진 2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내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팝송이나 클래식같은 음악계의 가쉽거리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우리선생은 내가 뜻도 잘 모르고 뱉어놓은 트레몰로니, 엘레지니, 대위법이니 이런 단어들을 들으며 음악공부를 처음 하는데 그런 개념들을 어디서 들었는지 되묻곤 했다. 나는 거기서도 항상 ‘고급스러움’이란 표현을 즐겨썼다. 그러다 내가 ‘트롯트는 촌스럽고 팝송은 고급스럽다’는 말을 몇 차례 썼던 어느날이었다.

음악선생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반문하며 정색을 했다. 물론 내가 대답을 제대로 할리가 없었다. 선생은 내 시선을 고정시키며 ‘그건 대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그런 분류방식은 없다’라고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나는 그 때 그 선생이 진지하게 설명하던 표정과 어투를 기억하지만, 그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그날 그 조용한 설명에 빠져들었고, 오랜 생각이 가루처럼 흩어져 버렸던 일종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매우 생생하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가벼운 농담이나 재미삼아가 아니라면, 진지하게 ‘고급스럽다’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천박한'표현인지 감을 아니까.


슬라보예 지젝 외, 이진홍 옮김 ⟪나쁜장르의 B급 문화⟫,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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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류’에 해당하는 말 ‘B급’문화.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써 놓은 글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여전히 ‘고급’에 빠져있음을 알게되었다. 왜 ‘찌라시’란 ‘천박한’말이 예전보다 더 많이 쓰이고, 촌스러운 ‘복고풍’이 반복되어 유행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입에도 담기 싫어하는 ’가쉽’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지, 왜 ‘욕’이 정감과 재미를 주는지, 모든 표현이란 결국 맥락에서 벗어나서도 홀로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없는지 사람들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지.또한 정치적으로 금서니 금기니 하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 스스로 검열을 하도록 시키는 교육과 상관있는지…

많은 내 고민들이 이 책을 통해 모두 연결되어있고, 그 실타래들이 서로 엉켜 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원래 제목은 나쁜 장르의 문화(Culture des Mauvais Genres)이지만, 책을 번역하면서 ‘B급’까지 추가되었다. 여기에는 한국의 작가들이 쓴 글도 포함되어서 출판된 편역이다. 아마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나왔던 기사들의 묶음인 것 같다. 제대로 된 뉴스를 얻기 위해 잘 보지도 않던 신문을 찾게 되었고, 거금 10만원 (내겐 매우 큰 돈이다. 부끄럽지만, 전공서적도 돈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는 내가...) 을 지불하고 1년치 신문을 주문했고, 그 때 선물로 따라왔던 책으로 책 디자인이 너무 별로다 (나는 정말 디자인을 중시한다. ‘고급'스럽게 ㅎㅎ) 하지만 분명 이 책은 그것과 상관없이 유익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단, 르몽드에서 나오는 책들은 좀 난해하다. 사회학 중심의 기사들인데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철학자들이라 그런지, 물론 그것이 프랑스어-한글 번역의 문제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용과 표현자체가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워낙 말로 잘난척 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쓴 글'이니까. (ㅎㅎ) 어쨋든,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 패러다임의 전환. 그것을 바꾸고 깨지는 경험을 해 보기 위해 3류 혹은 B급문화, 게다가 나쁜장르라니, 이만큼 좋은 충격이 또 있을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서관장이책추천해드립니다'의 수수였습니다.


도서관장이책추천해드립니다 시리즈

11탄 ⟪송 오브 아리랑⟫
10탄 ⟪대한민국은 왜? 1945-2015⟫
09탄 ⟪육식의 종말⟫
08탄 ⟪문명의 충돌⟫
07탄 ⟪공부기술⟫
06탄 ⟪르 몽드⟫
05탄 ⟪이제 당신 차례요, 미스터 브라운⟫
04탄 ⟪런던통신 1931-1935⟫
03탄 ⟪번역의 탄생⟫
02탄 ⟪그레이트 게임⟫
01탄 ⟪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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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배우고 싶은게 피아노인데....
바로 재즈 배우고 싶습니다.
아~공감갑니다.

  ·  2 years ago (edited)

@odongdang 님 고맙습니다^^ 이제 학원비도 많이 올랐을 것 같습니당^^

저는 B급장르의 영화를 매우 좋아합니다 ㅋㅋ
우아함과 고상함은 없지만 천박하면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그런 장르의 영화요!!
그래서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하죠 ㅎㅎ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넵 요샌 고상함이란 별로 의미없는 것 같죠? ㅋㅋ 티란티노 감독 영화는 본게 하나도 없네용… 들어본 영화는 몇 개 있는 것 같아용

B급, A급은 누가 정한 걸까요. 전 그저 재미있으면 좋고, 재미없고 지루하면 싫고, 그럽니다. ^^;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은 그게 본질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