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photo] 어느 가을날 밤

in #kr6 years ago

Sep. 2018, Seoul, Nexus 5x


선선한 가을 밤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여름은 가고 어느새 서늘함이 공기를 메우기 시작했다. 피부에 닿는 차가움은 아찔하다. 통각의 영역에선 뜨거움과 차가움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 둘 모두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으로서는 신뢰할 만하다.

내가 무언가에 닿는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무언가가 나에 닿는다는 것.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시각이나 청각에 비하면 조금 더 공평한 느낌이 든다. 바람이 불면 좋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좋다. 팔과 다리를 힘껏 휘저으면 된다. 내가 움직이든 다른 무언가가 움직이든 괜찮다. 꽤 많은 것들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새기게 되었다.


사진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좋아한다. 청명함과 반짝임은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요소들이다. 사진이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차 있지 않다면 여백을 통해 감정을 바라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사진에서 사람은 제3자 - 혹은 사물의 지위에 놓인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위치를 격하시킨다거나 낮추어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은 풍경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장면을 묘사할 때 도움이 되는 오브제로서 쓰인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는가. 우리의 시선은 어떤 사람들을 보고 있는가.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적절한 움직임에, 적절한 blur가 되어 다행이다. - 사진에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다.)


기술이나 표현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문적인 사진가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아니므로, 일상의 궤적을 기록하면 그만인 것이다. 카메라를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더 비범할 것도 덜 비범할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조명에 날 것의 순간이면 충분하다. 모든 취미가 그렇듯이, 사진도 자기 충족적 활동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록들이 삶의 표지가 되고 기억의 끌개가 된다면 만족한다.

물론 누구나 바라보는 것은 다를 것이다.


바쁠 때면, 생산에 대한 욕구는 이미 채워져서 그런지 글을 쓰고자하는 기분이 잘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발견, 탐색과 같은 - 직조된 경계 너머의 공간을 더듬는 작업을 주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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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컬러감이 실사 애니메이션같네요. 밤이지만 예쁜 생동감이 넘치네요 ^^

밤에 영롱하게 빛나는 여러 빛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북적대는 밤이었습니다. :)

사진도 글도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사진만 올려놓고 싶습니다만 너무 성의(?) 없어 보일까봐 글을 올려놓는 측면이 있기는 한데, 다행입니다.

님 글을 읽으며 공감이 많이 되는데요.
막상 내 글을 쓰려면 그런 생각들이 왜 안나는걸까요~
쓰진 말고 그저 읽으러 다니라는 운명인가 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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