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diary] 예전과 오늘 일기 1 - 때와 선택

in #kr6 years ago (edited)


예전 일기 하나를 꺼내어본다.


201X. 8.

H에서의 2박은 좋았다. 밤에도 눈을 어지럽게 하는 행렬들과 불빛들이 좋았다. 밤의 파도. 파도가 넘실거려 나를 밀어버리는 그 느낌이 좋았다. 살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차갑고 까끌거리는 감각. 만약 사람이 감각의 노예여도, 그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감각에 국한되지 않고 더 깊고 넓은 사유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만 O세의 여행이라는 것은, 여행을 시작할 때는 잠깐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으나, 여행 중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기존에 짜놓았던 여행 일정은 많이 버렸다. 기왕 간 김에 여러가지 많은 것들을 다 보자는 것은 욕심이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장소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아니고 시간을 어떻게 지나느냐이니까, 그 시간이 삶에 의미가 된다면 충분했다. W의 이야기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더라구요"를 들으면서, 프로에서 잠시 멀어지고 싶어했던 내 삶을 되돌아보았다. 즐기면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가 아니면 안될때가 있다. 20대 초-중반의 학생 때에는 프로가 아니라도 괜찮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 때에도 여전히 프로가 아니고 싶어한다면, 그건 도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현실 도피. 그 것은 멀리 있지 않다.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없다면 성장하지 못한다. 무작정 성장하는 것도 안되지만, 성장해야할 때에 성장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도 안될 일이다. 내가 사람이고, 사회의 구성원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자극, 협조, 관계들을 바탕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 때"라는 것은 중요하다. 이제 성장할 때인 것이다.

평일의 한낮은 여유가 있었다. 휴가를 낸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유통기한이 있는" 자유. 매 순간이 일탈이라면 그 것이 일상이 될 것이고, 일탈하지 않는 순간이 오히려 일탈이 될 터이다. 이 때 모든 변화는 상대적이고, 변화의 진폭을 내가 수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삶의 안정성과 변동성의 균형을 찾게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오늘의 글.


나는 대체로 가능성을 좁히는 선택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능성은 말그대로 어떠한 것을 하거나 어떠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을 의미하는 것 뿐임에도 불구하고 가능 자체가 가지는 힘에 주목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가능의 갯수를 좁히는 선택보다는 가능의 갯수를 넓히는 선택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제너럴리스트는 사실 모든 것을 어중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면서 이러한 분야의 갯수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것은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항상 그 꿈을 가지고 살지만, 생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도 알고 "어떤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최근 W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대체 K를 하고 싶은 이유가 무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일종의 사명감이나 보람을 가지고 활동을 하기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파악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K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W는 만약 K에서 더이상 그러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찾지 못하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나는 K를 K'으로, 다시 K''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K에 L을 더할 것이라고, 심지어 L'이나 L''도 생각해볼 것이라고 대답했다. 세계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결론내리지 못하는 한,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로부터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것인지, 나는 여전히 가능성을 넓히는 선택지를 고집하고 있다. 이런 선택지를 택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길이 조형되기 위해서는 나의 선택 뿐만 아니라 세계의 선택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길을 좁히려 한다면 세계가 넓히려할 것이고, 내가 길을 확장시키려 한다면 세계가 그 길을 한정시킬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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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저는 저 알파벳들의 실체가 궁금해요. 여행 끝자락이라 그런지 예전 일기가 더 와닿네요. 프로라는 건 무엇일까요. 근데 프로의 세계도 재밌긴 한데 말이죠. (들어갈 수 없으니 문제지만)

이 알파벳들은 이름을 따온것도 있고 아닌것도 있고 그렇습니다ㅎ 예전 일기는 틈틈히 꺼내어 읽는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일기보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프로의 개념은, '자신의 결과물을 자신의 삶으로서 오롯이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뭔가 무한 책임 같이 무서운 표현이기는 한데, 제가 바라본 프로의 세계는 참으로 무섭고 냉정하더군요. 저도 한편으로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계의 일부를 움직이는 느낌이 들것만 같아서 그런 것일까요. :)

프로의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었는데, '자신의 결과물을 자신의 삶으로서 오롯이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하니... 일단 반성 하게 됩니다. 그리고 프로가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제 삶과 예술을 하나로 만드는 데에 집중을 하는데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금방 한없이 가벼워져서 그게 문제입니다.

각자 나름의 기준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을 굳이 하실 필요까지야 (...)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것은 사실 1인칭 관점일 것 같은데, 꼭 1인칭 시점으로서만 프로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프로의 방식은 각자 삶에 맞추어서 변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인칭이나 3인칭의 프로도 가능할 것이고, 말씀주신대로 외부로부터 프로의 기준을 상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

평일의 한낮
“유통기한이 있는” 자유

아, 너무 공감되는 표현입니다!

사실 평일의 한낮은 누구나 누리기는 힘든 호사스러운 자유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은 이 자유를 얻기 위해 살고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

"어떤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변명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물론 인정하지만,
그 '어떤 때'가 쌓여가는 것은 나이를 먹고 있는 증거 같아서 살짝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 부분에 동감합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되지만, 저는 가끔은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긍정적 체념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금 남아있는 날 중에서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니, 최대한 이 순간에 집중하는게 결국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길을 택했을 것

이 생각은 저도 많이 하는데요,
'긍정적 체념'으로 승화시키진 못했던 것 같네요.ㅎ
그저 '어쩔 수 없었어. 다시 해도 그 선택이었을 거야!' 이런 합리화 정도..^^;;

저도 하고싶은게 너무 많다보니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하는데 여러 우물을 파도 그것들이 나중에는 큰 호수가 되어 하나로 합쳐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ㅎㅎㅎ

저도 호수가 될 상상을 하며 하나씩 우물을 파고 있습니다. 꼭 호수가 되지 않더라도 우물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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