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여기 찬란한 글자의 춤사위가 언젠가 영원한 잠에 빠져들더라도

in #kr7 years ago (edited)


장례식장을 방문할 때마다 묘한 상념에 빠진다. 사람의 일생(一生)이라는 것은 얼마나 크고도 작은가. 영정 속의 사진은 과연 삶에 있어서 어떠한 순간을 담고 있었던 걸까. 남겨진 사람들에게 하나의 세계가 다시 무너진다는 것은, 떠난 사람들에게 -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흔적과 기억만으로 존재성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은, 삶의 속성이 결국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죽음을 떠나서는 정의 되지 않으며, 언젠가 우리는 이러한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을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해줄 것이다.

사진첩을 뒤적이다보면, 이미 이 살아있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을 (간접적으로) 마주하곤 한다. 아. 우리는 얼마나 죽음과 괴리되어 있는가. TV나 영화, 뉴스에서 보는 죽음은 사실 우리와 괴리되어 있는 죽음의 이미지에 불과하며, 우리가 죽은 존재를 실제로 마주하는 경우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매우 드물다. 우리는 죽음을 애써 포장하곤 하지만, 사실 죽음이라는 것은 정말 단지 죽음일 뿐이며, 또한 하나의 세계를 무화(無化)시켜버릴 거대한 죽음이기에, 감당할 수 없는 세계의 요소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애초에 지워버리는 것이 좋았다. 죽음은 도처에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을 삶의 단계에서의 종착역으로만 보고 있을 뿐, 수많은 죽음들이 우리의 삶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수한 흔적과 기억과 추억을 남기려 노력하면서도, 이러한 노력이 결국 나와 내 주위 사람들과, 내 주위 사람들의 주위 사람들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때가 되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질 것임을 안다.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머리로는 안다. 차라리 잊어버렸다고 잃어버렸다고 깨닫는 것은 좋았던 것이었다. 무엇을 잊거나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세상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냉정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는 애초에 세계에서 연유(緣由)가 없었기에 우리가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 또한 연유(緣由)가 있을 턱이 없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가 존재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벤야민은 자신의 주 저작 중 하나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복제를 통한 아우라의 붕괴가 오히려 예술작품을 해방시켜 진정한 가치를 확립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나는 삶의 이야기가 복제를 통해 전시되고 남겨진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제한을 벗어난 불멸의 삶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렵겠지만, 우리의 삶의 기록이 미발견된 세계로 잠자게 될 먼 미래에는,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잃어버렸고 잊어버렸던 세계가 다시 읽힐 수 있는 세계로 드러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희망이 정말로 희망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인지는 언제나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삶의 흔적을 부단히 남겨놓고자 함은, 언젠가는 무너져버릴 세계의 붕괴를 조금이라도 지연시켜보고자 하는 인간으로서, 너무도 인간적인 몸부림일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적는다.

여기 찬란한 글자의 춤사위가 언젠가 영원한 잠에 빠져들더라도
내가 우리가
지금, 여기 어떠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나누고자 했던 사실은 변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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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듣고 있던 음악 때문일까요. 글을 읽는데 눈물이 날 것 같네요...애처롭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우리는 애처롭다는 감정을 가지고 드러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복된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러한 감정들을 느끼고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wonderina 님께 고마운 부분 중에 하나가, wonderina 님이 쓰신 글에서 @qrwerq 님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 좋은 분 옆에는 좋은 분이 계시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적용되네요 ㅎㅎ

어머 셀레스텔님 무슨 말씀을...! qr님이 워낙 좋은 글들을 쓰시니 제가 알려드리지 않았더라도 언제라도 발견하셨을거여요! ㅎㅎㅎ 그치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진리를 적용해서 셀레스텔님도 좋은 분 우리 모두 좋은 사람 막 이래요 ㅎㅎㅎㅎㅎ

👨 같이 남겨봅니다 ^^

오늘도 열심히 남겨봅니다.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요-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릴 것... 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네요~

어떻게 보면 참 무정한 말이지요. 우리에게 너무나 무정한 세계입니다. 애초에 세계가 그렇다는 것을 아는데,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서러워지곤 합니다.

하나의 생은 정말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고...
죽음은 우리와 같이 있는것 같기도 하고 멀리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단, 변하지 않는 진리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리. 좋네요.
까르페디엠!!

