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essay] 촉

in #kr6 years ago (edited)


최근 팀 빌딩(team building)을 할 기회가 있었다. 어떤 프로그램에서의 과정으로서 진행되었고, 스타트업을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아직 학생 신분인 사람들도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여럿 있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전체 집단 하에서 몇 개의 팀을 꾸리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에서는 혼자 하기를 선호하는 편이라 관심을 크게 두지는 않았지만서도 의무적으로 몇 명 이상과 몇 명 이하의 팀을 구성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피칭을 관심있게 들어야만 했다.

이런 식의 프로그램에서 어지간하면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 1을 가졌음에도 10을 가졌다거나 심지어 100을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언술과 실제 자신이 행동하거나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낼 때 괴리가 발생하는 경우도 꽤 있으며 나는 신뢰가 쌓이지 않은 멤버와는 굳이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짧은 순간의 피칭 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며 첫인상과 그 후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기대치가 높은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

팀 빌딩이 프로그램 상에서 하나의 요구 조건인 만큼, 결국 나는 제일 마음이 갔었던 하나의 팀을 택했고 이 팀의 리더는 이미 기업 운영의 경험을 하나 가지고 있었으며 긍정적인 가치만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 물적 지원들은 알아서 따라온다고 했다. 그리고 제시한 아이템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서의 숙제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합류하기로 했다. 첫 인상은 꽤 괜찮은 편이었기에 이 팀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사회적 가치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운영한다. 심지어 그 경험을 나누어준다니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첫번째와 두번째 미팅을 거치면서 상당히 싸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첫인상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 편이다. 항상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기에 상대방의 소통 방식이나 실제 진행에서의 태도들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이에 따라 사람이 가진 캐릭터를 업데이트 하곤 한다. 이 사람은 재미있게도 명목상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내재적인 성향 상)이와 맞지 않는 캐릭터라는 판단이 들었다. 운이 좋게도 좋은 아이템을 발견했고 이를 사회적 가치와 묶어서 사업 상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할 뿐. (다행히 진심인지 포장인지는 조금만 겪어보면 촉이 온다.) 게다가 평등한 위치로 모인 팀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구적으로 팀원들을 사용하기'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내 경험과 이에 따른 성장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간 내내 (혹은 그 이후라도) 계속 엮이면 오히려 삶이 피곤해지고 말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촉이 들 때에는 보트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내렸다. (가끔은 관계에 대한 냉정함이 도움이 된다.)

나는 상대방의 번지르르한 말보다, 상대방이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태도와 말을 본다. 첫 인상이 좋더라도 이를 배반하는 촉이 들 때가 있다. 이 촉을 절대 가벼이 여겨선 안된다. 본인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이란 본심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기도 참 빠듯하고 시간이 모자란 세계에서, 굳이 어거지로 스스로를 속박하며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받을 이유가 없다. 우리의 자원은 한정적이고 소중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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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 그 사람의 근본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피할수 있으면 피하라. 훈련된? 촉과 경험이 필요한 내공이군요.

혈기 왕성한 시절에는 피할 수 있더라도 뭔가 바꾸고자 했던 것 같은데, 사람의 근본은 사실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된 때 부터는 그냥 피하고 있습니다. 피할 수 있는 상황인지 - 만약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피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곤 합니다.

피할수 있으면 피해야 겠지만 피할수 없는 경우가 인생의 태반이지요.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이 힘들지만 지향해야할 태도인것도 같습니다. 선택과 당위성도 자기가 감당해야할 복이겠지요.

말씀주신대로 피하기 어려운 상황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마음이 좁아서인지 즐기기까지의 단계에 도달하긴 참 어렵더군요.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라

동감입니다. 어거지 ... 별루에요. 특히, 사람 관계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

제가 그래서 도망(?)을 잘 칩니다. (...) 노력이 블랙홀에 들어가는 것 마냥 싸한 느낌이 들면, 무조건 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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