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5 years ago

지금 당장 울림이 없어 보이는 글이라도 언젠가 울림을 줄 것 같은 촉이 오는 글이면 스크랩을 해두는 버릇이 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을 다시 읽으면, 개똥을 약에 쓰려는 순간 개똥은 그냥 개똥이 아니라 약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무언가를 빚어낼 "시점"에 필요한 것(꼭 글의 형태가 아니라도 좋다)이 손에 잡힌다면 참 즐겁겠다는 상상을 한다. 타이밍이 잘 재어지지 않은 글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속상하다.

최근에 영화 '접속'을 봤다.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채팅으로 남녀가 이어진다는 한낱 뻔하디 뻔한 연애 이야기처럼 들렸다면, 지금에는 주인공들 주위 사람들의 가지치는 맥락을 보게 된다. 어른 동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른의 동화는 항상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만 끝나지 않는다. 가끔은 아무 맥락 없이, 아니면 부정적 맥락에 따라 망했습니다 하며 끝날 때도 있는 것이다. 물론 영원히 망하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아무 감흥이 없던 기억이 묵직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 때는 때가 된 것이다. 받아들일만할 때, 소화할만할 때, 좀 더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할 때.

사실 어떤 시점에 무엇이 없다면 그냥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긴들, 정말로 있는 결과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없음"을 보전할 만한 다양한 방식들을 가지고 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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