우리들은 흔히 죽음을 잊어버리고 (혹은 잃어버리고) 살지만, 항상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곤 합니다. 살면 살수록, 과거의 일들은 압축되어 지나가고, 매순간 짧게만 느껴져 아쉬운 것 같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사실은 사실로서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현재를 사는 것 이외에 우리가 어떠한 방법을 가질 수 있을까요. :)

같은 '문송'이라도,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 어떻게 다른지, 님 글을 읽어면서 확실히 알았슴다.

제가 종종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다보니, 제가 글을 적게 되면, 어떠한 방향이든 '과학'의 딱지가 약간은 붙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인문과 사회의 구분이, 항상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적 존재의 인간과, 집단적 존재의 인간의 차이로 바라보곤 합니다. 저 스스로의 삶도 다루기 어려워서, 타인을 포함한 여러 삶들은 제가 종종 다루기 버겁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의 책 중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이라는 책에 보면, 주인공은 죽은 사람들이 죽기전애 부탁했던 ‘지우고 싶은 것들’을 지워주는 일을 하는 사립탐정으로 나옵니다. 죽음에 대한 상념? 을 읽다가 마지막 문장이 눈이 들어오네요. 죽으면 이 모든 말들과 글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ㅜ 그 책을 읽으며 제가 생각한 것들은 그런거였어요. 지금 말하고 지금 쓰고 지금 행동하고... 지금 하라던 한 시인의 시도 떠오르구요... 상념이 저에게 전달되었나봅니다ㅜ 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죽으면, 아마도 우리에겐 (내세가 있지 않는 한)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단순한 이유지만, 그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책을 보지는 않았는데, 한번 살펴보고 감상문을 써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명복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내세가 존재하기를, 가신 곳에서 너무 걱정마시고 편안하시기를, 그리고 남아계신 분들께서 마음껏 슬퍼하시고 조금은 나아지시기를, 조용히 빌고 돌아왔습니다.

@qrwerq님 안녕하세요. 겨울이 입니다. @wonderina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런 몽실몽실하고 귀여운 발을 봤나! )

반갑습니다.

우리는 사실 매순간 살고 죽고 찰나생 찰나멸하지요. 티벳수행인은 매일 죽음을 명상한다지요. 바르도라고 표현하지요. 이생과 저생사이, 숨쉼사이, 잠과 깸 사이 등 바르도 아닌게 없지요. 우리가 확인하지 못할뿐. 삶은 어쩌면 이것을 확인시키기위한 반복되는 시뮬레이션인가 봅니다. 기록? 좋지요. 영적성장을 위해서요. 마음속에 흔적을 남겨놓지요. 그게 까르마인거 같습니다. 새로움(창조)을 위한...
ps. 동지를 만난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올려두신 글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티벳불교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종종 삶에 있어서 전생과 후생을 믿고 싶은 편입니다. 믿는다와 믿지 않는다로 표현하기에는 좀 더 어중간한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 것이 지구에 다시 태어날지, 그리고 과거가 아닌 미래에 태어날지 확신이 없습니다. (누군들 알 수 있을까요) 기록이 결국 드러나고 읽히기 위한 숙명을 지녔다면, 어떠한 매체이든 어떠한 시공간이든 뿌려놓으리- 라는 입장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어떠한 기록은 좀 더 내밀하고, 또 어떠한 기록은 좀 더 드러나겠지만요.

저도 반갑습니다. 종종 들르겠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에 언젠가부터 마주해서 생각하지 않으려는 습관이 생긴것 같아요. 오히려 털어버리려고 음악을 듣거나 예능을 보거나 하는식으로 생각을 돌리는거죠. 그럴때면 지금 시간이 소중하고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곳에 남겨진 글도 지금의 생각과 소통의 흔적이 캡쳐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에게 재발견되는 것 뿐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그 자체로요 ㅎㅎ

우리의 뇌는 상당히 신기해서, 사실 대부분의 기억들은 보존하고 있지만, 그 기억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끌개(attraction / triggering 역할을 하는 단서)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기 때문에 결국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심리학 저널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캡쳐는 사실 제가 기억하고자 하는, 혹은 각자가 기억하고자 하는 경험과 기억을 머물게 하고 싶은 소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잠들기 전 시간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이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꿈을 꾸지 않는 잠이 결국 죽음의 변용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오히려 깨어있을 때 들어오는 자극들이, 우리를 죽음에서 멀리 갈라놓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것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순간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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