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책추천해드립니다] 4탄 "런던통신 1931-1935"

in book •  2 years ago  (edited)

역자나 편집자의 서문을 쓴 사람의 글을 읽어보면 작가의 성향이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말을 우리 개개인이 직접 보는 것 보다는 약간은 프리즘을 대고 보는 것이니 왜곡은 있을 수 있지만, 또한 그것은 동시에 객관적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토론토 대학의 슬레이터의 서문을 통해 이 책의 소개를 시작하고자 한다. 왜 책 소개에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은 서문작가의 이야기를 갑자기 빌려오냐면, 이 사람의 서문 중 한 대목에 유달리 꽂혔기 때문이다.

“… 적대적인 독자를 위트로 사로잡음으로써 그렇지 않았다면 묵살했을 논점에 대해 호의적인 관심을 이끌어낸다. … 독자들을 실망시켜본 적이 없는 영어 구사력을 눈부시게 발휘한다. …”

‘적대적인 독자’라는 말도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확 다가오는 표현이지만, 포쉬(posh) 잉글리쉬, 즉 그들 스스로 주장하는 최고 상류층의 옥스포드 영어를 태생적으로 쓰는 사람에게 ’영어 구사력’이 좋다는 칭찬은 무슨말일까.

대개 어떤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과 수식을 중시하는 감성적인 글은 꼭 작가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성격자체가 약간은 다르다. 때문에 이 두 가지는 온전히 같이 가기 어렵다. 물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이 두 가지 다른 성격의 글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러셀은 동시에 이 두 가지 방식을 자유롭게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히려 지식인, 정보전달자로서의 러셀이란 사람이 더 유명하지만, 사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오히려 그의 글쓰기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추천사를 쓴 슬레이터는 아마도 이 부분에 집중한 것 같다. 물론 서문을 쓴 작자가 말한 ’영어’란 러셀이 말/글을 매우 잘하고 잘 쓴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러셀의 기치와 위트는 누가봐도 감탄할 만 하다. 이 책에서 슬레이터가 감탄해서 인용한 러셀의 “매우 경솔한 인간 분류법”란 에세이의 한 대화를 재인용 해 본다.

“‘오 러셀 선생님, 책을 그렇게나 좋아하신다면서요’ “

(물론 누가 봐도 비꼬는 질문이다. 이렇게 대답한다.)

“‘저기요. 저는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땐 절대 책을 읽지 않습니다.’”


버트란트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송은경 번역,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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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사진이 없어서… 일단 모 인터넷 서점에서 올린 사진을 올리고, 집에가서 우리 도서관에 있는 책 사진으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이 책을 편집했던 헤리루자Harry Ruja는 이 책의 엄청난 에세이들은 러셀이 거의 한 주에 하나씩 써 댄 에세이들이며 잡지에 기고되었지만, 그의 능력이나 글의 가치에 비해 책으로 출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편집동기를 소개한다.

“그 중 몇 편은 몇몇 영국잡지에 다시 실렸고, 한 편은 독일 잡지에 번역본으로 소개됐다. 그게 전부였다! 그보다 훨씬 많은 에세이들이 철 지난 신문의 운명을 맞았다. 세상에서 잊혀버린 것이다. 잊혀서는 안 될 것들이 말이다.”

이 책은 1975년에 “Mortals and Others: Bertrand Russell’s American Essays 1931-1935”란 이름으로 헤리루자에 의해 출판되었다. 제목그대로 미국의 신문들에 기고한 4년간의 에세이들이다. 이 신문들이 허스트 그룹계열이라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에세이들이 갖는 주제의 방대함과 그 각각의 주제를 풀어낸 철학적이면서 사회적인 탁견이야말로 100여년이 가까이 지났지만, 거의 정말 거의 유효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지식인을 꽂으라면 나는 러셀을 꼽는다. 러셀의 사진을 보면 러셀은 참 못생겼다. 약간은 못된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헝클어진 하얀 머리와 작은 눈, 그러나 그의 글을 읽고나서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참 매력적으로 생겼음을 알게된다. 왜냐면, 전문적이면서도 다양하 인문지식들을 다루고, 또한 반전, 여성, 인권, 교육,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신뢰할 만 한 해석을 우리에게 주었으며, 자신의 지식을 고집하지 않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태도를 바꾸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어쩌면 지나간 수많은 지식인들 중 그냥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엔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생각 때문에 나는 러셀이란 사람자체에 큰 호감을 느낀다.

아마, 이 에세이들을 읽어보게 되면 그게 누구라도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다. 다만, 보수적인 지식인들 중에는 러셀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감안하기를 바란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추천해드리는 도서관장 수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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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감사합니다! 러셀이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썼던 분이 맞나요? 그 책도 인상깊게 읽었는데 이 책도 시간나면 한번 봐야겠습니다.

넵! 맞습니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을 팬으로 만드는 사람.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의 저자,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 맞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